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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20]신종만-'맷돌 이후'▲신종만:둔덕출생(1963년)/통영상고졸/사회적기업(주)연연칠백리근무/고려사연구회원/사회적기업협의회사무국장/능곡시조교실수강

   「금요거제시조選20」
                                맷돌 이후          

                               신  종  만

                     우둘툴 암수 맷돌
                     한가운데 박힌 쇠심

                     곡물 먹는 밥통인가
                     어처구니 휘어지네

                     와송(瓦松)이 목마를 타듯
                     휘모리로 잘도 돈다.


                     팥 갈아 죽을 쑤고
                     콩 갈아 두부 빚네

                     둥글넓적 위아래가
                     천상의 궁합이라

                     골고루 갈리는 한세상
                     어처구니 있었다.


                     무대의 뒷전으로
                     밀려난 맷돌 한 짝

                     변화의 그늘막에
                     실어증 앓으면서
      
                     한시절 영화의 꿈을
                     반추하고 있었다.

.▲신종만 상세프로필
     -거제시 둔덕출생(1963년)/통영상업고등학교졸업 /거제(인증)사회적기업-(주)연연칠백리근무/거제고려사연구회원/가덕도신공항추진위원/거제사회적기업협의회 사무국장/능곡시조교실 수강/거제시조문학회 회원 

     ◎ 시작수업(詩作修業)의 정석(定石)

 글쓰기에 관한 명쾌한 지침을 들라면 중국의 문인 구양수(歐陽修)가 말한 삼다주의(三多主義)를 꼽는다. 삼다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처음에는 남의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서(多讀) 시의 묘리를 체득하고, 스스로 많이 지어서(多作) 표현의 기능을 확장 시킨 다음, 많이 생각해서(多商量) 작품의 세계를 깊게 해야 비로소 시인으로 서서 훌륭한 작품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따로 ‘삼이주의(三易主義)’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공자의 제자인 안자(顔子)의 말인데 문장은 쉬운 말로(易字) 쉽게 써서(易書) 읽기 쉽게(易讀)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의 詩作에 딱 들어맞지 않는바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배격할 일은 아니다. 글을 쓰는 일차적 목적이 남에게 읽히는데 있다면 써서 독자 대상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세상에는 난해시(難解詩)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고도의 비유(譬喩)와 상징(象徵)때문에 생기는 부득이한 현상이지만 시작 태도는 가급적 쉬운 말로 쉽게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빈 양철통이 더 시끄럽다고 얼핏 보면 무슨 대단한 내용이라도 담긴 것 같이 어렵게 쓴 시는 대개 양파처럼 껍질을 벗겨 가다보면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시의 이상적인 양태(樣態)는 심오한 사상과 밀도 짙은 정서를 쉽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쉽고 어려움은 내용면의 차이이어야지 표현면 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친김에 삼구(三究)와 사사(四寫) 오산(五刪)도 살펴보자. 삼구의 ‘구(究)’란 탐구를 뜻한다. 시인은 현상(現象)을 현상 그자체로서 수용(受容)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통해서 ①사물의 근본을 탐구하고(究本) ②이법(理法)을 탐구하고究理 ③아름다움을 탐구(究美) 해야 한다. 생명을 포함해서 삼라만상은 하나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어떤 리듬에 의해서 운용되는 것이다. 시인은 형안(炯眼)으로 그 질서를 파악하고 그 리듬을 감지해야 한다.

 사사의 ‘사(寫)’란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은 표현’이므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것은 작품의 사활을 좌우한다. 표현은 다음 네 가지의 기본 태도를 요구한다. ①순수한 것을 표현하고(寫純) ②진실을 표현하고(寫實) ③성실하게 표현하고(寫誠) ④새롭게 표현해야(寫新) 한다. 시는 시 이외의 그 무엇이어서도 안 된다. 시가 시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에 쓰이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시는 순수한 아름다움과 진실만이 표현의 대상이 된다.

 예술은 창조요, 창조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인은 소재(素材)나 제재(題材)나 주제(主題)에 있어서 과거에 없었던 것을 찾아내어 표현해야 한다. 시조가 비록 전통적인 정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나름의 독특한 리듬과 개성을 살려야 한다. 일반적 경향이나 유행 따위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은 벌써 창작 정신에 어긋난다.

 오산은 퇴고에서의 오산인데 ‘산(刪)’은 ‘깍을 산’이다. 한번 이룬 작품에 손을 안 댄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이런 태도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이다. 손톱만큼의 불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집요하게 깎고 깁고 다듬어야 한다. 거기에 만일 다음과 같은 것들이 눈에 띄면 사정 두지 말고 깍아 내야 한다. ①추잡한 것을 깍고(刪醜) ②저속한 것을 깍고(刪俗) ③거짓을 깎고(刪僞) ④난삽한 것을 깍고(刪澁) ⑤부질없는 것을 깍아야(刪漫)한다.

 시는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고 고아(高雅)한 것이어야 한다. 이 때 추잡한 것이나 속된 것은 통속적 관념의 그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상념은 되도록 심오하고 정서는 되도록 내밀해야 하지만 표현은 되도록 쉽고 수월해야 한다. 시는 압축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므로 군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조사(助詞) 하나라도 꼭 놓여야 할 것이 아니면 잘라 내야 한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맷돌이후〉는 신종만 시인의 작품으로 3수 연작으로 맷돌의 어제와 오늘을 읊은 서정시조다. 시인은 얼마 전 시조작품 〈장날〉을 통하여 잊혀져가는 우리의 풍정風情을 정감 있게 보여 주었기에 그런 시각으로 감상했다.

 첫 수에선 추석전날 어머님과 숙모님이 손잡이를 마주잡고 맷돌을 돌리는 정경을 묘사했다/ 우둘툴 암수 맷돌 한가운데 박힌 쇠심/은 우주의 한 중앙이다. / 곡물 먹는 밥통인가 어처구니 휘어 지네 / 란다. 어처구니가 휘어질 정도로 쉼 없이 도는 맷돌이다. 그 돌아가는 모양새를 / 와송이 목마를 타듯 휘모리로 잘도 돈다 /로 표현했다. 종장이 佳句다.

 둘째 수엔 / 팥 갈아 죽을 쑤고 콩 갈아 두부 빚네 /라고 하였으니 맷돌은 팥이며 콩이며 마다하는 곡물이 없다. / 둥글넓적 위아래가 천상의 궁합이라 / 함은 위아래의 찰떡궁합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이를 일러 和音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터. 눈 여겨 볼 부분은 / 골고루 갈리는 한세상 어처구니 있었다 / 이다. 어처구니가 중심을 잡고 있으니 골고루 갈릴 수밖에.

 셋째 수엔 맷돌의 오늘을 읊었다.
 그 옛날 잘도 돌아가던 맷돌이련만 이제는 / 무대의 뒷전으로 밀려난 맷돌 한 짝 /이다.
 /변화의 그늘막에 실어증 앓으면서 / 고즈넉하게 놓여있다. 무슨 말을 하리오. 골동품으로 쳐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 시절 영화의 꿈을 반추하고 있었다 /는 찡한 서글픔을 안겨주는 종장이다. 밥통처럼 곡물을 먹어대던 맷돌, 이제는 추억만 반추하고 있었다. 그 서글픔이라니.

 민속관에 가보면 명패를 앞에 둔 맷돌이 놓여있다. 골동품으로의 신분 상승인데 왠지 초라해 보인다. 무엇이던 제구실을 해야 당당히 보인다. 밥통은 밥만 축내고 제구실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맷돌은 곡물을 주는 대로 먹어제끼는 밥통으로 표현하였음을 재미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어처구니가 휘어지겠는가 말이다.

 와송은 바위솔이다. 돌아가는 맷돌에서 날리는 가루들이 마치 와송이 목마를 타는듯하다는 싯귀는 참신한 발상이다. 휘모리장단은 자진모리장단 보다 빠르게 몰아가는 장단을 일컫는다. 휘모리로 잘도 돌아가는 맷돌, 신바람이 절로 인다. ‘어처구니’는 맷돌을 돌릴 때 쓰는 나무 손잡이다. 한편으론 궁궐의 지붕위에 올리는 동물 모양의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엔 어처구니가 있다는 말보다도 없다는 말이 쓰이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너무나 엄청나서 기가 막히다’라는 뜻이다.

 / 골고루 갈리는 한세상 어처구니 있었다 / 는 공평하고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바라는 시인의 희원이지 싶다. 바로 어처구니 있는 세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믹서기에 밀려난 맷돌,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 이런지도 모를 일이다. 반추는 되새김이다. 늘그막엔 추억을 먹고 산다. / 한 시절 영화의 꿈을 반추하는 / 맷돌처럼 말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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