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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26] '지금'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수필당선자

                                지  금

                                            우      광      미

 -이렇게 쉼 없이 오래 연주하면 각 악기들의 음률이 어긋나게 돼. 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춰야 할까, 아니면 불협화음이 생겨도 서로 필사적으로 맞춰가야만 할까?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 도입 화두를 이렇게 던진다.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 사중주단. 그들 내에서 음악적,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네 명의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이를 계기로 그간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사중주단이 위태로워질 것을 깊이 염려하던 첼리스트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곡을 택한다.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곡은, 베토벤이 일곱 개의 악장을 연결해서 쉼 없이 연주하라고 명시한 곡이다. 네 명의 연주자가 각자의 파트에서 악장의 중간에 쉬어서도 안 되고 조율도 허락되지 않는다. 사십 분이 넘게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까닭에 서로 음정이 어긋나는 것도 감수해야만 한다. 삶이란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들의 연속성이다. 때론 온전한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어떤 변수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여러 곡을 받았다. 화음과 멜로디를 나누어 각자의 파트에서 연주를 한다. 성탄절 아침 첫 연주라 긴장도 되고 계속되는 연습으로 피곤한 터였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악보를 펼쳤다. 피아노 전주가 나오는 순간, 서두른 탓에 악보가 뒤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잘못 펼쳐진 악보.빠른 곡이라 바꿀 여유가 없었다. 해야 하는 건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그러나 나는 어느새 활을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흐름을 타고 어긋난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암보하지 못한 부분은 잠시 타인의 소리를 들으며 다시 들어갔다. 곡이 끝 날 때까지 함께 갔다.

또 다른 경우는 오래 전 야외무대에서 전자 악기로 하는 연주가 있었는데 큰 행사였기에 음향도 수준급의 프로들이 작업을 했고, 리허설도 만족할 만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 되었다. 차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일시적으로 전원이 차단되어 악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 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엄습해 왔다. 상황을 감지하고 멈칫했으나 리더의 드럼 소리를 따라 연주는 계속되었는데, 누군가 멈추어야 된다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멈췄다. 어떻게 무대를 내려왔는지 기억조차 아련하다. 온전한 스피커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연주를 해야 하는 걸 생각했으면서도 왜 침묵하였는지. 두려움이었지 싶다. 단원의 모든 행동은 리더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과 돌발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융통성 사이에서 머뭇거린 그 자책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삶은 누구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그 처신도 달라진다. 하나의 개인으로 독립된 상태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집단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독주는 자신만의 곡 해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합주란 자신의 음색을 내면서 단원들의 소리를 듣고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설령 무대 위에서 피아노의 템포가 빨라졌다 해도 정박으로 가고 있는 자신만을 고집 할 수 없다. 그 또한 흐름을 방해하는 일이다. 지휘자조차도 단원들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 청중 없는 무대란 있을 수 없지만 현재 함께 하는 팀원과의 호흡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삶이 버겁다고 시간이 멈춰 주지 않는 것처럼 곡을 완주할 때까진 함께 가야 한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 과정동안 불협화음이 날 수도, 제 음가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 음이 맞지 않으면 신경 쓰이고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불협화음의 빈도수는 잦아지는 것 같다. 가족이라든지, 늘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체를 두고 본다면, 순간의 충돌은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그 또한 삶의 한 부분일 것이다. 쉼 없이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면서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가끔 본다. 이런 경우 때로는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생각하면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동안도 자신의 존재 증명을 쉼 없이 한 것이었으리라. 그런 상대라 할지라도 곁에 없으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이고,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나를 위해 화음을 넣어 주는 이도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겠다. 

  또한 자신의 자리를 알고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는 분별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주는 일이며 자신에게는 내면의 평화를 깃들게 한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사람 일이다. 삶이 변한다는 건 생각에 의해서라기보다 그 생각이 행동으로 전환 될 때 놀라운 기적도 일어난다. 우리 삶은 버거운 현재 속에 속박되어 있다. 시간을 통해서만 그 벽을 넘을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엮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 무대에 오른 첼리스트의 불안한 표정과 긴장된 운지가 클로즈업된다. 연주를 멈춘 그는 일어서서 관객들에게 말한다. ‘쉬지 못하게 작곡한 베토벤 탓’이라고. 그는 자신의 후임을 소개한 후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청중들이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낸다. 새로 영입된 단원과 함께 연주는 계속되고 현악사중주단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극장 가득 울려 퍼진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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