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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㉖]강민진-'조약돌' ▲강민진:64년욕지도출생/국립경상대사범대학졸/'19년현대시조등단/거제제일중교감/능곡시조교실 수강/거제시조문학회원

금요거제시조選㉖
                                조 약 돌

                              강 민 진

                         심신이 고단하여
                         애써 찾은 갯가에서

                         속말이 있음 직한
                         조약돌 하나 골라

                         볼에다 가만히 대고
                         혼잣말을 건넨다.

                         좋았던 기억들은
                         썰물처럼 잊혀지고

                         아팠던 그 상처는
                         옹이로 남았는데

                         윤슬에 몽돌 구르는
                         저 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넋두리들
                         물살에 부서지고

                         조약돌 쓰다듬어
                         마음을 다잡고선

                         슬프고 아린 기억들
                         돌팔매로 날린다.

                         

시조와 개성

 개성(個性)은 사람마다 지닌 남과 다른 특성을 말한다. 시조에 있어서 개성의 문제는 문학의 다른 분야에서 보다도 특히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시조는 형태면에서 이미 개성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조는 누가 지어도 삼장형식이요, 누구의 작품도 3음절이나 4음절이 기조(基調)가 되므로 얼른 볼 때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기가 쉽다. 그래서 한 때 “근래의 시조는 작자의 성명을 가리고 보면 거의 비슷하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것은 작품에 개성이 없다는 말과 통한다.

 개성은 작가로서는 지녀야할 당연한 덕목이다. 창작 예술인인 이상 개성이 거세된 시조가 용납될 수는 없다. 이 비개성적(非個性的) 조건 밑에서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데에 시조의 어려움이 있고, 시조만큼 작가의 역량이나 재질이 더 요구되는 문학도 없다.그러면 시조에서는 무엇이 개성을 좌우하는가. 다시 말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개성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는가 살펴보기로 한다.

 시조의 개성 문제는 작품의 내용과 언어 기술의 양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먼저 내용 면에서의 개성은 작자의 사상과 주제의 성격과 제재의 선택에서 드러난다. 사상이 독특하거나 주제가 비범하거나 제재가 신선하면 개성이 뚜렷해진다.따라서 시조가 거의 비슷하다는 말은 특징 없는 내용, 흔해빠진 주제, 진부한 제재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 언어 기술면에서의 개성은 구조가 독특하거나 기교가 뛰어나거나 시어가 신선하면 뚜렷이 나타난다. 시조의 개성이 운위(云謂) 되는 것은 평범한 구성, 치졸한 기교, 진부한 시어로 작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상의 개성적 요건들은 그 중 한 가지만 탁월해도 개성이 드러나지만, 몇 가지가 겹치면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위의 모든 요건을 구비한다면 이상적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이상(理想)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시조 작가들은 모름지기 그 이상을 지향하는 자세만은 가져야 할 것이다.

 아래 글은 정완영 선생의 「적막한 봄」 전문이다.

       산골짝 외딴집에
       복사꽃이 혼자 핀다

       사람도 집 비우고
       물소리도 골 비우고

       구름도 제풀에 지쳐
       오도 가도 못한다.


       봄날이 하도 고와
       복사꽃 눈 멀겠다

       저러다 저 꽃 지면
       산도 골도 몸져눕고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건가.

 ‘적막한 봄’ 정경을 강열한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글로 표현해 내지 못한 것을 자기만의 눈으로 개성있게 묘사해낸 훌륭한 작품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관찰한 사물을 개성있게 묘사하여 형상화 할 수 있어야 한다.무엇보다도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개성을 살려야 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 독특한 문체를 가져야 문인으로서의 이름을 남길 것이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조약돌〉은 강민진 시인의 3수 연작의 서정시조다.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이렇게 적었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아픈 기억들을 가슴에 오래토록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병도 생기고 정신적으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 바닷가에 와서 이쁜 조약돌 하나 주어 독백도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돌팔매질 하면서 슬프고 나쁜 기억을 날려 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쓴 작품입니다“

첫 수에서 시인은 조약돌 하나를 골라들고 혼잣말을 건네고 있다. 살다보면 / 심신이 고단하여 애써 찾은 갯가에서 / 수마(水磨)된 조약돌을 고른다. 용캐 / 속말이 있음 직한 조약돌 하나 골라 / 들었다. 모 없도록 닳고 닳은 세월, 왜 속엣말이 없을 손가. / 볼에다 가만히 대고 혼잣말을 건넨다./ 무슨 말을 건넸을까. 어쩌면 시작 노트는 시인의 고백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 수에선 옹이로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를 읊었다. 누구던 안그렇던 가배, / 아팠던 그 상처는 옹이로 남았는데 / 그것도 작은 옹이가 아닐터, / 좋았던 기억들은 썰물처럼 잊혀지고 / 만다. 잊혀진 좋은 일들은 하나 둘이 아니 길래 썰물이 등장했다. / 윤슬에 몽돌 구르는 저 소리를 듣는다. /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다. 이 둘째 수 종장으로 해서 〈조약돌〉이라 題한 시조의 윤기가 살아났다. 자그락 자그락 몽돌 구르는 소리는 영혼의 속삭임이다. 어찌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셋째 수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쉼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살이다. / 수많은 넋두리들 물살에 부서지고 / 있다. 많은 사람들, 넋두리도 많을 수 밖에. / 조약돌 쓰다듬어 마음을 다잡고선 / 눈길은 수평선에 머문다. 이윽고 / 슬프고 아린 기억들 돌팔매로 날린다/. 돌팔매 속엔 부끄러움도 함께 들었으리라.

조약돌은 ‘작고 동글동글한 돌’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면 자갈은 어떠할까. 사전엔 ‘강이나 바다의 바닥에서 오랫동안 갈리고 물에 씻기어 반들반들해진 돌’과 ‘자질구레하게 생긴 돌’로 나와 있다. 몽돌은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한 돌’이란다
 
물씻김 즉 수마(水磨)된 작은 돌, 손바닥에 드는 돌 한 점을 두고 조약돌이냐 자갈이냐 몽돌이냐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난감’이 맞지 싶다. 그렇지 않겠는가. 대답이 궁하니 그럴 수밖에.세 가지의 돌중 ‘조약돌’이 정감이 간다. 조약돌은 동글동글 하되 납작동글이 제격이지 싶다.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물수재비엔 조약돌이 안성맞춤이다. ‘조약돌’은 고 박상규의 노래로 해서 진가가 더해졌다. 노랫말중 ‘내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로 해서 조약돌이 스타가 되었다. 그래선지 ‘조약돌’이란 상호를 단 음식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긴 줄 안다.
 
시인이 손에 쥔 조약돌은 오석(烏石)이지 싶다. 오석은 석질이 단단하다. 물을 뿌리면 반지르한 윤기가 흐른다. 애석인들이 선호하는 색이다. 그래서 수석(壽石)의 3요소로 形·質·色을 꼽는다. 질감이 좋으면 색감이 따라 좋다. 수마가 되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돌 때문에 人生이 피곤해진 나는 검은 조약돌을 볼 때면 간혹 한 사람을 떠올린다.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않은 사람이 있었다. 196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의 고도 로벤섬 감옥에 투옥된 흑인 죄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감옥은 다리를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고, 변기대신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가 감방 구석에 놓여 있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만 허락 되었고, 간수들은 걸핏하면 고문하고 짓밟았다. 그는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만 주어졌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다. 수감 생활 4년이 되던 해 모친이 돌아가셨고, 그 이듬해는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 맏딸이 결혼하여 낳은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던 중 맏딸이 면회를 와 편지로 청한 아기의 이름을 지었는가 물었다. 그는 말없이 찌든 주머니에서 꾸겨진 메모지 한 장을 꺼내 딸에게 건네주었다. 딸은 그 메모지를 보고 펑펑 울고 말았다. 딸의 눈물로 얼룩진 메모지에는 “아즈위(Azwie, 희망)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후로도 온갖 치욕을 당하면서 13년간이나 더 옥살이를 하고서야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44세가 되던 1964년부터 71세가 되던 1990년까지 무려 27년간이나 정치범이란 죄목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만델라 (Nelson Mandela, 1918-2013) 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흑백분리정책(apartheid)으로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안겨 주었던 정적들을 모두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이었다.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 (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분노하는 흑인 청년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그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13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들은 하나같이 그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추모했다. 27년이라는 그 길고 절망의 세월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한 순간도 아즈위(희망)를 포기한 적이 없다.”
 영국의회의 중앙 홀에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 영국 하원의원들이 뽑은 영웅 1위는 영국인이 아닌 넬슨 만델라이며, 2위는 마거렛 대처, 3위는 윈스턴 처칠이다.

시멘트는 쉽게 갈 수 있다. 그러나 광이 나질 않는다. 오석이 수마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석질이 단단할수록 수마에 시간이 걸리지만 광도는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학동 몽돌을 두고 흑진주라 부르고 있다. 마치 오랜 고통을 감내하고 찬연히 빛난 만델라처럼 말이다. 항하사(恒河沙)란 말이 있다. 항하사는 인도의 갠지스 강을 나타내는 단어인 항하(恒河)에서 비롯된 수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칭이다. 즉 항하강의 모래알만큼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골라낸 조약돌은 항하사에 비유되는 많은 돌 중에서 고른 것이다. 대단한 연(緣)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만난 조약돌도 연일진데 하물며 사람에 있으서랴. 인연을 소중히 하여야 하리라.

 시인이 들은 몽돌 구르는 소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100선』에 다섯 번째로 선정된 ‘몽돌 파도에 휩쓸리는 소리’로 우리 거제 학동 몽돌 소리라 여겨진다. 몽돌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슬프고 아린 기억들을 돌팔매로 날리고 희망의 불씨를 살리자. 지금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혹독하고 악랄했던 일제강점기 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가수 강진은 ‘막걸리 한 잔’에서 “그래도 인물은 내가 낫지요”했것다. “그래도 태풍 마이삭이나 하이선이 매미보다 낫다”고 신소리를 하여본다. 매미에 놀란 가슴이 지금도 벌렁거린다. 맙소사.<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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