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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㉗]허원영-'명상' ▲허원영시인,낭송가,시조창가/2020년현대시조등단/거제문인협회이사/거제시조협회사무국장

[금요거제시조選㉗]
                                '명 상' 
                

                              허 원 영

                          가부좌 틀고 앉아
                           마음을 바라본다

                           꼬리에 꼬리 무는
                           번뇌 망상 그 속에서

                           뛰노는
                           사념 잡기를
                           내려놓고 그저 본다.

                            단전을 타고 오른
                            따뜻한 빛 한 줄기

                           시간은 흘러 인시(寅時)
                            반야의 문 앞에서

                            꼭 잡은 이 빛 한 줄도
                            내려놔야 하겠지요.


 긴축의 묘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다 한 치의 쇠끝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때의 한 치(一寸)는 오늘날의 한 치보다 훨씬 짧아서 손가락 한 개의 너비였다고 한다.
 이 말은 본디 북송(北宋) 때 대혜선사(大慧禪師)라는 스님이 선(禪)을 설명하면서 비유한 것이므로 여기서 ‘살인’이란 ‘결정적인 깨달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내력이야 어떻든지 간에 오늘날에 와서 이 말은 짤막하면서도 날카로운 경구(驚句)를 비유할 때 쓰기도 하고, 시구나 문장 중에서 독자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는 어구, 이른바 경인구(驚人句)를 말할 때 쓰기도 한다.
 흔히 시를 가장 경제적인 문학 양식이라 하는 것은 최소의 언어로써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조는 겨우 45자 내외의 글자 수로써 하나의 종합적인 시상을 소화해야 하므로 긴축하고 또 긴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는 시조의 묘미는 ‘긴축의 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긴축한다고 해서 어른에게 어린이의 옷을 입히듯 옹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우구려 놓아서는 물론 안 된다. 구속감을 주지 않는 긴축, 곧 ‘여유 있는 긴축’이어야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둥을 쳐서 들보를 올리는 기법’ 다시 말해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솜씨를 말한다. 여기서 독자는 생략과 비약 속에 숨은 내용을 찾아내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으다 선뜻 깨니

        들던 볕 비켜가고
        서늘 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 이병기 〈난초1〉 전문

 이것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난초1〉 전문인데, 가람 시조에서는 예가 많지 않은 단수시조의 하나다. 가람 선생은 현대인의 생활을 표현하려면 연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수에는 소품적 제약이라는 불편이 있는 반면 간결한 압축에서 오는 짙은 밀도, 여유 있는 긴축, 군더더기를 다 걸러내버린 높은 승화라는 특징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정황을 상상해본다,
 고서가 쌓여 있고 문방제구가 갖추어진 아담한 서재 안의 어느 일요일 한낮, 한 학자 샌님이 햇볕 드는 창가를 골라 창가난분를 옮겨놓고 책을 읽다가 깜빡 졸았다. 어느만큼 졸았을까, 은은한 향기가 코에 스미어 문득 깨어보니 해는 이미 기울고 난초가 두어 송이의 꽃을 막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초는 본래 세속을 멀리한 선비의 상징, 고고하고 청정한 작자의 성정이 난초를 통해서 향기를 뿜는 시조로서, 가람 시조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명작이라 하겠다. 가람 선생은 1891년 전북 익산에서 나서 1968년 태어난 고택에서 향년 68세로 타계하셨다.

     집 뒤 아기대밭 대밭 너머 무덤이라
     잠깐 뒷방으로 옮겨 누우신 건가
     이따금 기침이라도 하면 귀를 돌릴 자리에.
                            - 이은상 〈가람의 무덤을 찾아〉

 가람 선생의 묘소는 노산선생이 읊은 그대로 고택의 바로 뒷산 기슭에 있다.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명상〉은 허원영 시인의 작품으로 2수 연작의 서정시조다. 명상(冥想.meditation) 은 순수한 영혼을 바라보기 위한 것으로 내면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이며 심리치료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먼저 보기로 한다.

 “1남8녀 형제 속에 자라면서 한 번도 나만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내 남편 내 집 나만의 공간이 생기다 보니 소유와 집착이 심해졌었습니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픈 본능이었나 봅니다. 스스로 만든 지옥 속에 오랜 시간 괴로워하다 살기위에 마음 비우는 연습을 하고 또 했습니다. 심리 공부도 했습니다. 이런 성향과 기질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왜 거기에 고착되어 머물러 있는지 매일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명상을 하다 따뜻한 기운이 저를 감싸며 단전에서 뜨거운 빛 한 줄기가 올라와 머리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유롭고 평온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시조는 그때 지어졌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힘들 때면 이 시를 가끔 읽습니다. 명상은 지금도 자주 합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가부좌 틀고 앉아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념들로 시간이 흘러갑니다. 뛰노는 사념잡기는 진즉에 포기하고 그저 내가 지금 이런 일로 힘들어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챔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되찾습니다.

 감히 누구에게 ‘이렇게 좋습니다.’ 하고 권할 수준은 못 되지만 번뇌가 많은 인생을 인연생기(因緣生起) 따라 규명해 가다 보면 그 근거가 무명에 이루고 인연생기의 공함을 자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무명이 소멸하고 나면 대 반야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다소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명상과 마음공부를 할 때 내면 깊이 번져 나오는 평온과 기쁨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첫 수에선 명상에 잠긴 시인을 본다. / 가부좌 틀고 앉아
마음을 바라본다./ 마음을 보는 일, 참된 ‘나’를 깨닫기 위함이다. /꼬리에 꼬리 무는 번뇌 망상 그 속에서 /내면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 / 뛰노는 사념 잡기를 내려놓고 그저 본다./ 내려놓고 그저 본다는 경지 모르긴 하나 무념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둘째 수에선 인시(寅時)에 작은 깨달음을 얻은 시인을 본다. 어느 날 새벽 / 단전을 타고 오른 따뜻한 빛 한 줄기 /가 올라왔다. / 시간은 흘러 인시(寅時) 반야의 문 앞에서 /였다. 寅時는 새벽 3시에서 5시 까지다. 그러니 이른 새벽이다.
 오랜 시간 명상을 하면서도 처음 맞이한 순간이었으리라.
/ 꼭 잡은 이빛 한 줄도 내려놔야 하겠지요./ 시인은 이미 놓았지 싶다. 모든 사물의 본래의 양상을 이해하고 불법의 진실된 모습을 파악하는 지성의 작용을 일러 ‘반야’라 한다. 쉽게 말하면 지혜다. 사념잡기도, 지혜도 다 내려놓는 일, 명상이지 싶다.

 탈무드는 유대교의 율법, 윤리, 철학, 관습, 역사 등에 대한 랍비의 생각을 기록한 문헌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사람을 현인이라고 하는가? 무슨 일에서건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고 하는가?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부자라고 하는가? 자기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한정된 지혜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과의 투쟁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중국 명나라 왕양명은 “산속에 있는 도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마음속에 있는 적은 물리치기 어렵다 (山中賊破易 心中賊破難)라는 명언을 남겼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放下着’이다.

 한 스님이 탁발(托鉢)을 위에 험한 산길을 가는 도중 ‘사람 살려’ 하는 절박한 비명이 길 아래에서 들려왔다. 놀라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애타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스님이 황급히 다가가자 인기척에 “나는 소경입니다 발을 헛디뎌 이렇게 되었으니 제발 좀 살려주시오” 하고 애원했다. 다가가보니 매달린 이는 땀에 젖어 사색인데 다행히 매달려 있는 나무까지는 키높이 정도였다. 안심한 스님은 “손을 놓으시오. 떨어져도 괜찮으니 걱정 말고 손을 놓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손을 놓으면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데 어찌 손을 놓으란 말입니까? 제발 좀 살려주시오” 하고 목이 메어 거듭 애원 하는 것 이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손을 놓으시오”하고 스님이 외쳤으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더 이상 못 버릴 시각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땅에 툭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시각장애인은 졸지 간에 있었던 일을 비로소 깨닫고 땀을 닦으며 멋쩍게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듯 떠났다.

 수행자들이 흔히 화두에 올려놓고 즐겨 주고받는 ‘방하착’이란 설화(說話)다. 스님들이 출가 할 때 행하는 인연 끊기의 첫 번째가 바로 방하착의 실천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으로 산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인가 갖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인간의 존재 이유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부귀며 권세며 명예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방하착이 어찌 물질만 뜻하리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사람에 대한 원망, 분노, 증오, 성취에서 얻은 오만함도 다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이다.

 마음이 힘들 때면 자작시 〈명상〉을 가끔 읽곤 한다는 시인, ‘꼭 잡은 이 빛 한 줄도 내려놔야 하겠지요.’ 라는 종장에서 방하착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충만하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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