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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25] '곶감'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하얀 분을 내었다. 보아 주는 이 하나 없이 저 혼자 삭였나보다. 창문을 연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바람을 맞는다. 줄에 매달린 곶감이 흔들린다. 모처럼 숨통이 트인 듯 춤을 춘다.

울적함을 달래려고 산사를 찾았다. 고즈넉하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만추의 서정이 스산하다. 서걱서걱 낙엽을 밟으며 일주문을 지난다. 사천왕께 합장하고 돌계단에 오르니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바람 일어 풍경소리 그윽하고 대웅전 앞뜰에 부처님 얼굴이 비친다. 정갈하다. 비질자국이 곱다.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 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속까지 시원하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 들어 부처님께 큰절 올린다. 살그머니 마음도 풀어놓는다.

양간 처마 끝에 곶감 몇 줄이 객을 반긴다. 만져본다. 수분이 적당히 말라 시득시득하다. 서리 맞은 듯 표면이 하얗다. 운동회 날 흰 가루 묻은 과자를 따먹던 기억이 살아난다. 한입 베어 문다. 쫄깃하다. 달다. 하나 더 따려고 손을 내미는데 솔바람이 아서 하며 다독인다. 여럿이 함께 나누어야 한다며.

‘ 아니 드신 듯 드시옵소서. ’
한지에 적혀 곶감 줄 아래에 붙어있다. 몇 자 아닌 글자지만 마음을 끌어당긴다. 적은 것이나마 중생들에게 내주려는 부처의 사랑 같다.

선방 뒷켠에 감나무 몇 그루가 풍성한 열매를 달고 있다. 잎은 지고 주홍의 호화로운 옷으로 바꿔 입었다. 산새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인다. 구경하는 나그네와도 나누고 싶은지 몇 개를 떨어뜨린다. 그것을 주워들고 왔다. 한번 해보고 싶었다.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자 마음먹었다. 시설이 앉을 때까지 기다림을 익히고 싶었다. 그렇게 산사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며 서툰 솜씨나마 곶감 몇 줄을 매달았다.

껍질이 벗겨진다. 껍데기 일망정 색이 곱다. 아프지만 변신해야한다. 곶감이 되기 위해 여린 살갗이 찢기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속살 드러내는 수모도 견뎌야 한다. 탯줄 자국 꼭지가 실에 단단히 묶였다. 목을 매듯 매달렸다. 감에겐 인고의 세월이고 형벌의 시간이다. 볕은 따갑고 바람 또한 냉혹하다. 서서히 수분을 말리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겉 표면이 꾸들꾸들 일그러졌다. 쭈그러진 모양새를 고쳐 잡아 반듯하게 펴야한다. 동글납작한 것도 갸름한 것도 섞였다.

감속에 있던 당분이 과육 표피로 나와 시설(柹雪)을 드러내었다. 하얀 시설은 연륜의 징표다. 딱지 앉은 아픈 상흔처럼 색깔마저 검게 바랬다. 마침내 단맛을 내고 열매로서의 삶을 완성하였다. 비록 거죽은 곰팡이 피듯 허옇고 시들해도 속은 윤이 난다. 만져보니 탄력도 있고 속살은 말랑말랑하다.

상했거나 제대로 익지 않은 감이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곶감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홀함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흠집이 없어야하고 바람과 햇볕이 마땅해야 한다.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 숙성의 기다림이 더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설익으면 떫고 너무 익으면 쉬이 썩는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건조된 곶감의 수명은 길다. 감으로 이미 한 생을 살아내고도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꼴이다. 마지막 보시를 준비하는 성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하얀 분은 내 머리에도 앉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아직 내 앞가림조차 못하는 처지다. 가게를 운영하며 매일 수많은 손님과 마주친다. 인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피하기 일쑤다. 돈을 주고받는 것이 도무지 편치 않고 어색하다. 내가 장사를 한다는 게 민망하다. 농군으로 살 때는 열심히 노역만 하면 되었으나 이제는 사람들과 부대껴야 된다. 어설프고 힘들어서 참으로 못할 노릇이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분명 나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옹졸함과 이기가 숨어 있다. 폐쇄적인 방어법이다. 산다는 게 인간과의 만남이고 관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이 이어진다. 삶의 방식이 이와 같다면 굳이 피할 일이 아니잖은가. 사람들과 어깨비비며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여린 껍데기를 벗고 곶감으로 다시 나는 감나무의 열매처럼 그렇게 한 껍질 벗어던지고 살아보고 싶다. 단맛을 내며 마지막 보시를 준비하는 곶감인 듯 내주는 마음으로 내 집을 찾는 사람들을 대하려 한다. 시설이 내려않을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림을 익힐 일이다.

곶감은 미완의 떫음을 떨어내고 단내를 품었다. 지명의 나이에도 떫기만 한 나는 언제쯤이면 단향을 품을 수 있을까.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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