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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박수경]라떼는 말이야.박수경 / 2019 수필가 비평 등단/ 계룡수필 회원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하는 똥대가리 년’
 갈색 글씨가 우유 거품 위에 떠있다.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서빙 하는 직원을 올려다보니 씩 웃고 만다. 잘못 배달된 건 아니란 무언의 몸짓이리라. 어쩌란 말이냐.

홀로 남겨져 테이블 위만 쳐다본다. 주문(?)한 라떼가 있고, 6,000원이 적힌 계산서도 그 옆에 놓여있다. 사람을 불러 이 상황에 대해 물어야하나, 아니면 그냥 얼른 마시고 나가야하나. 바리스타를 눈으로 쫓지만 그는 자기 일에만 열심이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들어온 곳이다. 답답함이 다시 가슴을 짓누른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전어회가 먹고 싶다는 아들과 함께 통영을 찾았다. 가까운 횟집을 두고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하냐는 아들과 남편의 불평을 오는 내내 들었지만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 운전대를 잡은 손이 가볍기만 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불평 소리가 묻혔다.

중앙시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활어의 몸부림이 사람들의 발을 이끈다. 빨간 다라이에 생명을 저당 잡힌 개불의 움직임에 눈길이 머문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생선의 배를 가르고 몸통을 자르는 아주머니 손에 조급증이 인다. 집에까지 가는 길이 멀다. 가까운 초장집에 자리를 잡았다.

먹기만 했어야했다. 된장을 바른 전어를 마늘과 함께 깻잎에 올렸다. 둥그렇게 말아 아들에게 주니 평상시와 달리 날름 받아먹는다. 북한군을 막는다는 중 2도 맛있는 것 앞에선 무장해제인가보다. 눈치를 살피며 원어민이 하는 영어 회화 과외 이야기를 꺼냈다. 긴 시간 동안 벼르던 곳인데 마침 자리가 나서 놓치기가 아깝다고 했다. 아무 말이 없기에 테스트 예약을 할까하고 물었다.
 “지랄.”

아이의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다. 굳건하다. 오히려 떨리는 건 나다. 젓가락을 쥔 손에 부러 힘을 준다. 마음 같아선 젓가락을 면상에 던지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한다. 대화로 풀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입에서 제멋대로 나오는 것은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소위 꼰대의 레퍼토리였다. 코웃음으로 반격하는 아들을 보며 더 이상 함께 있다가는 사달이 날 것만 같아 혼자 가게를 나왔다. 주차장을 향해 걷다가 차키가 있는 가방을 가게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지만 그곳으로 도로 가긴 싫었다. 마침 그때 눈에 띈 곳이 이 카페였다.

“라떼 한잔...”
 주문하려는데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메뉴와 이름, 나이, 지역을 적게 되어있다. 그 밑에 특별히 적고 싶은 사연이란 문구도 보였다. 라떼, 박수경을 적었다. 그리고 사연에 ‘아들에게 처음으로 지랄이란 소리를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ㅠㅠ’를 넣었다. 평상시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이기에 용기가 났다. 서로에게 이방인인 이곳에서 그렇게라도 쏟아내고 싶었을까. 오히려 그게 화근이었나 보다.

당연히 잔에는 에스프레소에 스티밍 된 우유를 이용한 하트나 나뭇잎 그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쌍욕이 싸울 태세를 한껏 갖춘 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핏 가게 안을 둘러봐도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인다. 바리스타도 점원도 한참 아래다. 그런데 똥대가리 년이라니! 안 그래도 아들과의 마찰로 울고 싶은데 뺨까지 때리는구나.

그 와중에 글씨는 참 야무지게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컵에 박힌 16자 중 어느 것도 소홀함이 없다. 줄 간격과 자간까지 맞추며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들인 모양새다. 들여다 본지 시간도 제법 지났건만 우유거품이 여전하다. 맛이 궁금했다. 밥 먹다 뛰쳐나와 목도 탔다. 이유가 있겠지. 그래, 먹어보자. 먹자. 먹다보면 알겠지. 실로 오랜만에 먹는 쌍욕이다.

‘씁쓰름하면서도 부드럽다.’
 어린 시절엔 흔하게 들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날아든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 심지어 길 가던 중 부딪힌 어르신에게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년으로 정의 내리진 않았다. 그 뒤 혹은 앞에는 늘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욕이 귀에 닿을 땐 당황스럽고 화도 났지만 빨리 잊힌 건 그 때문일 터이다. 가만히 곱씹어보면 맞는 말이었다.

“꼬오쑵따!”
 스스로를 조롱한다. 입술을 들썩거리며 글자를 긁어먹는다. 똥대가리 년이 흐려진다. 잔에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하는’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감정적이었구나. 서른 해를 더 살았다는 이유로 어쭙잖은 충고를 했다. 아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내 욕심 채우기에 바빴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름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더 하길 바라며, 내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꺼냈다. 비워진 것도, 남들과 다른 삶도 괜찮다는 아이를 윽박질렀다. 나조차도 넘나볼 수 없는 기준을 정하고 그 선까지 올라가라며 채근한 것이다.

이젠 아무도 마흔 중반의 나에게 욕을 하지 않는다. 입 댈 것 없이 잘 살아 왔기에 그럴까. 아니, 인생의 반절을 살아온 이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어른이 없는 세상이어서가 아닐까. 나 역시도 나이만 먹었지, 철부지다. 미(未)성년이다.

욕을 비웠다. 소화되면서 곳곳을 돌아다니겠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워주길 바란다. 살아갈 시간 동안 늘 머물러 있길.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카페 이름을 말해주며 이곳으로 오랬다. 잠시 후 그가 들어온다. 그 뒤를 아들 녀석이 따른다.
“나 욕 좀 해줘". 욕해주는 어른이 그립다.

※ 울라봉&베이커리 : 욕 카페라는 별칭이 있는 전국 유일무이한 카페입니다. 손님의 이야기를 라떼 거품 위에 글로 적어주는 쌍욕 라떼라는 메뉴가 유명합니다. 통영시 정량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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