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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30]윤윤주-'망치재 꽃무릇' ▲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원/거농문화예술원실장/동아대서양화전공/능곡시조교실수강

[금요거제시조選-30]
                            '망치재 꽃무릇'
                          

                              윤 윤 주

                             벚나무 푸르른데
                          가을이 몰래와선

                          꽃무릇 부추기어
                          꽃바람 일구었네

                          황홀한 꽃들의 반란
                          망치재를 흔든다.

                          억장이 무너지면
                          저런 꽃이 피어날까

                         여린 목 길게 뽑아
                         불러보는 세레나데

                         불 지핀 애련은 끝내
                         폭죽 되어 터진다.

                         망부가의 슬픈 전설
                         윤돌섬이 아파운다

                         꽃 진 뒤 잎은 피어
                         몇 백 번 다시 피어

                        그리움 틀어 올리고
                        꽂고 싶은 석산잠(石蒜簪)


   ◎우리 것의 소중함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다. 한 민족이 사용해 온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고 문화이다. 그러한 자기의 말을 지키지 못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민족이 많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중국의 만주족을 들 수 있다.
 중국의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우고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으며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한 때 중원을 호령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만주 땅을 중심으로 사냥과 농사를 주로 해온 그들은 문화적으로 앞선 한족(漢族)을 통치하려면 한족의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이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금성의 현판도 한자로 달고 정작 그 집의 주인인 자기들의 글자는 한자의 곁다리로 조그맣게 써 붙였다. 그리고 모두가 자기들의 말보다 한어와 한문을 배워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기들의 고유 언어인 만주족의 말과 글은 잃어 버렸고 언어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민족도 역사 속으로 잊혀져버렸다.

 중국에는 한족(漢族)을 제외한 55개 소수 민족이 있고 그 중 5개 소수민족이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쓰고 있다. 5개 소수민족에 조선족이 포함 되어 있다. 물론 만주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18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4박 5일로 ‘제7차 청마 북만주 문학기행‘ 행사에 단장으로 다녀왔었다. 문학기행 중요행사의 하나였던 ‘제4회 할빈시 조선족 중소학생 청마 백일장’ 행사를 마무리하고 ‘할빈 여름·중한 문학의 밤’ 행사장에서의 일이었다.
 만찬 중 한순배 술잔이 오간 후 원탁을 돌며 담소를 나누었다. 오십대 중반의 조선족 소학교 이국화 여교장선생님과 자리했다. 조선족 소학교에서 시조를 가르치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가르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친 김에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하고 이 조년의 시조 초장을 읊었더니 이국화 교장선생님은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 만은 /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이뤄하노라” 라고 중장과 종장을 거침없이 읊조렸다.
 이어 정철의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길 다하여라” 하였더니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리 / 세상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라고 또 맞받았다. 연후에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하자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하고 뜸들일 일도 없이 잘도 읊었다. 고시조를 몇 수나 외우냐고 물었더니 모르긴 하나 100수 넘게 외운다고 한다. 놀란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이란 것은 문화와 전통을 담아 전하는 그릇이며 정신의 혈액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본이 민족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려고 했고, 우리의 언어학자들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항했던 것이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자기네 말을 업신여긴 중국의 만주족은 지금 어떠할까. 현재 통계상으로는 천여 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존재는 잘 확인 되지 않고 있다. 그것도 만주족임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기의 말과 글을 지키지 않아 자신들의 존재마저 잃어버린 것이니 슬픔을 넘어 비참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있는 중국의 조선족, 그래선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서 우수 민족으로 대접 받고 있는 줄 안다.내가 자주 들먹이는 “내 집 강아지 論”이 있다. 이는 내 집에 강아지를 내가 홀대하면 내 집에 오는 손님도 강아지를 홀대 한다는 논리다. 시조도 마찬가지지 싶다. 시조 한 수의 자수는 마흔 다섯 자 안팎이다. 그 작은 그릇 속에 민족의 온갖 사고방식과 생활습속이 다 담겨 있다. 한나라의 민족시는 그 민족의 리듬이요, 그 민족의 힘의 원천이다. 시조는 우리 민족시이다. 우리 것의 소중함, 두말하면 잔소리다.(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망치재 꽃무릇〉은 윤윤주 시인의 작품으로 3수 연작 서정 시조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과 동부면의 경계지점에 망치재가 있다. 일운면 쪽 길 한 편엔 벚나무가 줄지어 있고 다른 편엔 꽃무릇이 길 따라 심겨져 있다. 4월엔 벚꽃이 9월엔 꽃무릇이 장관을 이룬다.

첫 수엔 만개한 꽃무릇을 읊었다. 
 줄지은 / 벚나무 푸르른데 가을이 몰래와선 / 마침 개화를 서두르는 / 꽃무릇 부추기어 꽃바람 일구었네 / 라고 운을 떼고 있다. 그 꽃바람은 / 황홀한 꽃들의 반란 / 으로 / 망치재를 흔든다 / 고 종장을 마무리 했다. 만개한 꽃무릇의 자태가 어떠한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 화려하고 황홀한 군무는 망치재를 뒤 흔들고 말고다.

둘째 수엔 상사병(相思病)을 읊었다. 상사병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한 나머지 생기는 마음의 병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니, 그래서 / 억장이 무너지면 저런 꽃이 피어날까 / 하고 생살 찢어져 솟아지는 핏빛의 꽃을 보고 嘆한다. / 여린 목 길게 뽑아 불러보는 세레나데 / 다. 세레나데는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다. / 불 지핀 애련은 끝내 폭죽 되어 터진다/. 꽃무릇의 대궁은 여리디 여리다. 그 대궁을 길게 뽑아 올려 님 그려 노래 부르다 끝내는 폭죽 되어 터지고 말았다. 점입가경이다.

셋째 수엔 석산잠(石蒜簪)이 등장한다.
 망치재에서 바라다 보이는 윤돌섬엔 슬픈 전설이 있다. 그래서 / 망부가의 슬픈 전설 윤돌섬이 아파운다 / 고 초장을 열었다.  윤돌섬의 엎딘 모습이 시인의 눈에는 아파 우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기도 하다. 꽃무릇은 꽃 진 뒤에 잎이 돋는다. / 꽃 진 뒤 잎은 피어 몇 백 번 다시 피어 / 행여 만날세라 피어 보건만 그리움만 쌓여간다. 그 / 그리움 틀어 올리어 꽂고 싶은 석산잠 / 이란다. 石蒜은 꽃무릇의 한자 표기다. 틀어 올린 그리움에다 석산잠을 꽂고 싶단다. 꽃무릇의 자태를 비녀로 본 시인의 눈, 이 종장은 과히 절창이다.

우선 望峙를 살펴본다.
 거제는 일찍부터 현(縣)이 되었는데 조선 숙종 27년(1688)에 김대기(金大器) 현령이 부임 하였다. 김현령은 계룡산을 답사하고 거제를 동서로 오갈 수 있는 길을 내었다. 그즈음에 전염병이 유행하였는데 관찰사는 그 전염병이 길을 만들기 위한 부역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하여 그 책임을 물어 그를 파면시켰다. 그러나 고을의 백성들은 오히려 현령을 흠모하여 그 길을 김현령재라고 불렀다. 김현령은 뒷날 나라에서 내리는 벼슬도 마다하고 공주에 은거했다. 김대기 현령의 자 慶源은 사정으로 거제도로 피신와 선친의 한(恨)이 된 김현령치에서 부친이 계신 공주를 바라보며 아픔을 달랬다. 그래서 호를 ‘望峙’라 하고 지금의 망치마을에 우거하며 서당에서 제자를 가르쳤고 이곳에서 생을 마무리 했다. 望峙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한 목민관의 아픔이 담긴 望峙이련만 망치란 발음 때문에 연장 망치를 희화화한 일이 생겨났고 전국의 별난 마을 이름에 ‘망치리’가 들기도 했다. 웃지 못 할 일이다.
 김대기 현령은 의성김씨 입거제 시조로 알고 있다. 김대기 현령의 후손 중 거제를 빛낸 인물이 많다. 금요시조選에 작품을 발표하는 김용호 시인도 김대기 현령의 후손이다.

꽃무릇은 꽃은 잎을, 잎은 꽃을 서로 그리워하기에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다. 꽃무릇은 뿌리에 알카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탱화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부재로 사용 되었기에 절 주변에 많이 심겨 졌다. 그래서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정읍 내장사 등이 꽃무릇의 화려함으로 명성이 높다.
 꽃무릇에 관한 전설도 젊은 스님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애기가 몇 가지 전해온다. 꽃무릇은 상사화의 한 품종이지만 상사화와는 생김새부터 많은 차이가 있음 에도 상사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상사화는 잎이 이른 봄에 나고, 잎이 지고 난 8월에 꽃이 피고, 꽃무릇은 9월에 꽃이 피고 꽃이 진 뒤에 잎이나 겨울을 넘긴다. 상사화는 보통 분홍색이고 꽃무릇은 핏빛 빨간색이다.
 시조 작품 〈망치재 꽃무릇〉에서는 만개한 꽃무릇의 황홀한 군무를 꽃들의 반란으로 읊어 망치재를 흔든다고 읊고 있으니 그 시적 표현에 예사롭지 아니하다.
 둘째 수에서의 무너진 억장이며, 여린 목 길게 뽑아 불러보는 세레나데, 폭죽 되어 터진 꽃 표현은 만개한 꽃무릇을 감칠맛 나게 표현 하였기에 진진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셋째 수엔 윤돌섬의 전설을 등장시켰다. 윤돌섬은 윤씨 삼형제가 ‘해선’이란 절세미인인 아내를 태풍으로 잃은 김망월 영감과 정분이 난 어머니를 위해 돌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섬 이름이다. 그 돌다리를 사람들은 효불효 다리라고 한다. 어머님껜 효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껜 불효이기 때문이다. 전국에 효불효 다리 전설이 많은 줄 안다.
 상사가 붙은 바위나 나무도 있다. 상사바위는 우리 거제 양지암이며 상사나무는 연리지이다. 상사는 애닲은 그리움이다.
 시인은 상사의 그리움을 틀어 올리어 석산잠을 꽂고 싶다고 삼수 연작 시조의 대미를 석산잠으로 마무리 했다. 잠(簪)은 비녀의 한자어다. ‘石蒜簪’으로 해서 〈망치재 꽃무릇〉은 佳作이 되었다.
 올해 꽃무릇은 코로나 19로 인해 화려함이 조금 바랜 것 같다. 내년을 기약해 본다. 수수한 일상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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