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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거제찬가]'산달도패총 (山達島貝塚)'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시인/수필가

                    산달도패총 (山達島貝塚)

거제도는 선사시대 유적지가 많이 있다. 산달도 패총은 필자가 1970년  발견하여 동아대학 심봉근 교수와 경남도 이굉지 사무관과 함께 그 해 겨울에 본격적인 조사를 했다.
 
 산달도는 거제면 법동리에 속해 있는 마을로 산달전등(山達前嶝). 산달후등(山達後嶝).  실리(實里) 3개 마을이 있다. 가구는 178호, 인구는 735명이다. 면적은 8십 9만 8천평으로 전 38.4ha, 답 26ha이다.
  
 사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어업이 주업이다.  1970년 전까지는 대부분 삼각망. 호망.  채낚기 등으로 영세한 어업을 하였으나 어자원이 풍부하여  살기좋은 고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던 어패류도 고갈되고 섬 주위는 굴 홍합 양식장으로 변했다.
  
 교통편은 도선을 이용해야 한다 도선은  거제 각산 부두나 법동포에서 타는데 편하다.
  산달도란 마을 뒷산이 삼봉(三峰)으로  산 봉우리마다 세개의 달이 솟아 오른다고 하여 삼달이라 한 것이 산달로 어원이 변했다는 말이 있고, 또는 산이 메산(山)자와 같이 생겼다고 산달섬이라 한다는 말이 있다.
  
산달도는 타원형으로 생긴 섬이 거제만 입구에 남북으로 조용히 앉아 있다 제1호 패총은  산달  전등에서 북단을  돌아 5백 m쯤 가면 바닷가 언덕에 조개 껍질이 노출된 채 패총지가 있다.

  여기가 새밭등이다. 주위는 산과 바다 그리고, 전답이있다. 산록에서 전답 있는 곳으로 해서 바닷가까지  5m에서 10m 폭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1982년 새마을 도로사업으로 일부가 없어졌고, 그 때 패총지가 완전히 표출된 것이다.
  
패총지에서  발견된 토기는  무문후육토기(無文厚肉土器)다. 제2호 패총은 1호 패총을 지나  바닷가를 따라가면 섬의 동남단  따뜻한 바닷가  시루마을(實里) 457의 1번지
박해형(朴海炯)씨 굴 가공 공장  용지와 457번지 정상욱씨 밭  일대에 주위  1백여  m가 패총지였다.  여기서도 무문후육토기편린(無文厚肉土器片麟) 등이  많이 발견되
었다.

  거제도에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정착하여 살 수 있었던 것은 지형적으로 볼 때 사람 살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기후가  따뜻하여 옷 걱정없이 살 수 있는 곳이고, 둘째는 자연식(自然食)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달도는 산방산과 계룡산 그리고,  노자산이 높이 솟아 있는 가운데 깊숙이 파고 들어 있다.  섬 바깥쪽에는 한산도와 비진도가 가로 막고 섰기  때문에 모진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또 외적으로부터 자연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식은 굴, 홍합 등 해산물이 지천을 이루었다. 패총은 자연식을 구해 먹고 살던  사람들이 버린 조개 껍질 등의 쓰레기 더미를 말한다. 산달  시루마을은 양지마을로  식수도 풍부하고 조개, 홍합 등이 잘 자라고 있어 일찍부터 인류가 정착하여 살았던 것 같다.

산달도 위치 지도
거제시홈페이지에 실린 산달도 패총 그림
거제시홈페이지에 실린 산달도 패총 설명문
산달도 안내표지판
산달도 패총기록이 적힌 거제도 연대표
산달도의 굴패각
패총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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