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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31] '땅따먹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땅따먹기
                                            심 인 자

여자아이 서넛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머리를 바짝 묶은 정숙이도 보이고 단발머리 순영이도 보인다. 그 속에 나도 있다. 앞머리가 흘러내리는지 연신 쓸어 올리며 한 곳에 시선을 모은다. 손톱에 시커멓게 흙 때가 낀 것도 아랑곳 않는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하는지.
  구슬땀을 흘리며 영역 넓히기에 여념이 없다.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 사금파리를 손가락으로 튕겨 멈춰선 자리까지 뼘을 센다. 그런 다음 셈 한 만큼 자신의 땅을 넓혀나가는 놀이다. 사금파리가 원 밖을 나가면 그 다음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긴장 되는지 맞붙인 엄지와 중지손가락이 미세하게 떨고 있다.
  뼘을 잴 때는 힘을 빼서 한 뼘이라도 덜 재야한다. 그래야 땅을 더 차지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악바리다. 제법 많은 거리를 잰 내가 엄지와 가장 긴 중지에 힘을 바짝 주어 땅을 넓히려는데 아이들이 일어선다.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옷자락을 거머쥐며 못 가게 막는다.
  옥신각신 다투다 잠에서 깼다. 화가 채 삭지 않았는지 숨이 차다. 내 차례인데 가버리는 친구들이 너무 얄미워 악을 썼더니 목이 잠겼다. 깨고서도 한동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어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본다. 요즘 땅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계약한 땅을 찾아가다 길을 잃어 애먹는 꿈을 꾸기도 하고, 분명히 내 땅인데 자기 땅이라며 억지를 피우니 기막혀하는 꿈도 꾼다. 놓았다지만 아직도 그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인가.
  오년 전, 도심에서 비껴간 한적한 동네 끝자락에 한 마지기 남짓한 땅을 장만했다. 주변에 건물도 없고 앞이 훤히 트여 있어 가장자리에 집을 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들 출가시켜 내보내고 나면 남향으로 두어 칸 방을 내고 나머지 땅은 몽땅 텃밭을 꾸릴 계획을 세웠다. 아파트촌을 벗어나 흙을 일궈 푸성귀나 가꾸며 노년을 보내려는 생각이니 땅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틈나면 땅을 둘러보러 왔다.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토질이 얼마나 좋은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씨앗을 뿌리면 금방이라도 싹을 틔울 것처럼 촉촉한 흙을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내 땅임을 확인하곤 했다.
  밭 가로 유자나무와 감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키가 높아가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높은 가지를 쳐주고 거름을 했더니 먹음직한 감이 많이 열렸다. 기대 안한 작은 감나무에도 대봉감이 열 개 넘게 달렸다. 유자 향은 또 어떤가. 약을 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무공해 아닌가.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하니 얼마나 흐뭇한지.
  여태 모아온 상비금과 아이들 첫돌 때부터 부어온 적금을 합쳐 벼르고 고른 끝에 장만한 땅이었다. 값비싼 땅도 아니고 도심 속의 요지도 아니지만 내겐 오랜 꿈이었으니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살았다. 농번기 때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쁜 중에 우리 집 식구들만 한가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어머니 혼자 농사일을 할 수 없어 논밭을 정리했다고 한다. 어릴 적이니 도무지 기억에 없다. 친구들이 밭에 가서 무며 배추를 설렁설렁 뽑아오고, 고구마를 캐 풀밭에 쓱쓱 문질러 깨물어 먹는 걸 보면 부러웠다. 입이 잔뜩 나온 친구 뒤를 따라나서며 참에 곁들일 주전자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재밌기만 한데 일하기도 싫고 심부름도 싫다며 도망가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땅에서 고구마도 캐고 상추며 풋고추도 따고 싶었다. 밭둑에 뻗어가는 호박잎을 따서 쌈도 싸먹고 풋 호박으로 된장국도 끓여 먹고 싶었다. 그러나 학창시절을 보내고도 우리 집은 여전히 땅을 장만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겨우 내 땅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바람을 이룬 것이다. 잘 자라는 푸성귀를 보며 대견해 했고, 주렁주렁 달린 감을 따면서 혼자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시였다. 더 이상 주먹만 한 감을 따던 촉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서운했다.  추운 겨울에 향기로운 유자 향을 음미하며 차 한 잔의 낭만도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감격하고 뿌듯해하던 가슴 벅찬 감동도 삽시간에 수그러들었다.
  남편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땅을 내놓자 했다. 부모님의 시골집을 새로 지어드리자는 것이다. 자리보전하신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자 함이었다. 듣는 순간 손사래부터 쳤다. 어림없는 일이라며. 위에 두 분 형님이 있는데 굳이 건강도 안 좋은 당신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무 자르듯 단호히 잘랐지만 며칠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장만한 땅인데 싶어 머리를 흔들다가도 남편의 풀죽은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약해졌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 겹쳐지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애가 타들어갔다. 내 안의 나와 때 아닌 전쟁을 밤낮으로 치렀다.
  오랜 갈등과 숙고 끝에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땅을 내놓았다. 새 주인이 나타나지 말았으면 했는데 금시 매입자가 나타나니 내 것이 안 될 운명이었나 싶다. 넘겨주면서 마지막으로 땅을 둘러보고 온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랜만에 시댁에 들렀다. 새집을 보기 위함이다. 상량식을 한 지가 어제 같은데 그 사이 골격이 거의 갖춰져 완성 단계에 들었다. 며칠 안으로 입주도 가능하다고 하니 어머님이 쓰실 생필품을 준비해야겠다. 부모님을 위해서이니 당연 좋은 건데 그간 짧지 않은 가슴앓이를 했다. 기쁨에 가득 찬 어머님의 얼굴을 보니 답답하던 속이 트인다. 거실이 노인정만큼이나 넓다. 온 가족이 다 모일 것을 감안하여 남편이 직접 설계했다는 후문을 아주버님으로부터 들었다.
  건물이 올라가고 남은 자리는 전부 텃밭으로 만들 것이라 한다. 대문 양 옆으로 정원수를 몇 그루 심어 그늘을 만들고 나머지 땅에 푸성귀를 가득 심기로 했다. 식구들 김장거리는 충분하다며 아주버님이 말을 건넨다. 마음보다 말이 얼른 나와 단서를 붙인다. 아직도 땅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인지. 순간 또 땅따먹기에 욕심을 부린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제 몫이에요.”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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