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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29] '추장追葬'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수필당선자

                     추장(追葬)
                                           우   광   미

  ‘뚱 두두 뚜 뚱뚱.’

소리에 마음을 베인다. 천년을 돌아온 소리다. 소리가 소리를 불러내자 왕릉의 봉분은 초록으로 피어나 선명한 윤곽을 하늘에 그린다. 고령 지산동 두산 능선을 따라 이백여 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웅장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옛 공동묘지.

  언덕 아래 내려다 보이는 박물관은 왕릉 원래의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평일이라 입구의 안내원들을 제외하고는 관람객의 발길은 끊어졌다. 고분 안은 고요하고 서늘하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돌출된 관람대 아래 장엄하게 왕이 누워 있다. 석곽 안 목관 아래 잠들어 있다. 주변으로 수십 구의 시신 모형이 석관 속에 누워 있다. 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죽은 순장자들이다. 왕이나 고관이 죽을 때 많은 사람을 죽여서 함께 매장한다는 순장. 부장품들과 함께 매장된다. 이처럼 하나의 봉분 속에 주인공과 순장자를 별도의 매장 공간을 마련하여 묻은 것은 대가야 장송 의례의 한 특징이다. 수혈식이라 추가로 시신을 묻을 수 있는 구조다.

  살아있는 이를 같이 무덤에 묻는 행위는 죽은 후에도 권력과 힘이 유지될 것이라는 삶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의 소산이다. 이 과정에 음악이 동반되었다. 고대 사회에 음악이 갖는 의미는 통치 행위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닌다. 구성원의 일체감과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올리는 음악은 신에게 올리는 거와 다를 바가 없다. 명확한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초월하는 음악의 힘. 악성 우륵이 가야금으로 가야의 음악을 정리하고,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관료들과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조정의 음악을 정비했다는 건 이 무렵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 사이에 무력전쟁 뿐 아니라 문화 경쟁이 치열했다는 반증이다. 또한 대가야의 혼을 신라의 음악 속에 살려 놓았다. 음악을 국가 운영의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삶과 죽음이 동일한 지평에 섰다는 의미이다.

  가야금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소리를 담고 있다. 나무는 베어지고도 살아온 결을 간직하고 있다. 오동나무의 생애가 담겨있다. 장인의 손에서 악기로 빚어지면 악사의 품에서 새 생명을 부여받아 바람을 스치는 그의 이야기를 펼친다. 가야금의 재료가 되는 오동나무의 세포 구조는 매우 성글다.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하여 좋은 소리를 내는 자질을 갖추었다. 울림통 외부에 공기와 습기를 보호하기 위해 하는 옻칠도 좋은 소리의 비결이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현악기들은 정밀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제작됐다. 울림통 구조, 재료가 되는 나무의 세포 형태, 옻칠 등이 어울려 ‘명금’을 만들어 온 것이다.

  가야금 소리는 눈과 비바람을 오롯이 맞으며 제 몸을 삭힌 오동나무와 누에가 낳은 명주실이 만나 빚어내는 천상의 화음이다. 진동하지 않으면 악기가 아니듯 모든 악기는 자신의 몸을 떨어 울리는 소리를 세상 밖으로 내어 놓는다. 소리를 내기 위해선 자기 몸의 일부를 떨어 공기를 흔들어야 한다. 진동된 소리는 울림통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가야금의 울림통은 비어있다. 비어야 울리는 소리처럼 소리란 원래 빈 것인지 모른다. 애초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속에 머무르지 아니하니 제 것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소리들이 만들어지고 나가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울림은 좋아진다. 한 번 내어 놓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한계성을 가진다.

  고요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 소리는 끝없이 태어나 이어지고 흩어진다. 이승과 저승의 길에 소리를 베풀어 북두에 고했을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생각해 본다. 이슬이 넉넉한 순한 밤에 대궐 쪽으로 절을 하고 소리를 베풀어 진혼곡을 북두에 고하던 우륵의 가얏고 소리가 적막을 울리는 듯하다. 소리가 뜨겁고 간절할수록 약수(弱水)를 건너 서천으로 가는 자들의 혼을 달랬으리라.

  창세기에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근절되었었다. 순사, 자순, 순장형태의 장송의례가 있었으나 신라 지증왕 때 순장제도는 금지되었다. 추가로 시신을 묻을 수 있는 수혈식 구조는 어쩌면 순장이 아니라 나중에 곁 묻은 추장(追葬)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이 과정에 반드시 음악이 함께하였다. 살벌하고 서늘하던 그곳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살아서 무엇이든, 어떤 삶을 살았든, 죽어서도 이웃으로, 가족으로 영원히 남고자 하는 염원의 현장이다. 현실의 우리 삶도 이런 간절함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아가기 위해 자진모리로 몰아가던 젊은 날을 돌아본다.

  가야금의 음높이는 안족 일명 기러기발을 이동시켜 조절한다. 연주를 하다보면 줄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 때는 계속 만져줘야 한다. 사람의 관계도 이렇듯 가야금의 기러기발을 만지듯 늘 귀기울이고 가꾸어나가야 아름다운 음악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잊혀진 철의 왕국 찬란했던 꿈이 노오란 산수유 꽃으로 피었는지 박물관 주변이 눈부시다.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해질 녘 능선을 올랐다. 산 아래를 바라보며 숨고르기를 한다. 바람의 물결에 여린 햇살은 진양조의 부드럽고 은은한 소리로 가야의 산에 닿아 보랏빛으로 물든다. 추장追葬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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