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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26] '길 위의 사람'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자유를 갈망했음인가. 꿈을 따라 나섰을까. 등에 진 걸망이 삶의 무게로 가득하다. 바람 부는 데로 구름 가는 데로 정처 없이 흐른다. 무엇을 찾아 나섬인지 버리려는지 자유의 날개는 찢기고 꿈의 파편은 낙엽 되어 뒹군다. 자갈처럼 널려있는 외로움을 삼키며 나그네가 간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허망의 길을 끝없이 간다.

길 위의 사람들은 길에서 즐거움을 얻고 기쁨을 찾는다.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자유에의 비상을 꿈꾼다. 길에 나가지 않으면 생기를 잃고 침체 속에서 허우적댄다. 열정이다. 병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서고 또 나선다. 허나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그 떠돌음도 빛이 난다. 그것이 현실도피가 아닌 까닭이다. 여행은 뭉친 마음을 풀어놓는 작업이고 몸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과정이다.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낯선 곳이어서 더욱 반갑고 대번에 친밀해진다. 함께하면 즐겁고 헤어질 땐 아쉽고 가끔은 그립다. 친구처럼 합류하고 뒤끝 없이 헤어진다. 실리를 따져볼 일 없고 인연에 메일 일도 없어 만남 또한 가볍고 편하다.

세상을 등지고 주저 앉아버린 사람도 마주친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다. 아물지 않는 상처로 방황하는가 하면 자유와 방종을 만끽하는 방랑자도 있고 역마살을 잠재우지 못해 표류하는 부평초도 허다하다. 돌아갈 가정도 의사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도망자이고 떠밀린 자 같기도 하다.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부류다. 길에서 멋과 낭만을 찾지만 고단하고 슬픈 여정이다.

그중에 한 사람 일게다. 긴 머리를 질끈 묵고 뛰 다니는 모습이 가상하다. 부엌에선 조리사고 카페에선 DJ며 갓 태어난 아가의 아비다. 유창한 영어구사와 기발한 유머감각으로 서양인들까지 매료되어 레스토랑이 성시를 이룬다. 어떤 이는 그림 그려 벽에 걸어주며 정착을 기념했고 시 한수 액자에 담아 가정의 화평을 기원한 방랑자도 있다. 부처님 탄생지를 찾아가다 잠시 머문 스님은 아가 이름 지어주며 천륜을 기렸다. 또 다른 이는 감을 깎아 창가에 내걸고 시설을 지켜보며 기다림을 익히게 했다. 그곳에 들리는 모든 사람들이 축복하며 소망했다. 그가 길 위의 삶을 접고 가정에 뿌리내려 잘 살기를 바랐다. 거기 머무는 동안은 궂은일도 마다않고 기꺼이 그를 도왔다.

청춘에 길에 나서 지명이 넘어서도 끝내지 못한 사람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길 위에 묻었으리라. 친일의 대가로 부와 권력을 누려온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역겨워 한 시절 방황했다. 그들이 보장해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지는 자신이 두려웠다. 반항하고 항거하다 부자의 연마저 돌아 앉히고 말았다. 그 골진 갈등으로 화병을 얻은 어미마저 숨을 거뒀다. 어미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한 여행길이었다. 탈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현실의 늪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했다. 돌아보니 젊음을 세월 속에 다 날려 보내고 회한만 남았다 했다. 역사에 속죄하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부모에게도 죄인으로 살았다 참회한다. 부친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큼도 살아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차라리 아버지처럼 치열하게 살았어야했다고

뼛속까지 저미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음이리라. 젊은 여행자를 만나 낯선 길에서 여장을 풀었다. 아이를 얻고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가정을 꾸리고 생활에 몰두한다. 여행자가 많은 인도의 작은 마을 다람살라에 레스토랑을 차렸다. 나그네의 설움을 아는지라 그들의 보금자리로 가게를 꾸려간다. 방문객들이 벽난로 불가에 모여 장작냄새에 취하게 한다. 걸진 술판을 열어 서투른 삶을 탓하며 건배 한다. 거기선 취해서 인생을 논하고 노래하며 밤을 밝힌다.

서러움이 북받치면 어린것의 볼을 비벼 잠을 깨우곤 한다. 따가운 수염에 울음보를 터뜨리는 아가를 품에 안고 눈시울을 적신다. 더는 떠돌지 않고 책임을 다하리라 다짐 할 것이다. 늦게나마 무리지어 사는 법을 깨달은 것 일까. 일상의 행복을 말하고 가정의 화평을 기원한다. 

그러나 그는 점점 표정을 잃어간다. 자주 하늘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내가 조마조마하다. 가족에게 저당 잡힌 자유의 날개가 내부에선 퍼덕거리는가보다. 아직 피를 삭히지 못했음이다. 방랑 끼를 잠재우지 못했음이다. 언뜻언뜻 보이는 공허의 냄새. 바람 이는 소리도 들린다. 다시 불어 닥치고야 말 역마의 바람. 고통의 순례 길에 다시 나서고 말 것만 같다. 알 수없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민다.

노을이 곱다. 홀연히 길 떠나는 나그네의 어깨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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