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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35]강민진-'욕지(欲知) 가는 길 ' ▲강민진:64년욕지도출생/국립경상대사범대학졸/'19년현대시조등단/거제제일중교감/능곡시조교실 수강/거제시조문학회원

[금요거제시조選-35]
                           '욕지(欲知) 가는 길'                  

                             강  민  진

                       통영서 물길 따라
                         남서쪽 팔십 리 길

                        눈에 선한 뱃길이라
                        언제 봐도 정겨웁네

                        긴 세월 꿈속에 그린
                       고향 욕지 가는 길.

                       수묵색 바다 위엔
                       청명한 가을 하늘

                       흰 구름 조각배는
                       신행 가듯 떠나가고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울어대는 저 갈매기.

                      수없이 밀려드는
                      험난한 물살들을

                      말없이 품고 품어
                      윤슬로 피어난 섬

                      아련히 물안개 속에
                      신기루로 떠있다
. 

시에서의 바른 표기
에 표현된 내용은 진실하여야 한다. ‘진실’이란 글자 그대로 ‘참다운(眞)사실’일 것이다. 시는 감동을 통해서 인생의 진실을 깨우치는 것인데 진실을 표현해도 남을 감동시키기란 어려운 일이거든 하물며 거짓으로 어찌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개똥벌레는 반딧불이라는 곤충이다. 반짝이는 불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사랑도 특별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나는 반딧불이가 어느 곤충보다도 아름다운 꿈의 벌레로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여름밤이면 꽁무니에 불을 달고 들판이나 숲속을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의 모습은 그 자체가 환상이었다. 그 때는 반딧불이가 많기도 했다.
 옛날 중국 진(晋)나라 차윤(車胤)은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불을 켤 기름이 없었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잡아 비단주머니에 담아가지고 책을 비추며 공부를 하여 벼슬이 상서랑(尙書郞)에 이르렀다. 오늘날도 서창을 형창(螢窓)이라고 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차윤의 이 이야기는 눈빛으로 책을 읽었던 손강(孫康)의 일화와 함께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사자성어로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반딧불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애벌레도 일급 청정수에서만 살 수 있고 어른벌레도 오염된 환경에서는 살지 못하는 대표적 청정곤충이기 때문에 지금은 멸종위기에 있어 정부에서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보호 하고 있지만 보존이 어려운 정도다.
 천명사상(賤名思想)이란 것이 있다. 아명(兒名)을 천하게 짓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명은 어릴 때 정식 이름을 짓기 전에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사용하는 친근한 이름이다. 아명을 주로 천하게 지은 것은 높은 유아 사망률과 미신 때문이었다. 유아 사망률이 높은 것을 두고 역신(疫神)이 어린이를 잡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역신의 시기를 받지 않도록 이름을 천하게 지은 것 이었다. 홍역을 치를 나이가 지나면 이제 살았다는 의미인지 비로소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었다.
 아명을 사대부 집안에선 악귀를 막는 의미의 한자를 아명으로 썼고 평민의 집안에선 ‘똥’‘개’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아명으로 많이 썼다. 조선의 고종임금의 아명은 ‘개똥이’였다. 이는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평민과 다름없었던 흥선 대원군의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한 곤충을 두고 부르는 ‘개똥벌레’와 ‘반딧불이’라는 두 이름이 너무 생뚱맞기에 ‘개똥벌레’가 ‘반딧불이’의 아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애창되는 대중가요 중에 ‘개똥벌레’가 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저 개똥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개똥벌레」일부-

 이런 내용이다. 개똥벌레는 개똥무덤에 살기 때문에 더럽다고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아 밤마다 외로운 가슴안고 울다가 혼자 잠이 든다는 것이다.
 이 곡은 ‘홀로 아리랑’으로 유명세를 탔던 한돌 작사 작곡이다. 한돌은 이 곡으로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과 초대 한국 노랫말 대상까지 수상했다. ‘개똥벌레’를 부른 신형원은 경희 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가요 “개똥벌레”가 오염된 환경에서는 살지 못하는 반딧불이를 두고 개똥 속에서 사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벌레로 만들어버렸다. 문학작품을 통한 간접체험이 생활의 지혜와 도덕적 교훈을 깨우쳐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 곤충의 실체를 왜곡하여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느 가수가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 강바람 타고 훨훨 / 네 곁으로 간다”고 하는 『민들레 홀씨 되어』 라는 노래를 유행시키자 “민들레 홀씨”라는 말이 동시나 성인시 가릴 것 없이 끼어들어 이제는 “민들레 씨앗”이라는 말이 없어져 버리고 민들레 씨앗은 아예 홀씨가 되어 버렸다.
 홀씨는 한자로 포자(胞子)라고 한다. 포자는 고사리, 버섯, 이끼, 해초 같은 식물에서 무성생식(無性生殖)을 위해 형성되는 세포이다. 민들레는 씨앗(種子)이지 홀씨(胞子)가 아니다.
 얼마 전 우송되어온 “민들레 홀씨 날리듯”이라 題한 시조집을 받았다. 모 교수의 열두 번째 시조집이었다. 그 시조집 말미엔 표제작인 “민들레 홀씨 날리 듯”의 악보도 곁들여 있었다. 240쪽에 이르는 꽤 두터운 시조집을 두고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개똥벌레」나 「민들레 홀씨 되어」의 작사가가 알고도 이런 가사를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시인에게는 시를 통해서 국민정서는 물론이고 바른말 쓰기와 고운언어의 생활화를 선도해서 언어문화를 높여 가야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시는 마음의 그림이니, 영혼의 음악이니 하면서 사실을 비틀고 모습을 바꾸어 잘못된 것을 보여 주어서는 곤란하고, 더구나 고유명사를 전혀 뜻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의 기능 중에는 통합적인 인간 교육의 중요수단으로의 가치도 높기에 시가 독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욕지 가는 길〉은 강민진 시인의 작품인데 3수 연작으로 성묘길 여객선 선미에서의 감회를 읊은 서정시조다.시인은 고향 욕지 가는 길은 쪽빛 비단을 깔아놓고 기다리는 듯, 늘 새롭고 설레인단다.

 첫 수에선 긴 세월 꿈속에 그린 고향 욕지 가는 길을 읊었다. 시인은 초가을 부모님 산소 성묘하려 길을 나섰다. / 통영서 물길 따라 남서쪽 팔십 리 길 / 이다. 여객선 선미에서 바라본 뱃길은 물살에 이내 지워 지지만 하 오래 보아 왔기에 / 눈에 선한 뱃길이라 언제 봐도 정겨웁다. / 그 뱃길은 / 긴 세월 꿈속에 그린 고향 욕지 가는 길 / 이다.

 둘째 수에선 뱃전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 수묵색 바다 위  청명한 가을 하늘에 / 듬성듬성 흰 구름이 조각배인양 떠 다닌다. / 흰 구름 조각배는 신행 가듯 떠나가고 / 있다. 신행은 혼인할 때 신랑이 신부 집에 가거나 신부가 신랑 집에 가는 것을 말한다. 떠나가는 흰 구름을 두고 신행 가듯 간다니, 그 표현이 신선하고 감명을 준다.
 뱃머리는 물살을 가르고 떴다가 또 가라앉았다 하는 여객선을 뒤따르며 울어대는 저 갈매기, 그 정경은 한 폭의 풍경화다.
 
 셋째 수에선 신기루로 떠있는 고향 욕지도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읊었다. / 수없이 밀려드는 험난한 물살들을 /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 말없이 품고 품어 윤슬로 피어난 섬 / 이다. 꿈속에 그리던 고향 욕지도가 / 아련히 물안개 속에 신기루로 떠있다. 서정시가 성공하려면 영롱하고 재치 있는 언어의 기교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신기루야 말로 영롱하고 재치 있는 언어이기에 〈욕지 가는 길〉을 살리고 있다.

 망망대해 둘러싸인 욕지섬은 뭇사람들의 안식처요 보금자리라고 시인은 말한다.
 욕지도는 수목이 울창하고 약초가 많아 골짜기 마다 사슴이 뛰놀아 녹도(鹿島)라고 불렀다. 이후 욕지항 안에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浴地)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섬의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과 섬 북쪽의 약과봉은 급경사를 이루면서 곳곳에 험준한 벼랑이 생겨있다. 해안이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 졌기에 풍광이 아름다우며 온난한 해양성 기후로 팔손이, 동백, 모밀잡밤나무, 풍란의 서식지이다.

 험난한 파도와 맞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욕지섬의 어버이 들은 어쩌면 의연한 섬과도 같은 사람들이다.초가을 어느 날 통영 삼덕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그 섬 한켠에 모신 선영으로 성묘길에 나선 시인,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줄지은 물살 속에 유년이 되살아났다. 한 여름 내내 물장구치고 자맥질 하던 친구들의 모습들이 선하게 떠오른다. 따가운 햇살에 그을린 등짝이 아파 잠 못 이루던 밤에 쓸어 주시던 어머님의 손길도 생각난다. 시인의 눈가엔 어느새 이슬이 맺힌다.

 문득 강은철이 노래한 /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 라는 〈삼포로 가는 길〉 가요가 생각난다. 2008년 1월 진해시에서는 진해 시 웅천동 삼포마을 도로가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를 세웠다.

 시인의 고향 욕지도에 시인의 시비가 세워질 날을 기대해본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지 않던가. 여우는 구릉에 굴을 파고 사는데 죽을 때도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 쪽에 둔단다. 모르긴 해도 시인은 죽어 선영아래 묻힐 것 같다. 고향 욕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에 해본 말이다.

 여객선 선미에 서있는 시인을 본다. 수묵색 바다 위에는 흰 구름이 신행 가듯 가고 있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뒤 따르는 갈매기는 오늘 따라 어찌 그리 울어 대는지, 저멀리 아련히 물안개 속에 고향 욕지도가 신기루처럼 보인다. 향그린 고향이기에 고향 욕지도의 모습이 신기루로 보인단다. 어찌 한 수 詩를 읊지 않으리오. 아버님의 잔잔한 미소가 어머님의 따스한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운데 어찌 눈물을 훔치지 않으리오.고향 욕지도가 신기루로 떠 있는데....<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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