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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36]허원영-' 한라수선화 ' ▲허원영:시인/낭송가/시조창가/2010년시사문단/현대시조등단/거제문인협회이사/청마기념사업회이사/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부회장/대한시조협회거제시지회사무국장

[금요거제시조選-36]
                           '한라수선화' (-갤러리에서)                

                             허  원  영

                              산 그림자 길게 늘인
                             나른한 봄날 오후

                             새끼 오리 자맥질에
                             물장군* 놀라 숨고
 
                             남녘땅
                             한라 수선화
                             앞다투어 꽃피운다.


                            꽃대궁 길게 올려
                            피워 낸 하얀 꽃잎

                            노랑나비 한 마리가
                            복판에 숨어들어

                            향기에
                            취한지 오래
                            깨어날 줄 모른다.

                    *물장군 : 노린재목 물장군과의 곤충                                      

사설시조와 양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지은 연시조다. 작자가 65세 되던 해인 1651년 (효종2년) 가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라고 한다. 고산의 작품가운데서도 오우가(五友歌)와 아울러 으뜸이라 할 이 작품은 〈고산유고〉에 실려 전한다.

앞강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밀려가고 밀물은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어부사시사 〈춘사1〉 전문-

어부는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직업인이나 어부사시사에서의 어부는 漁夫가 아닌 漁父임을 미루어 보아 뱃놀이 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십수 년 전 보길도의 부용동으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계곡을 막아 만든 연못은 본래 지금 보다 훨씬 넓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부를 메워 보길초등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기둥을 박아 정자를 지은 흔적이 있었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간 1639년은 병자호란(1636년)을 겪은지 3년이 지난 뒤였다. 이때는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에 이어 병자호란까지 당한 때 였으니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끝내는 반상제도의 기틀을 뒤흔들게까지 하던 국난기였다. 이러한 때에 여러 채의 정자를 짓고 뱃놀이를 즐긴 행동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하여도 좋게 보아지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고산이 죽었을 때 해남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고산이 밤에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횃불을 올려 해남 사람들에게 술을 싣고 보길도까지 오게 했는데, 이제는 목숨 걸 일이 없어져 그랬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이야기가 지금껏 전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분명 잘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윤선도는 약 20년간 유배 생활을 하고 19년간 은거하면서도 정3품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해남에 있는 그의 집 녹우당에 가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조선의 지식인이며 정치 지도자였다. 비록 당시는 신분사회라고 해도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세연정에서 배불리 먹고 객들과 한가롭게 풍류를 즐겼다면 덕있는 선비로서의 처세는 아니었지 싶다. 보길도 섬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지경인데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하면서 뱃놀이를 즐겼다면 당시 사람들은 덕 있는 사람이라 칭송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후기에 세상이 곪아 터질대로 곪아 터지자 급기야 민초들은 판소리를 만들고, 사설시조를 짓고, 탈춤을 추면서 양반들을 조롱했다.“양반 양반 한냥 반, 개 팔아 두냥 반, 돼지 팔아 석 냥 반”이라고 하거나 “개잘량(개가죽)이란 ‘양’자에 소반 ‘반’자를 쓰는 양반”이라고 양반을 풍자하고 개돼지만도 못한 양반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시조는 사대부의 사상을 담았고 사설시조는 익살, 풍자와 분방한 체험을 표현한 평민적인 것이 대부분이다.사설시조를 내용에 따라 살펴보면 당대 평민들의 삶과 진솔한 정감을 역동적으로 노래한 것이 있고, 성적 충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당대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작품도 상당하다. 
이러한 사설시조는 도덕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 반면 사대부적 삶에 대한 동경과 그릇된 가치 규범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한라수선화〉는 허원영 시인의 작품으로 ‘갤러리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서정시조다. 거제시 거제면에 소재한 ‘초담갤러리’에 전시된 한라수선화를 소재로한 작품들을 접한 후 창작한 작품이라고 시작 노트에서 밝혔다.

첫 수에선 한가로운 봄의 서정을 읊었다.
/ 산 그림자 길게 늘인 나른한 봄 날 오후 / 어미를 따라 자맥질하는 오리새끼, 출렁이는 물살에 놀라 육식성 물벌레인 물장군이 숨고 있다. 봄이 빠른 /남녘 땅 한라수선화 앞다투어 꽃피운다. / 한두 송이면 모를까 군락을 이루면 장관이다. 봄바람에 간들거리면 아! 하고 탄성이 절로인다.

둘째 수에선 금잔옥대라 별칭하는 수선화의 자태를 읊었다. 수선화의 꽃대궁은 조금 가녀리다. 그 꽃대궁을 힘껏 뽑아 올려 하이얀 꽃을 피워 냈다. 그런데 꽃송이가 하나 더 있다. 수선화는 꽃받침과 꽃잎 안쪽에 금잔을 닮은 노란 꽃 송이가 하나 더 얹혀있다. 이를 / 노랑 나비 한 마리가 복판에 숨어들어 / 있단다. 그 표현이 싱그럽다. 그 숨어든 노랑나비가 / 향기에 취한지 오래 깨어날 줄 모른다/고 은은한 수선화 향기를 그려낸 솜씨가 예사롭지 아니하다.

수선화(水仙花) 는 물에 사는 선녀 혹은 신선 같은 꽃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받침과 꽃잎 안쪽에 금잔을 닮은 꽃송이가 하나 더 얹혀 있어 그 모양 때문에 수선화를 ‘금잔옥대’라고도 부른다. 제주도에선 눈 속에서도 핀다고 하여 설중화(雪中花)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기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어 났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자존심이다.

한라수선화를 두고는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임하필기(林下筆記)에 1840년 제주도로 귀양한 추사가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널리 알렸다고 했다. 임하필기는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지은 책이다. 이유원은 1881년 거제도 유배되어 뒷날 저서 ‘가오고략’에서 ‘서불과차’ 석각을 보고 시를 읊어 ‘갈도석각가’를 남긴 사람이다.
수선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중해의 연안에 자생한다. 우리나라의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중부 이북에서는 월동이 어려워 詩로만 언급되어 오다가 조선후기에 중국을 통해 유입되면서 완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추사는 평생의 지기였던 권돈인(1783~1859)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주 수선화는 산과 들, 밭두둑에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 없는 곳이 없을 만큼 피어나 천하의 구경꺼리라 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이 꽃을 귀한 줄 몰라 소나 말에게 먹이고 짖밟아 버리거나 호미로 파내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추사는 천대 받는 이 꽃과 자신을 동일시 했다. 마구 뽑혀지고 버려지는 수선화를 두고 하나의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이런 딱한 일을 당한다면서 자신의 처지를 수선화에 비유했다.
제주도에만 수선화가 있는게 아니다. 거제에도 수선화의 명소가 있다. 강명식·지사악 노부부가 평생을 땀으로 일구어낸 거제8경의 한 곳인 공곶이 수선화 밭이 그 곳이다. 김민종과 김유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종려나무 숲”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한사람의 집념으로 해서 비길데 없는 거제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손녀가 여섯 살 땐가 수선화 꽃을 보고 “계란후라이” 꽃이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그 손녀가 자라 내년에 수능을 치른다. 몇 번이나 더 수선화 꽃을 볼련지 할애비는 마음이 수수롭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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