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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윤정희] 차표 한 장윤정희:거제출생/거제대학평생교육원수필창작반수료/2012《수필과 비평》신인상수상/계룡수필문학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

흰 두건을 쓴 사람들의 어깨에는 꽃상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상두꾼 앞잡이가 초성 좋게 앞소리를 메기니 상두꾼들이 우렁찬 후렴으로 상여를 어른다. 자손들의 곡소리도 더욱 애잔하다. 나도 고인과 무관하지 않은지 흐느끼고 있었다.

잠을 깼다. 꿈이었다. 베개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누구였을까. 분명히 느끼고 보고 눈물도 흘렸는데 실체가 없다. 새벽 두 시, 꿈 때문인지 심란하다. 이리저리 뒤척여도 사뭇 잠이 들지 않는다. 문득 어릴 때부터 내가 존경하던 고향 어르신의 장례식이 생각난다. 한 이십 년 전 쯤 되었을까. 꽃상려로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을 본 것이 그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고향으로 황급히 쫓아갔다. 고인의 집 앞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그곳에서 상여를 꾸며 어르고 마지막 가시는 고인을 위해서 노제를 모신다. 그 음식으로 가족과 지인들, 상두꾼들, 동네 사람들이 이별의 잔을 나누며 슬픔을 털어내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예를 갖춘다.

다시 상두꾼들은 상여를 매고 어르니 앞소리꾼의 만가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갑자기 소리를 멈춘 앞소리꾼의 요청이 있었다. 고인이 살아생전에 당신의 장례식 때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 ‘차표 한 장’을 상여 앞에서 불러달라는 부탁이 있었단다. 생전에 어르신이 노래 부르시는 걸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생뚱맞게 이 순간에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셨을까. 그 깊은 심정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뜬금없는 요청에 상문객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가까이 서있던 나의 지인이 호명되었다. 시골 마을이었지만 지인은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지인은 황당하고 면구스러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상항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아마도 어르신께선 누군가 불러주는 이 노래로 남아 있는 부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평소에 흘려듣던 노래인데, 어쩜 노래 가사가 이승과 저승의 환승역에서 부르기에 이리도 꼭 맞을까. 유족들의 곡소리도 더욱 애절해졌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행복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일까. 만감이 교차했다.

어르신은 평생을 공직에 계시다 퇴임하셨다. 올곧은 성품으로 직장생활은 순탄하셨지만 가정은 뜻대로 이끌지는 못하신 것 같다. 남편의 박봉에, 많은 자식에 가정을 꾸리기 힘드셨던 부인이 있었다. 그녀의 불평불만에 평생을 참고 인내하며 묵묵히 직장에 충실하셨다. 지난 날 어려웠던 그 댁의 참상이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 편에 서 있고 이웃마저도 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부인의 외로움은 분함으로 넘쳐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부부의 일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범주 밖의 일이라 해도 생과 죽음으로 갈라서는 자리에서 싫었든, 좋았든 평생을 같이한 부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직접 전하고 가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장례식 날 문상객들이 모인 앞에서 노래를 부탁하시는 그 마음이 연민의 정이었다면 생존해계실 때 왜 조금 더 용기를 내지 못하셨을까. 장례식을 보면서 평소에 존경해왔던 어르신의 태도가 무색해 떠나보내는 마음이 내내 씁쓸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나 역시 공직에 있는 남편을 만나 반평생을 보냈다. 아이들이 한창 성장하는 젊은 시기에는 박봉으로 어렵고 힘들어 짜증도 내고 불평도 하였다.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은 대리 숙직에, 대리 일직에 나를 힘들게 했다. 다행히 내 남편은 그렇게 무심하진 않았다. 혹시 쉬는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상한 애들 아빠로, 남편으로 돌아와 나의 고단함을 풀어주었다. 아마도 미운 정보다 고운 정이 깊었기에 여태 별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 나이까지 숫자로 센다면 한참은 세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점도 많다. 노년은 인생에서 느린 속도가 허락된 시간이고 천천히 해도 용납이 된다. 나이가 드니 생활이 단순해졌다. 의무도 책임도 줄어들고 마음이 여유롭다. 살아내는 게 바빴던 지난날에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좋다. 진도가 느려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부부끼리 토닥토닥 싸워도 웬만한 일이면 빨리 화해를 한다. 그동안 붉혔던 얼굴을 지금은 걷어내어야 할 시간이다. 

요즈음 마음이 참 평온하다. 내 인생에 언제 이런 때가 있었던가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문득문득 내일이 염려되어 오늘을 숨기고 싶을 때도 있다. 누구도 내일을 가늠하지 못하니 오늘에 집중하자고 다짐을 한다. 지난날 나를 옭아매었던 자승자박의 길에서 벗어나 이제는 물이 흐르는 듯한 삶이고 싶다. 딸과 마주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에둘러 말하지 않아도 지난 일들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한다. 딸도 어느 듯 나이가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와 딸의 세월을 같이 논해도 별로 스스럼없다. 다만 자식의 세월은 좀 더디게 갔으면 하고 억지를 부려본다.

깊어가는 가을, 쭉 뻗은 농로를 오늘도 걸어간다. 언제부턴가 이 길을 좋아하게 되었다. 들판 한 가운데 큰 개천을 끼고 양편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다. 군데군데 전원주택이 서있고 나지막한 산 아래 아름다운 주택들이 눈길을 끈다. 엊그제까지도 벼가 익은 누런 들판이었다. 어느 하루 추수를 시작하더니 며칠 사이 들판이 휑하니 비어버렸다. 을씨년스럽다. 그날 나는 농부의 미소를 보았다. 올해도 농부가 만족할 만큼 수확을 했으리라. 짐작이 가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나의 미소와 저 농부의 미소가 별 다를 바가 없다. 지름길 없었던 나의 인생길도 어느 순간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선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못다한 마음을 남에게 노래로 부탁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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