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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범준]'조선소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며'김범준: 거제정책연구소장/ 부산대 특임교수

 가슴 아픈 소식을 접했다.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던 물량 팀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고인이 남긴 유서는 더 가슴을 저미게 했다. “나 한목숨 살자고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조선소 구조가 이렇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인은 원청·하청을 거쳐 내려오는 기성금 삭감 때문에 괴로워했고 조선소 하도급의 가장 아래인 물량팀을 이끌면서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40대의 젊은 가장이 조선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러한 비극은 고스란히 거제시민 전체의 슬픔으로 연결된다. 거제시민의 70%가 직간접으로 조선소와 연관되어 밥을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코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원청과 하청, 물량팀, 돌관팀 등 일반 국민에게는 낯설지만, 거제시민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들인 이러한 조선소 하도급 구조에서 ‘사고나 비극은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라고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까?

조선소 하청과 택배 노동자
지난 2016년,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업체 물량 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일이 있었다. 소위 대형조선사의 하청업체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한 원인이라고 하나 근원적으로는 하도급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17년 5월,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붕괴 사고 당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는데 이들 희생자 31명은 모두 협력업체나 물량팀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조선업에서 사내 하청은 '입안의 혀'로 불린다. 원청 입장에서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어 기업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고, 불황기에는 사내 하청 노동자 고용 축소로 현장인력을 감축해 고용 탄력성을 확보한다. 반면 호황기에는 이를 증대해 인건비 절감 효과를 누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의 성장이 정체되자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대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되고 있다.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들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가장 손쉬운 해고 대상자들이다. 물량팀의 특성상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가 많아 어떤 보호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조선업종의 특성상 하도급 체계에 대한 개선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또 이들에 대한 사전적 구제책도 없이 조선업 구조조정의 시급성만 강조하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결정이 물량팀을 양산하는 모순을 만든다.

한동안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에 따른 사망 사건으로 온 대한민국이 들끓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시간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이나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것은 그로 인해 널리 알려졌지만, 조선소 현장에서의 노동 강도나 근무환경은 실제 조선소를 체험하지 않으면 사실상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조선소에서의 산재 사고나 각종 비극도 조선소 내에서 쉬쉬하며 넘어가기 일쑤라 외부에서 그 실체를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중대 재해 처벌법과 공정위 고발
해결방법은 없을까?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해법이 보인다. 단언컨대, 문제의 원인은 원청 기업에 있다. 원청이 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조선소의 하도급 구조적 모순을 법적으로 해결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중대 재해 처벌법’안에 대한 진일보된 인식을 공유하게 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 해결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중대 재해 처벌법’안에 여야를 넘은 공감대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은 특히 조선 도시인 우리 거제의 입장에서 상당히 주목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법안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와 과잉금지 원칙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는 깊이 공감한다. 무조건 형벌 만능주의로 가면 안 되겠지만 그동안 처벌이 미약하다 보니 예방이 제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정치권에서의 합리적인 법안 통과 움직임에 대해 반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거제의 경우는 어느 지역보다도 이 법안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이 법의 적용 대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파적 정체성과 상관없는 지역사회 생존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에 대한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된 법적 장치를 확보해서 앞으로는 조선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젊은 가장이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거제시민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이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도급 갑질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과징금 부과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법인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실로 의미 있는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거대한 조선소의 큰 권력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자식의 안위를 걱정해 조선소에 고개 숙인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가 맞닥트려야 할 구조적 모순과 잘못된 관행을 깨트리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 싸움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의 제정이나 관행적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부의 결정 등이 우리 거제가 지금보다 조금 더 ‘약자가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데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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