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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43]김용호-'오빠라고 불러 줄 때 ' ▲김용호:일운면출신/전국시조가사공모전최우수상/거제시조문학회편집장/한국문협.거제문협회원/능곡시조교실수강/시조집'선운사꽃무릇'시집'갯민숭달팽이

[금요거제시조選-43]
'오빠라고 불러 줄 때'  
 

 

 

 

 

  

                              
   김    용   호

춘자는
‘오라버니’라 예스럽게 부른다
나 또한 허리 세워 의젓한 걸음이고
정다운 그녀를 위해 꽃송이도 챙긴다.

영희는
‘오랍씨’라고 고향 말로 불러준다
나란히 어깨 붙여 들길을 걷고 싶고
휘파람 높이 불면서 팔짱도 끼고 싶다.

희숙이의
‘옵빠’에는 쓸쓸한 교태 있다
나 어찌 쓸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끝없이 눈 내리는 길 같이 공유 하고 싶다.


◎시조 한 수의 역사적 평가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청령포는 앞으로 강물이 휘돌아 나가고 뒤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감옥이나 다름없다. 선착장 오른쪽 숲속에는 500여 년 전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드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읊은 시조를 새긴 비석이 있다.

1452년 병약한 조선의 제5대 임금 문종은 왕위에 오른지 2년 만에 병사하였다. 문종 승하 후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수렴청정을 할 대비도 모후도 세상을 떠나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이 단종을 보좌하였다. 그러나 삼촌인 수양대군은 단종 1년에 계유정란을 일으켜 충신 김종서를 필두로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를 근거로 황보인, 정분 등 충신을 죽였다.

단종 3년, 15살의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했다.이때 세종대왕이 특별히 어린 손자 단종을 부탁한 신하 중 정인지, 신숙주가 단종을 배신하는 패륜을 저질렀다.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고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보냈는데 신숙주가 후환을 두려워하여 노산군의 사형을 선창, 정인지가 후창으로 화답했다.

정인지와 신숙주는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를 창제하고 각각 대제학과 직제학에 오른 충신이자 충복이었다 서양사 중에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말을 남기고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몰아내고 독재관이 된 후 대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는 꿈을 키웠다.

카이사르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는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의 동지이자 양자인 브루투스 편에 서서 카이사르의 암살을 계획했다. 드디어 그날 브루투스를 지지하는 일당은 카이사르를 무참히 살해했다. 암살단 중에서 브루투스를 발견한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너 마져”라는 단말마를 내뱉고 잔인한 죽음을 맞았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브루투스 너 마져”라는 말을 남긴 카이사르는 ‘시저’라는 영어식 표현으로 더욱 유명하다.왕방연(王邦衍)이 단종을 호송하고 영월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곡탄 언덕에 앉아 지었다는 시조 〈단장가〉가 있다. 출전은 〈청구영언〉이다. 冒頭의 시조비에 새겨있는 시조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단장가’, 전문-

왕방연의 〈단장가〉는 연군가(戀君歌)다. 연군가는 임금을 향한 신하의 변치 않는 충정과 절개를 형상화한 시가이다. 연군가의 원류는 거제와 관련이 있는 정서의 〈정과정곡〉이고 정철의 〈사미인곡〉〈속 사미인곡〉이 연군가의 계열이다. 광해군 때인 1617년 병조참의를 지내던 용계 김지남이 영월지방 순시 때 아이들이 이 시조를 노랫가락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한시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千里遠遠道 천만리 머나먼 길에
        美人離別秋 고운 님 여의옵고
        此心無所着 내마음 둘데 없어
        下馬臨川流 말 내려 냇가에 앉았으니
        川流亦如我 강물도 나와 같아서
        嗚咽去不休 울며 쉬지 않고 흐르누나

왕방연은 단종을 호송한 후 서울로 돌아와 관직을 그만두고 중량천 건너 송계원 근처 왕방골에 자리를 잡고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유배지로 떠나는 단종이 갈증으로 인해 물을 마시고 싶어 했으나 물 한 그릇도 국법에 어긋난다 하여 올리지 못했던 그는 단종이 승하한 날이 되면 자신이 가꾼 배나무에서 수확한 배를 올리고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왕방연의 무덤은 후손에 의해 이장 되었으나 그가 심었던 배나무는 남았고, 나중에 먹골배로 명성을 날렸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바뀐 오늘날,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정치권을 보면서 주군을 배신한 정인지와 신숙주, 양아버지인 카이사르의 등에 비수를 꼽은 브루투스를 생각해 본다. 단종을 호송해간 금부도사라면 세조실록에 기록이 있을 것인데 정작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에 대한 기록은 없다. 종5품인 의금부도사라 실록에 언급되지 못했다.

정인지와 신숙주는 관직도 관직이려니와 남긴 업적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들은 브루투스와 같은 배신자였다. 한번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그만이다. 그 수렁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다. 반면 왕방연은 관직은 낮았으나 〈단장가〉라는 시조 한 수로 해서 충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시조 한 수의 역사적 평가, 오싹 한기를 느낀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오빠라고 불러줄 때〉는 김용호 시인의 작품으로 3수 연작인데 호칭의 차이에 따른 느낌을 스케치 하듯 가볍게 담았다고 하며 詩題 또한 이색적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내가 참여하고 있는 국화연구회에서 글감을 잡았다. 그래서 좀 쉽고도 가볍게 시조를 써 보았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거지가 달라질 수 있듯이 어떻게 불리어 지느냐에 따라 마음의 자세가 달라짐을 느낀다.국화연구회에서는 나를 ‘오라버니’‘오랍씨’‘옵빠’라고 불러주는 회원들이 있다. 어떻게 불리워지느냐에 따른 남자의 느낌을 스케치 하듯 가볍게 담아 보았다.”

시인의 ‘가볍게 담아 보았다’는 시작노트의 부분에 대하여 간략하게 「경시조」를 설명하여 본다. 시조는 시의 한 갈래이므로 고도의 지성과 섬세한 감성, 그리고 치열한 창조정신이 요구된다. 시인이 시를 짓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상념을 캐내어 그것을 구슬처럼 갈아내는 보석장인의 공정과도 같다. 시인은 거기에 어울리는 순수하고 빛나는 언어를 찾아 다듬고 또 다듬어 최고의 명품을 완성하려고 성력을 다한다. 그것은 경건하고 진지하기가 숭고한 종교의식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조교실에 첫 발을 들여놓은 신입생이라면 그 신입생에게 어울리는 가벼운 시조부터 시작하기를 권해야 되지 싶다.「경시조」란 비전문가인 아마추어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가벼운 기분으로 짓는 시조이며 이를 주장한 사람은 사봉 장순하 선생이다. 선생은 경시조를 많이 익혀서 작시의 역량이 충분해지면 본격 시조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아니데 그게 아니데
         김정구(金貞九)의 헛소리데

         까맣게
         썩은 물위에
         사공도 배도 없데

                          -장순하 ‘두만강 검은물에’, 전문-

위의 작품은 두만강 가에서 오늘날의 실제 정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한 것이다. 문단의 원로가 지은 작품이라서인지 갖출 건 다 갖춘 작품이다. 경시조에 대하여는 평가가 반반이다. 시조의 격을 낮추었다.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시조의 저변확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위의 작품으로 보아서는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오라버니’‘오랍씨’‘옵빠’라 불러주는 호칭의 차이, 그기서 느끼는 그녀들의 고향과 시인에 대한 원근감을 그럴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정감이 간다.옛날 어느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나이가 지긋한 백정이 살고 있었다. 김씨는 도살한 고기를 장터에 나가 팔아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이었다. 백정은 천민이라 너나없이 하대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왔다. 그중 한 사람은 “어이 거기 백정, 고기 한 근만 주게”라고 주문을 했다. 또 다른 한사람은 “김서방,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주문을 했다. 그러자 똑 같이 한 근 씩을 주문했는데 고기 양이 확연히 달랐다. “김서방,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주문했던 사람의 고기 양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러자 “어이, 거기 백정, 고기 한 근만 주게”라고 했던 사람이 화를 벌컥 내며 따졌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저 양반 것은 나보다 배나 많은 것이냐?” 그러자 김씨가 대답했다. “예, 손님 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요, 이 고기는 김서방이 자른 것입니다요.”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들 한다. 정말 그렇다. 내용은 같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이곳 자연예술랜드를 개장한지 26년이 되었다. 입구에서 고객맞이 담당인 아내는 “3초”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오랜 세월 사람에게, 특히 진상고객에게 시달려 내공이 쌓여 3초면 그 사람의 품격이 파악된단다. 진종일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 대접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 우울과 차 대접도 3초안에 결정된다고 하니 다한 말이다. 조신하고 볼일이다.

〈오빠라고 불러 줄 때〉, 시인은 스케치 하듯 가볍게 담아 보았다고 하나 만만찮은 솜씨임을 알 수 있다.나를 두고 ‘오라버니’니, ‘오랍씨’니, ‘옵빠’라고 불러주는 춘자도, 영희도, 희숙이도 없다. 훤칠하고 잘 생긴 시인이 부럽기만 하다. 可可大笑.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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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시민 2021-01-08 11:29:06

    능곡선생님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논리를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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