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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곽호자]그 노인의 안부가 궁금하다

걷는 것을 포기하고 차의 시동을 켠다. 창고로 가는 길이 어중간하게멀어서다. 분, 초를 다루는 아침도 그렇고 얼른 돌아와 식사 마련하는 시간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렇지만 실상 그게 아니다. 편리함에 이미 길들여진 내 버릇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목적지에 가까워 온다. 확장 공사로 파헤친 도로가 엉망이다. 들쑥날쑥 패어진 비포장도로로 차들이 불안하게 달린다. 그 갓길을 따라 구부정한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사롭지 않은거동이다. 달리던 속도를 늦추어 가까이 다가간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호기심 때문에 면식도 없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펴본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차창 가리개를 내려야 했다. 시치미를 떼고 지나쳤지만 자꾸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못한다.

서행하는 차의 백미러에 등 굽은 노인이 뒷걸음으로 앞을 향해 오고 있다. 기어이 주시해야 할 책임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의 거동을 살피기 시작한다. 리어카에 잔뜩 실은 빈 박스 더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방무너져 노인을 덮칠 기세다. 깡마른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쓰러질 듯 한몸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리어카 역시 노인만큼이나 지쳤는지 삐걱거린다. 

고물이 너덜너덜 춤을 춘다.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형상이다. 어떻게 구십 도로 굽은 몸을 하고서 저 무거운 짐을 끌 수 있나. 더구나 뒷걸음질을 하면서. 리어카의 손잡이인 쇠붙이를 아랫배의 접힌 부분에다 끼우고 중심을 잡는 모양이었다.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 사는 지혜다. 노동의 이유가 삶이라고 하자. 이 일에 충실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노인에게 무례한 호기심을 드러낸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출근하는 차들이 늘어난다. 돌부리를 걷어차고 경적을 울린다. 차창을 열고 군소리를 마다한다. 이면도로의 차와 직진 도로의 마주친 차들이 승강이를 벌인다. 노인의 느린 동작이 그 무리 속에 섞여 있다. 교만스럽게 내달리려는 그들과 노인의 느릿함이 평등함을 주장하며 공유하려는듯하다. 빨리 달리려는 이기심과 천천히 가고 싶은 이기심이 공존한다.

양보의 미덕이란 찾기 어렵다. 우리의 할아버지일 수도 있고 아버지일 수도 있는 노인이다.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노인의 삶이 고물 무게만큼이나 버겁게 보이는 광경에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더위가 한풀 꺾였나 보다. 노인을 맨 처음 목격했었던 골목 앞을 지나쳤다. 공사가 끝난 도로는 탄탄대로다. 새 길이다. 검은 아스팔트와 하얀색의 차선과 황색의 중앙선이 선명하다. 신호등이며 가로등도 새롭다. 주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어디를 둘러봐도 쌓아 둔 흙더미도 없고 돌무덤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년 여의 변화이다. 

등 굽은 노인의 모습과 훤히 뚫린 육 차선의 새로운 길이 교차된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을 여생이 이길처럼 뚫려 허리춤을 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겠구나. 새 길을 따라가며 어느새 노인을 찾는다. 이때쯤이면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올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 된 그의 존재가 궁금하다. 공존의 무덤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년 여의 변화이다. 등 굽은 노인의 모습과 훤히 뚫린 육 차선의 새로운 길이 교차된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을 여생이 이 길처럼 뚫려 허리춤을 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겠구나. 새 길을 따라가며 어느새 노인을 찾는다. 이때쯤이면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올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 된 그의 존재가 궁금하다. 공존의 무길이며 노인의 길이다. 함께 질주할 수 있는 동반자다. 삶은 질주가 아닌가. 앞으로 향하는 것은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목표를 향하게 마련이다. 타인의 이목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노인의 결연한 자신감이 길을 두려워 않는 것이다. 그의 불편한 삶을 좌절로 몰아넣지 않고 인간승리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다만 눈물겨울 뿐이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노인의 삶은 충격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노동이 때로는 희열을 안겨 주고 무에서 유를 일궈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동정이 우월감의 발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공존이란 의미로 전환되어 서로 동등한 인격체로 인사 한마디쯤은 건네고 싶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건네야 할 말이 막힌다. 주눅이 든다. 내 마음속에 아직까지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는 거리감인지도 모른다. 생각의 장애다. 용기를 내고 차창을 연다. 인사말을 혼자 중얼거려본다.

“안녕하세요.”
새 표지판이 가로놓인 도로를 달린다. 너와 나의 공존이 벌떼처럼 엉키는 길을 푸른 신호등이 비춘다. 느릿함의 여유와 빨리 가는 조급함이 기계의 지시대로 질서를 지킨다. 편리함에 길들여 진 사람들이 오늘도 노인을 스치고 달린다. 탁 트여진 넓은 대로에 말없이 뒷걸음질로 리어카를 끄는 노인. 거리를 좁히지 못해 내뱉는 거친 숨소리가 해지는 거리로 새어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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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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