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49]김영자-'설 중 납 매' ▲김영자:인천출생/LS(주)미르상사대표/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감사

[금요거제시조-49]
     '설 중 납 매'  

 

 

 

 

 

 

         김     자   

기억도 가물거리는 어느 해 한 겨울에

아기 젖살 같은 납매 핀 산사에 들어설 때
눈 덮인 노란 꽃이 안긴 평온함이 라니,
짧은 치마 입은 첫 나들이의 수줍음 가득
했던 꽃. 납매 꽃빛 짚불 곰장어 먹은 게
탈났는지 뱃속이 뒤틀리더니 새어나간
고약한 냄새, ‘설중매의 실방구’라며
무안함에 조신한 척한 탓에 애꿎게 옆에 섰다
방귀쟁이가 된 분에게 설중 납매 소식 들을
때마다 응어리가 도졌는데 올해는 이실
직고하리라 결심을 굳혔으나 아뿔싸
꽃소식과 함께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부고여

끓는 듯 피던 납매여, 이 일을 어이할꼬.

◎봉선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에 봉선화가 있다. 일제 때 홍난파 선생의 가곡등으로 민족의 혼을 일깨워 준 봉선화는 그 줄기가 살이 찌고 굵으며 밑에는 마디가 있고 녹색을 띠고 있다. 잎은 어긋나게 피고 피침형이며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다. 꽃의 생김새가 봉황을 닮아 봉선화라 부른다. 꽃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잎 겨드랑이에 2~3개씩 가는 꽃대 끝에 빨강, 하양, 자주, 노랑으로 핀다. 씨는 장원형의 초록 주머니에 들어 있어 익게 되면 노란색으로 변하고 탄성이 있어 파열되면 멀리 흩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널리 심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네들은 손톱을 곱게 가꾸었다. 근래에 와선 네일아트라고 하여 다양하게 손톱을 디자인 하고 있으나 예전엔 봉선화로 꽃물을 들였다. 네일아트샾은 불경기를 타지 않는 업종으로 성업중이다. 손톱에 봉선화 꽃물들이기도 사라져가는 것중의 하나다. 고려의 26대 충선왕(忠宣王)이 세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원나라 진왕(晉王)의 딸 계국대장 공주가 세자빈이었으나 조인규(趙仁規)의 딸인 조비를 더 사랑하게 되어 질투가 심한 세자빈과의 불화와, 부왕인 충렬왕과의 불화가 겹치고 얽혀 원나라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다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강제로 잡혀 온 충선왕은 늘 고국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지내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자기를 위하여 소녀가 가야금을 타는 꿈이었는데 가야금 줄을 뜯을 때마다 소녀의 열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놀라 잠에서 깬 충선왕은 이상하여 자기의 시중을 들고 있는 원나라의 궁녀들을 모두 불러 조사를 했다. 그 궁녀들 중 눈 먼 한 소녀가 열 손가락에 흰 헝겊을 동여매고 있었다.충선왕은 이상하게 생각한 나머지 다른 궁녀들을 물러가게 하고 눈 먼 궁녀를 가까이 오게 하였다. 궁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려에서 조공으로 바쳐진 궁녀입니다. 고국과 집이 그리워 울다가 눈병이 들어 눈이 멀었습니다. 고려의 왕자님께서 얼마나 조국이 그리우실까 생각하며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여 위로해 드리려고 이렇게 손을 싸매고 있는 중입니다.”

충선왕은 외로운 타국에서 조국의 풍습을 생각하며 궁녀와 함께 울었다. 이 때 눈먼 궁녀는 가야금으로 조국의 가락을 들려주며 노래로써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나라의 대신을 어떻게 대하라는 내용과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충정어린 암시가 노래가사 속에 들어있었다. 그 후 충선왕은 눈먼 궁녀가 시킨 대로 실행하여 고려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뒷날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그 궁녀의 충성을 생각하여 궁궐 뜰에 많은 봉선화를 심고 궁녀들에게 그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게 하였다고 한다.

통영 남망산공원에는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 1920.3.15 ~ 2004.10.31)시비가 서있다. 섬세하고 영롱한 언어를 잘 구사하는 한국 시조문학의 대가 초정 선생은 1920년 통영 항남동에서 태어났다. “봉선화” “옥저” “백자부”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롯하여 600여 편의 시조를 남겼다. 그는 시, 서, 화, 전각에 두루 통달했던 만능예술인이었다.
시비에 새겨진 시조는 “봉선화”이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노나.

            -김상옥 ‘봉선화’, 전문
 초정의 ‘봉선화’는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읽어 봤을 시조로 1938년 《문장(文章)》지에 가람 이병기의 추천으로 실린 작품이다. 이때 선생은 18세의 나이였다.이 작품에는 두 가지의 그리움이 담겨있다. 하나는 멀리 시집을 간 누님을 향한 것이고, 또 하나는 누님과 더불어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어린 시절에 대한 것이다. 평범한 경험을 섬세하게 그린 소박한 정취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초정은 이호우와 함께 1950년대 한국 현대시조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미당은 초정을 가리켜 ‘귀신이 곡할 정도로 시조를 잘 쓰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봉선화 시비는 2007년 통영시가 남망산 아래쪽에 설치했었다. 지난해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통영문인협회(회장 김승봉)에서 시민의 왕래가 많고 통영항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으로 이전했다. 초정기념사업회(회장 김보한)는 2014. 6. 20 출범하여 「김상옥 백자 예술제」를 개최하고 매년 「김상옥 백자예술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작품 〈설중 납매〉는 김영자 시인의 작품으로 설중 납매가 만발한 날 일어난 해프닝을 사설시조로 읊었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2주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직장 선배에 관한 얘기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느 해 겨울에 직장 선배를 비롯한 몇 사람이 출장길에 근처 산사를 들렸는데 아기 젖살 같은 노란 꽃을 보았다. 추위에도 그 노란 꽃은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 주었다. 난생처음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의 감동을 안겨준 그 꽃은 수줍게 눈을 덮어 쓰고 있는 납매였다. 설중 납매. 그때였다. 뱃가죽이 납매 꽃 색인 짚불 곰장어가 뱃속에서 아우성을 치더니 소리 없이 고약한 남새가 피어났다. 아무 내색도 안하고 악취를 참고 있으려니 곁에 계시던 선배가 애꿎게 방귀쟁이로 몰렸다. 뻔뻔한 나는 설중 납매의 실방구라며 조신한척 시치미를 떼었었다.세월은 흘러 나도 유들유들해져서 그때 설중 납매 실방구의 장본인이 나였노라고 선배님께 이실직고하려 맘을 먹었는데 납매 개화소식과 함께 부고가 날아들었다. 눈 속에서도 펄펄 끓는 연애처럼 피어오른 납매는 이런 슬픈 내 마음을 짐작이나 할런가. 까치발로 다가오는 봄에게 소식 전해 보련다. 평안하신지요, 그곳은”

납매를 당매(唐梅)라고도 한다. 중국 원산이며 관상수로 널리 심는다.납매는 섣달을 뜻하는 한자 ‘랍(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합쳐진 이름으로 섣달에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1월부터 달콤하면서도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노란 꽃을 피운다. 방기(放氣)는 방귀인데 방구가 귀에 익다. 방구는 여럿이 모인 곳에서는 나올 때 마다 난처해진다. 이런 방구이련만 대접받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수필가였던 의사 박문하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맹장 등 수술을 받은 환자는 방구가 나와야 안심을 한다. 그래서 방구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방구가 나오면 병상을 지키던 환자 가족이 ‘방구님 방구님 고마우신 방구님’하고 기뻐하며 절을 한단다.

나도 소싯적에 이름난 방구쟁이였다. 주구장창 보리밥을 먹다보니 방구가 잦았다. 작은 키에 맨 앞줄에 앉았는데 교실의 뒷자리에서 누가 몰래 방구를 뀌어도 내가 뀌었다고 누명을 썼을 정도였으니 다한 말이다. 세상만사가 다 때가 있다더니 그 호기롭던 방구도 늙고 병약하고 보니 야코가 죽고 말았다. 오호 통제라. 〈설중 납매〉는 김영자 시인의 재기 넘치는 사설시조다. ‘짧은 치마 입은 첫나들이 수줍음 가득했던 꽃’이라든지 ‘납매 꽃 빛 짚불 곰장어’등의 표현에서 감칠맛이 난다. 그래서 ‘설중매 실방구’라는 익살이 사설시조의 격을 높이고 있다. 그날의 해프닝을 이실직고 하리라 하였건만 납매 개화 소식과 함께 날아든 부고, 낭패였다. 낭패(狼狽)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을 이름이다. 낭패의 어원은 이렇다. 낭(狼)이라는 짐승은 앞발만 있고 패(狽)라는 짐승은 뒷발만 있다. 그래서 둘이 붙어 있어야 한다. 떨어지면 안된다. 그런데 둘이 붙어 낭패가 되었는데 뜻은 전혀 다른 말이 되었다.‘끓는 듯 피던 납매여 이일을 어이할꼬.’ 라는 嘆에서 애틋한 시인의 심성이 읽혀진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孟春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