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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윤효경]'돌이고 싶은'윤효경)거제출생/《문장21》시인<수필과비평.수필등단/둔덕중문화프로그램시창작반수료/계룡수필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수료


     돌이고 싶은
                                     윤 효경

 “돌이 되고 싶다.”

뜬금없이 내뱉은 친구의 한 마디가 오늘따라 귀에 감긴다. 돌. 처음에는 그녀의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가볍게 받아들였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같이 걷다가 다리에 휴식을 주려는지 돌 위를 후후 불더니 풀썩 주저앉으면서 그녀가 한 말이다. 만개한 넝쿨장미가 터널을 이룬 것을 보고 막 들어서려는데, 친구는 저만큼 뒤에서 따라오다가 멈추었다. 장미향에 빠져 있어서 그녀의 말에 관심을 둘 처지도 아니었다.
장미 가지를 흔들며 다가온 바람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도 내게 스며들었다. 코끝을 건드리는 장미향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앉은자리에서 바로 일어서지 않고‘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속내를 알 수 없다. 향이 풍기는 장미 숲에 와서 돌 타령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웬 돌?”
여전히 앉아만 있다. 좀처럼 일어서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돌의 무게에 끌려가고 만다. 돌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 것일까. 시를 공부하며 흔히 들었던 돌일까. 변하지 않음, 강인함, 굳셈‥‥. 이런 것들일까.
부동(不動)의 돌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위엄으로 인간의 능력이나 의식의 근거를 만들어주는 반성적 대상임을 보여준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에 힘을 실어 준다. 사람에게 정신적인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아픔이 있다면 은밀히 접근하여 부드럽고 온화하게 어깨를 어루만져 준다.
길을 걷다 보면 거리에는 표지석이 꼿꼿이 서 있고, 담에는 온갖 돌멩이들이 흙속에 박혀 무늬를 이루고 있다. 긴 긴 날을 한 모습으로 서 있는 표지석은 강인함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토담 속의 돌멩이들은 언제나 도란거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아래위로 양 옆으로 친구와 함께하는 그들의 우정이 부럽기도 하다.
긴 세월 물속에 들어앉아 사람들에게 등을 내주어 밟고 지나가게 하는 징검다리도 의미 있는 삶이다. 강물을 건널 때마다 발을 적셔야 하는 고통을 덜어주는 그들은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하는 욕망에 찬 인간들에게 무릎을 내주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디딤돌, 장구한 날 무거운 건축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주춧돌. 이런 돌들은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돌들이 아니던가.
사람의 눈에 들어 보석으로 인식된 돌은 큰 통증을 겪으며 깎이고 문질러져 아름다운 빛을 얻어 부호의 손에 들어가서 화려한 장식품으로 호사를 누리는 돌도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는 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돌의 세계도 사람들의 세상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도 불안이 있고 역경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길가에 있는 작은 돌은 개구쟁이들의 발에 차이거나 멀리 던져져서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논이나 밭에 누운 돌도 호미나 괭이에 이제나저제나 쪼개질까 불안한 마음 떨치려 하나 감옥 같은 어둠이 풀어주지 않는다.
계곡에 앉은 돌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과 함께 한다. 온종일 물살의 속삭임과 간질임을 견디다 모르는 사이 옆구리도 닳아 없어진다. 하지만 폭포 안에 앉은 돌은 차갑게 내리치는 물길에 숨막히기 일쑤다. 깎이고 파이는 아픔의 연속이다. 물가에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재수 없게 물새의 뒷간이 되고 장마기에는 온갖 쓰레기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바닷가에 앉은 돌은 날카로운 파도가 후려치고, 태풍이 불면 온통 정신줄이 날아가 서로 부딪치고 깨어지는 아픔이 있을 것이다. 역시 돌도 파란만장한 삶을 끊임없이 겪어야 함은 예외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개성 다 잊어버리고 매끈하고 둥글게 변해가는 것은 세파에 시달리는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돌이라고 편한 줄 아니? 쓸데없는 꿈 꾸지 마.”

친구의 표정이 변함이 없다. 산들바람에 장미향이 스며든다. 눈앞의 장미 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그녀는 돌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군데군데 돌이 놓여 있어 오밀조밀 정겹다. 새삼스레 꽃보다 돌이 더 눈에 띈다. 겨우 몸을 추스른 친구는 더 이상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은 채 뒤따른다. 바로 그때 친구의 휴대폰이 적막을 깨뜨렸다.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기만 하던 장미 정원의 공기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현기증이 일었다. 서로 갈라서야 할 곳에 올 때까지 그녀는 침묵만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만 흔들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바쁜 일상으로 도타운 정을 쌓지는 못하였다. 그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어처구니없는 말로 반박했다는 자책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돌이라고 편할까? 쓸데없는 꿈 꾸지 마.’ 실수를 쓸어 담을 수가 없다. 얼마나 힘들면 돌을 택했을까. 그녀의 가슴에 찬물을 쏟아부은 내 자신이 부끄럽다.
손수 생계를 이어나가는 그녀였는데. 뒤늦은 후회이긴 하나 그 힘든 고달픔을 예사로 보아 넘긴 내가 밉다.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녀의 애처로움이 이제야 마음속에 밀려들어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삶의 의지가 꺾여 무기력해진 그녀의 내적갈등을 읽지 못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하다. 입안의 가시를 발라내지 못하고 가벼이 생각하여 장난처럼 말을 함부로 한 나. 고뇌에 찬 가슴을 식혀줄 너그러운 지혜가 있어야 했다. 다정스러운 말로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줬어야 했다. 차라리 돌처럼 침묵하는 게 나았을 것을. 엄지족이 되어 휴대폰의 자판을 두드린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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