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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54]허원영-'자목련 화(畵)' ▲허원영:시인/낭송가/시조창가/2010년시사문단‘시’등단/2020년‘현대시조’등단/거제문협이사/청마기념사업회이사/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부회장/대한시조협거제시지회사무국장

[금요거제시조-54]
   '자목련 화(畵)'  

 

 

 

 

 

 

   허   원  영 

      붓 끝에서 피어난 고혹적인 자목련 꽃
      은은한 묵 향기에 창 넘어 들어온 벌
      그림 위
      길을 잃고서
      꽃을 찾아 붕붕 난다.

      마당 한켠 목련꽃이 일제히 망울 터져
      하얀 속살 드러내니 붉은 향기 취한 꿀벌
      몽롱한
      눈빛이 되어
      날개짓도 잊었다.

      화선지 펼쳐놓고 붓 끝에서 피워내는
      다양한 자목련 꽃 가지 끝에 올려놓자
      오호라
      날아온 꿀벌
      꽃잎 위에 앉았다.

◎ 기심(機心)
반세기 동안 돌에 빠진 나를 보고 ‘돌을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 이가 더러 있다. 그때마다 주탄(酒呑)이란 말을 들먹이곤 한다. 달리 설명이 궁해서다. 주탄은 법화경이 출처인데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뜻으로 지나친 음주를 경계하는 말로 알고 있다. 술이 사람을 마신다 함은 모르긴 해도 술로 인하여 폐인의 지경에 이르렀지 싶다.나 또한 돌에 빠져 돌에 먹인 상태가 되었으니 석치(石痴)의 자탄(自歎)을 애둘러 주탄에 빗대었다. 얼마 전 입수한 ‘자애(慈愛)’라 명명된 문양석(紋樣石)이 있다. 날개를 벌린 학이 물고 온 먹이를 새끼에게 먹이는 형상이라 ‘자애’라 이름 붙여진 이 문양석은 검은 돌 바탕에 흰색의 학 모양이 선명하고 여백에 또한 일품으로 과히 명석이라 할 수 있는 수석이다. 문양석 ‘자애’를 볼 때마다 한 사람의 얼굴과 기심(機心)이란 말이 떠올라 심기가 불편하다.

‘기심’은 기회를 보아 움직이는 마음이란 뜻으로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쓰게 되고, 그것을 쓰는 자 반드시 기심을 갖게 된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에서 나왔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인데 기계들로 인한 ‘기사’들이 생기면서 번잡해지는 와중에 내 마음에서 슬슬 더욱 편하게 일을 하고 싶은 (꾀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기심에는 여러 얘기가 전해 오는데 나무꾼 얘기도 그 하나다.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심성이 착한 나무꾼이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산에서 자주 만나는 산비둘기와 친해졌다.그가 나타나면 여러 마리의 산비둘기가 날아와선 어깨에 안기도 하고 손 위에 내려와 놀기도 했다. 이 나무꾼은 친해진 비둘기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랑삼아 말 했더니 한 마리를 잡아 달라고 했다. 나무꾼은 아내 말대로 한 마리를 잡을 마음을 먹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으로 갔다. 그런데 멀리서 보기만 해도 줄줄이 날아들던 산비둘기가 한 마리도 날아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멀리서 빙빙 돌기만 하고 가까이 오지 않았다. 심성은 착하나 아둔한 나무꾼은 산비둘기가 오지 않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비둘기가 날아들지 않았던 것은 나무꾼이 산비둘기를 잡아야겠다는 기심(機心)을 품었기 때문이요, 그 기심을 산비둘기에게 간파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심은 음모가 내포되어 간교하게 속이거나 책략을 꾸미는 마음을 말한다. 착하던 나무꾼은 기심으로 반기던 벗을 잃고 말았다.요즘은 수석을 탐석하기가 쉽지 않다. 산지가 고갈되기도 하였거니와 웬만한 곳에서는 규제가 심하여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수입석 전문 가게로 발길을 돌린 지 오래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수입 석 전문점은 진동에 있는 ‘일육수석’이다. 운이 좋은날은 수년 간 공을 들여 제작하고 있는 인상 석 몸통  돌을 좀 싸게 구입 할 수 있기에 한 달에 두서너 차례 들리곤 한다.

 하루는 일육수석에 갔더니 마당 가득 널려있는 돌더미 위에서 몇 사람이 돌을 고르고 있었다. 그 중에 P씨도 있었다. 통영에서 농장을 경영 한다는 P씨는 전 통영시의원 이었다고 자기소개를 한 사람인데 수석에 대한 안목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부인과 함께 돌을 고르던 P씨가 돌 한 점을 두고 요리조리 살피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슬쩍 그 돌을 보는 순간 찌르르 감이 왔다. 수준급의 문양 석 인지라 P씨가 포기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돌 욕심이 많은 나는 그 간절함이 절박했다. 몇 분간 돌을 보고 또 보고 망설이는 P씨에게 부인이 “그만 치우소, 별 볼도 없 구만” 하고 짜증스런 핀잔을 했다. P씨는 조금은 무안한 표정으로 돌에서 물러났다. 옳다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금방 집어 들면 P씨가 눈치 챌까봐 한참을 뜸들이고는 손에 넣었다. 그렇게 하여 문양 석 ‘자애’는 나와 연을 맺었다. 명석을 헐값에 차지한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 연후 달포가 지나 일육수석에 들렀더니 주인께서 전날 빈소에 다녀왔다며 P씨의 부음을 전했다. 그 사이에 멀쩡하던 사람이 죽다니 믿기지 않았다. P씨는 대장암 말기였는데 워낙 건장해서 죽기 며칠 전에야 이를 알았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렇게 쉽게 가실 줄 알았다면 ‘자애’가 명석임을 알려주어 단 며칠이라도 즐기게 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 왔다. 돌이 무엇인지, 자괴감으로 귓불이 달아올랐다.

       수많은 바보 중에
       석치라는 돌 바보는

       돌 한 덩이 집어 들고
       짓고 허는 소슬대문

       탐애의 깊은 늪 속에
       빠진 줄도 모른 채.


       탈이 난 관절이며
       거덜 난 살림이며

       빛바랜 오석처럼
       병처는 말을 잃어

       오십 년 헤맨 강변에
       잡석되어 누운 돌꾼.

                        -졸시 石痴·1, 전문

P씨가 명석 ‘자애’를 몰라보기를 바랐던 마음 바로 기심이었다.詩作에 있어서도 기심은 금물이다. 이를테면 상을 바라고 作詩를 하다보면 꼬이기 마련이다. 좋은 작품은 힘 안들이고 고기를 잡는 달통한 어부와 같은, 억지를 부린 흔적이 없는 글이다. 기심과는 거리가 멀고 말고다.(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자목련 화〉는 허원영 시인의 작품으로 튀밥처럼 터진 자목련 꽃을 화선지에 피워놓고 그 위에 벌까지 앉힌 3수 연작의 서정시조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
“자목련 꽃이 창문을 넘어와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그루 나무에서 엄청나게 많은 꽃송이가 튀밥처럼 터져서 붉은 꽃 잎 속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여뻐서 자목련을 소재로 한 시조를 썼습니다. 요즘은 한국화 그림을 자주 그립니다. 작년 겨울부터 매일같이 녹산 화백의 화실과 집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두 개의 소재를 엮어 시조를 써봤습니다”


첫 수에선 붓으로 피워낸 자목련의 향기를 읊었다./ 붓 끝에서 피어난 고혹적인 자목련 꽃/이다. 쉼 없는 붓놀림에 정신을 쏟다 보니 그것도 고혹적인 자목련 꽃을 피워냈다. 그 은은한 묵 향기에 / 창 넘어 들어온 벌 /이 그림 위에서 그만 길을 잃고서 / 꽃을 찾아 붕붕 난다. / 묵향에 취하면 벌도 길을 잃어버리나 보다.

둘째 수에선 망울 터진 자목련의 향에 취한 꿀벌을 읊었다. /마당 한켠 목련꽃이 일제히 멍울 터뜨려 / 겉은 붉고 하얀 속살 드러내니 붉은 향에 취한 꿀벌/이 복에 겨운 나머지 / 몽롱한 눈빛이 되어 날갯짓도 잊었다./고 한다. 튀밥처럼 터진 꽃을 누비느라 정신 혼미해졌나 보다.

셋째 수에선 화선지에 가득 피어난 꽃 위에 앉은 꿀벌이다.자목련 가지 끝에 다양한 자목련 꽃을 올려놓자 / 오호라 날아온 꿀벌 꽃잎위에 앉았다./ 그림위에 앉았으니 일어 날 줄 모르리라. 한 폭의 자목련 畵가 읽혀진다.

목련하면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라는 박목월의 ‘4월의 노래’가 생각난다. 목련(木蓮)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도있듯이 나무위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고귀한 느낌이 들어 꽃말이 ‘고귀함’이다.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난향과 같다고 해서 목란(木蘭)으로도 불린다. 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꽃이 해바라기 하듯 피는 것과 다르다. 이는 따뜻한 햇살을 받는 꽃잎의 엉덩이 쪽이 먼저 부풀기 때문인데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목련 한 그루에 꽃이 다 피면 주변이 온통 환하다. 우아하게 펼쳐지는 목련화는 화려하고 큰 편이라서 여타 꽃들을 압도한다. 꽃은 말려서 꽃차로 많이 사용된다. 목련 꽃차는 기관지와 비염에 효과가 있으며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몸이 찬 여성분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자목련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 꽃차로 사용을 말아야 한다. 백목련도 꽃술엔 독이 있어 이를 제거하고 꽃차로 이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목련이 지고나면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목련의 개화기간은 불과 열흘이다. 花無十日紅이 어쩌면 목련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목련화의 절정은 낙화직전이다. 필 때 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다운 생멸(生滅)의 미학, 질 때를 아는 꽃일진 데 어찌 만만히 보겠는가. 목련을 정원수로 하는 소이를 알 것 같다.


시적표현(詩的表現)의 원동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일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시의 세계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이 상상력을 좀 더 창조적으로 확장시킬 때 자연스럽게 한걸음씩 시에 가까워질 것이다. 자목련 꽃잎위에 앉은 꿀벌은 상상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이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시조작품 〈자목련 화〉에선 시인의 자화자찬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수련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는 시인의 일상을 가상한 눈으로 보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목련화는 꽃눈이 붓을 닮아 목필(木筆)이라고도 하는데 필자는 ‘立春’이라 題하여 읊어 보았다.

        가지 끝 부풀려서
        모필을 만든 목련


        어제는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더니


        허공에 문인화 한 폭
        담묵으로 내 겁니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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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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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하지기 2021-03-26 11:32:52

    금요일의 '금요시조' 감상이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시조감상의 해설로 나의 인문상식을 넓혀가는 재미도 대단하구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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