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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55]윤미정-'금둔사에서' ▲윤미정: 경상남도자원봉사자체험수기일반부최우수상(2009년)/2020현대시조등단/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사무국장

[금요거제시조-55]
   '금둔사에서'  

 

 

 

 

 

   윤   미  정 

 일상을 벗어두고
 훌훌히 떠나왔네

 누가 저 비를 품어
 이 적막을 적시는지

 고뇌를 헹구어 봐도
 물 소리는 그대로다.

 납월 홍매 반기어준
 금둔사 천년고찰

 향긋한 홍매실차
 정을 타서 마셔보면

 여운 긴 목탁소리만
 골을 차고 넘치더라.

◎ 주체적인 삶
 꽃비(花雨)가 드날리고 있다. 봄은 머무는 계절이 아니라 지나가버리는 계절일지니 낙막(落寞)의 멋은 상찬할 일이 아니지 싶다. 인생의 덧없음에 서글퍼서 하는 말이다. 어느 날 젊은 화가 한 사람이 영국 수상인 처칠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수상님, 저는 얼마 전에 글래스고에서 열린 전람회에 그림을 출품하였습니다. 저는 그 그림이 꼭 입상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화가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심사위원들이 자격 미달이라는 점입니다. 그림이라고는 전혀 그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심사위원이랍시고 앉아서 진짜 화가들의 그림을 심사하거든요. 정당한 것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이것은 미술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각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처칠은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젊은이, 나는 평생 달걀을 낳아본 적이 없소. 나는 암탉이 아니니까 말이오”
 뜻밖의 말에 젊은 화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물론 그러실 겁니다. 저도 달걀은 낳아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 나는 달걀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상한 달걀과 싱싱한 달걀을 잘 가려낼 줄은 안다오, 젊은이는 어떻소?”
 “저도 달걀을 가려낼 줄 압니다.”
 “그거 보시오, 그러니 그림을 못 그리는 심사위원 일지라도 좋은 그림을 잘 가려낼 수는 있지 않겠소!”
 “그렇긴 하지만 ....”
 “물론 심사위원이 편파적일 수도 있고, 잘못 심사할 수도 있지요” 하고 처칠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것은 젊은이를 위해 좋지 않아요. 이런 경우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하나는 미술계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그림이 더 좋아지도록 분발하는 것이요. 앞의 것은 정치가가 해야 하는 일이고, 뒤에 것은 화가가 해야 할 일이오. 어떻소, 당신은 정치가가 될 참이요? 미술계의 정치가 말이요.”
 “저는 그런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람회에 출품하는 다른 작가와 비슷한 수준의 작품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작품을 그리도록 노력해 보면 어떻겠소? 귀하의 작품이 눈에 확 띌 정도로 훌륭한데도 그런 작품을 뽑지 않을 심사위원이 과연 있을까요?”
 젊은이가 고개를 숙이자 처칠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월등히 뛰어난 작품을 냈는데도 낙선한다면 그때는 내가 나서서 미술계를 조사해 보리다. 그러나 나는 영국이 그럴 정도로 타락한 나라라고는 믿지 않소. 왜냐하면 말이오....” 처칠은 덧붙여 말하였다.
 “나 또한 어슷비슷한 정치인들 사이에서 특별한 안목으로 미래를 예측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수상이 되었기 때문이요. 처음에는 나의 특별함을 몰라보던 국민과 정치인들이 결국에는 나를 알아보아 주었소. 영국이라는 나라는 좋은 달걀과 상한 달걀을 가릴 줄 알더란 말입니다. 물론 좋은 달걀을 가려내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리니까,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몇 년, 어쩌면 십 년 정도는 참고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소.”
 그 뒤 젊은 화가는 처칠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노력하였고, 마침내 훌륭한 화가로 대성하였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당나라 때 임제 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것으로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다.” 라는 뜻이다.
 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며, 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라는 것으로 곧 자리 잡는 곳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立處皆眞의 의미는 지금 서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라는 뜻으로 한마음 돌이키면 그 자리 모두가 진리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진실 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행복의 자리, 진리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지표로 삼아 머리맡에 걸어 두고 보는 글귀이다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지겠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려고 하는고나
낙환(落花)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에 있는 선우협(鮮于浹)의 작품이다.낙화 속에 가는 봄날이다. 피어 있는 꽃이나 떨어진 꽃이나 같은 꽃이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꽃일 뿐이다.
젊은 화가의 주장과 수상 처칠의 충고. 남들과 다투는 것과 나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 물론 이 두 가지는 모두 중요 하나 나 자신이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처하여도 주인이 되는 주체적인 삶이 더욱 소중하지 않겠는가 떨어진 꽃도 꽃일 진데 쓸어 무삼하리오.( 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작품 〈금둔사에서〉는 윤미정 시인이 납월 홍매가 반기는  금둔사 찻집에서 홍매화차를 마시며 느낀 감흥을 2수 연작으로 읊은 서정시조다.
 첫 수에선 벗어나고 푼 일상, 그 일상을 잠시 내려놓은 시인을 본다. / 일상을 벗어두고 훌훌히 떠나왔다./ 그날따라 오롯한 마음이었건만 그 마음을 적시는 비가 간간이 내렸다./ 누가 저 비를 품어 이 적막을 적시는지/ 외롭고 쓸쓸함에 젖어 / 고뇌를 헹구어 봐도 물소리는 그대로다./ 그렇고말고 물소리는 그대로이고 말고. 그래서 一切唯心造라 하지 않던가.

둘째 수에선 향긋한 홍매실차를 만끽(滿喫) 하는 운치가 그려진다./ 납월 홍매 반기어준 / 그곳, 진작에 가고 싶었던 / 금둔사 천년고찰 /이다. 그 아늑한 찻집에서 / 향긋한 홍매실차  정을 타서 마셔보면 / 그 차 맛이라니, 절로 눈이 감긴다. 그때 들리는 / 여운 긴 목탁소리다 / 바로 골을 차고 넘치는 여운 긴 목탁소리다.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서의 정치가 눈에 선하다.

비대면 사회 환경이 되었다. 그것도 오래 계속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택근무다. 일 년 이상 재택근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언택트 사회에 적응하는 적응도가 높아지고 있다. 언택트(Untact)는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물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 따위를 받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일컫는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간다. 이를 허무는 사회적 거리두기, 말세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어 와락 무서움을 느낀다. 이런 때에 시인은 일상을 훌훌 벗어던지고 오랜 세월 마음에 두고 있던 금둔사를 찾았지 싶다. 금둔사(金芚寺)는 전남 순천 금전산(金錢山)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년사찰로 보고 있다. 언제부턴가 폐사되었다가 1984년에 복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잠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본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눈이 오면 눈을 찾아, 꽃이 피면 꽃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들이를 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기를 즐겨 합니다. 촉촉이 비가 내리던 그날, 납월 홍매로 이름난 금둔사를 찾았습니다. 빗속에 반기는 납월 청홍매, 흩날리는 꽃잎들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찻집에서의 홍매실차 향기가 지금껏 코끝을 맴돌고 있습니다. 나를 만나고 온 어느 봄날, 고즈넉한 하루 여행이었습니다.”금둔사에는 홍매를 비롯하여 한국 토종 매화 100여 그루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녘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납월 홍매화 6그루가 이름나 있어 탐매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금둔사는 그리 크지 않는 사찰이지만 경사가 있어 여섯 그루의 홍매화를 다 찾아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납월 홍매화는 우리 거제의 춘당매 때문에 개화에 있어 선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금전산 고갯길의 이름은 ‘조정래길’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철운 조종현’스님으로 오늘의 조정래 선생이 있기까지 그의 뿌리인 철운 스님의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운 선생은 시조시인이었고 독립운동가였다.
 금둔사 찻집에서 마신 홍매실차 한 잔, 문득 ‘三公不換此江山’이란 싯귀가 떠오른다. 삼정승 벼슬자리와 이 풍정을 어찌 바꾸겠는가. 좋은 시 한 수에서 낙막의 서글픔을 위로받는다.
 꽃비는 내리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봄날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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