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60]
      '산판 도전기'  

      이   덕  재  

 오래전 꿈꾸었던 산판일을 시작했다
 안전장구 잘 갖추고 기계톱 짊어지곤
 팔팔한 마음 앞세운 기세 한번 좋았다.

 아름드리 참나무를 넘기는 쾌감보다
 엄습하는 공포감이 켜켜이 쌓이면서
 빈약한 가슴은 뛰고 숲은 성벽 같았다.

 오금은 저려오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화면 속 도끼질은 딴 세상 얘기란 걸
 연둣빛 사월의 숲이 일러주고 있었다.

◎丹心歌와 野雪
충절가(忠節歌)를 꼽는다면 단연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꼽히지 싶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라.

                            - 정몽주, ‘丹心歌’, 전문

위 시조는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답한 노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 ‘何如歌’, 전문

 위 두 시조는 1728년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靑丘永言)〉 에 실려 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읊었다는 하여가와 정몽주의 충절의 시 단심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기 수 백 년이다. 그런데 이방원과 정몽주가 술잔을 기울이며 읊었다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주장의 내용인 즉, 이방원과 정몽주의 나이 차이 (30살)로 시조를 나눌 수준이 아니고, 세종 때 발간된 정몽주의 시문집 〈포은집(圃隱集)〉 초판에는 단심가가 실려 있지 않고, 이방원 입장에서는 일촉즉발의 긴박했던 당시에 한가하게 시조를 주고받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이 단심가 작가가 백제 여인 한주(韓珠)라는 주장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일제 강점기 역사학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 안장왕(安藏王)이 태자로 있을 때 백제에 잠입하여 개백현(皆伯縣·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서 정세를 살피다가 호족의 딸인 한주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안장왕이 임무를 마치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고구려로 돌아간 뒤 개백현의 태수가 한주의 미모를 탐하여 취하려고 했으나, 한주는 이 시조를 읊어 안장왕에 대한 절개를 나타내었다”고 주장했다.
 「춘향전」의 근원 설화라고도 할 줄거리인데, 이 이야기는 고양시 성석동과 일산동 일대에 구전되고 있다 한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유명해진 야설(野雪)은 백범(白凡)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송시로 알려져 회자 되었다. 오도송은 고승들이 불도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시가를 말한다.
 
       눈을 뚫으며 들길을 걸을 때  (穿雪野中去 천설야중거)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今朝我行跡 금조아행적)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이 시는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는데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 실려 있지도 않다. 조선 정조와 순조 때를 살다간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작품이다. 이양연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다. 백범선생은 이 시를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있어서 우리에게 그렇게 전해진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가 누구든 이 좋은 시의 가치가 훼손될까만 정확한 작자가 밝혀진 마당에 그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것이야 말로 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다.
 穿雪野中去를 踏雪野中去로도 쓰고 있으나 원문엔 밟을 ‘踏’이 아니고 뚫을 ‘穿’으로 나와 있다.
 시를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짧은 글 속에 어떤 위대한 이의 삶이,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丹心歌’에선 작가가 정몽주였기에, 충절의 의미가 강하게 전달되었고, ‘野雪’에선 지은이가 서산대사였기에 그 의미가 돋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큰 그릇, 그 깊이를 새삼 깨닫는다.(이 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산판일을 하고 싶었던 시인, 그간의 사정으로 미루어 왔는데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안전장구를 잘 갖추고 기계톱을 짊어졌다.
까짓것, 이팔청춘인 마음이라 기세 좋게 나섰다.아름드리 참나무가 기계톱에 잘려 나간다. 쾌감보다 공포감이 엄습하여 가슴은 뛰고 두려움에 쳐다본 숲은 성벽 같았다.오금은 저려오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화면에서 보아온 도끼질, 그 능란한 솜씨가 딴 세상 얘기란 걸 연둣빛 사월의 숲이 일러주고 있었다.

시인은 정년퇴임을 했다. 젊어 큰 병을 앓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몸을 건사하였기로 산판일에 도전했다. 하지만 산판일은 마음 같지 않았다. 그리곤 어쩌면 사월의 숲이 일러주는 인생의 의미를 조금은 터득했지 싶다.인생의 의미, 그것이 무엇일까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한 번쯤은 짧은 생애를 뒤돌아보고 깊은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희대의 통치자로는 단연 알렉산드 대왕을 꼽는다. 나이 20에 즉위하여 광대무변의 대제국을 건설하고 그리이스 문화를 동방에까지 전수케한 알렉산드 대왕이다.

천하제일의 대왕이 썩은 나무통 속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노예 신분의 디오게네스를 찾아서 돕고 싶다고 했단다. 비록 거절과 냉대를 당하고 돌아서기는 했다지만 얼마나 인간적이고 적나라한 참 모습이었는지 감동적이다. 어느 누가 그 신분으로 노예의 인격을 존중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대왕이 바빌론에 개선한 다음 연회를 베푼 자리에서 흥에 취해 젊은 장군에게 씨름을 청했다. 마치 이덕재 시인이 기계톱을 짊어지고 아름드리 참나무를 벌목하기위해 나선 것처럼 말이다. 우뢰 같은 박수와 함성 속에 씨름판이 벌어지고 여흥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노쇠한 대왕은 곧 나가떨어지고 말았으니 젊은 장군이 억센 팔로 번쩍 들어 저만큼 던진 것이다.

장내는 숙연해지고 넘어뜨린 장군은 엎드려 사죄를 하지만 대왕은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엎드린 채 독백을 한다. 「내가 누울 곳은 기껏 이 정도면 족한 것을 그 넓은 땅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바쳤구나. 내가 이토록 쉽게 늙다니....」 그 후로 대왕은 가끔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면서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대왕은 말년에 인생의 의미를 터득한 것 같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고 살지만 기실 인생 자체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작은 일에 너무 집착하다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인명의 유한성에 겁을 내는 기색조차 없다.

알렉산드 대왕도 울고 살던 세월을 아무 두려움 없이 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다행스럽다하지 않겠는가. 사실 인생의 의미를 알아보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힘겨운 우리 생활이기도 하다.
시인의 〈산판 도전기〉를 감상하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숙연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이때, 길을 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수막을 보았다. 75세 이상 백신 접종 얘기를 들었으나 현수막 하단에 적힌 접종대상자 ‘1946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란 문구를 보고는 기분이 묘했다.연둣빛 사월의 숲이 일러주는 人生의 意味, 모르긴 해도 수분(守分)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수분은 분수를 지키는 일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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