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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거제찬가]'없어 질 번 한 거제문화유적'③기성관 쇠비석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시인/수필가
『어려웠던 그 시절 경제 발전을 하면서 유구한 거제의 문화유적지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헌신을 다해 보존하게 되었다. 그 실상을 상세히 기록해 둔다.』<필자>

*이승철: 거제군 문화공보실 근무, 언론, 관광, 문화재, 종교 업무담당, 포로수용소 유적지 보존에 일생을 바쳤다. 98년 정년퇴임,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국가기록원민간기록원, 거제박물관 명예관장, 거제문화원 이사, 집필 거제시지, 장목면지, 거제향교지, 거제수협105년사. 연초면지, 사등면지, 동부면지, 거제도민요집, 거제도 설화집, 한려수도 칠백리, 환상의 섬 거제도등 거제와 관련된 책을 집필했다.

3. 기성관 쇠 비석   
  1663년에 고현에서 거제로 거제현이 옮겨지면서 이 지역이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송덕비가 많이 서게 되었다. 거제향교 입구와 동상리 서정리에 있던 비석이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도로 확장 등으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을 제익근 공보실장과 필자가 현지 나가서 거제유림의 협조를 받아 없애버리려고 하는 비석을 1970년 기성관 앞으로 옮겼다가 1974년부터 1976년까지 기성관 해체 복원당시 기성관 내로 옮겼다. 송덕 비석가운데 철비석 6기가 있다. 주물(鑄物)로 만든 비석은 음각(陰刻)된 글자가 선명하기에 이 비석을 통해 당시 쇠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우리거제에 크게 발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비두(碑頭)의 조각에서부터 비신(碑身)에 이르기까지 정밀하다.

 이 비석들은 거제의 역사를 제조명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비석의 공적 내용보다. 시대적 문화의 향기와 예술적인 조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14개의 비석 중에 6개의 쇠 (鐵)비석이 있다. 쇠 비석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드물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 땅에 있는 쇠란 쇠는 모조리 다 긁어다가 전쟁 무기를 만들었는데, 그때 거제도에 있던 많은 쇠 비석이 뽑혀 나갔으나 이 비석들은 용케도 잘남아 있었다.  

  높이가 대개  150㎝ 정도이고  폭이 50여㎝ 뚜 개가 4㎝ 정도 되는 쇠 비석이다. 무쇠를 녹여서 주물( 鑄物)로 만든 것이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하여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다. 비석 한 귀퉁이에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한 장소 정도라도 기록해 두었더라면 비석의 제작 장소와 장인 (匠人)의 정신은 알 수 있을 것인데, 그 시대는 양반의 비석에 상인(常人)이나 공인(工人)의 이름이 오르게 되면 신분에 먹칠을 한다고 하여 천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양반의 고귀한 이름 보다 장인의 기능을 더 높이 평가한다. 만드는 방법은 주물(鑄物) 방법인데 큰 용광로(鎔鑛爐)에 쇠를 녹여서 털을 짜서 쇠 물을 부어서 굳힌 것이다. 

 주물을 부어 만들기 까지 의 어려운 공정과 많은 인력과 예산이 들었을 것이다. 흠집이 없는 비석면과 음각(陰刻)된 글자가 예리한 조각칼로 도려 낸 것처럼 글자가 잘 파여져 있다. 그리고 음양(陰陽)의 조화와 오행(五行)에 맞추어 만들었다. 비두(碑頭)는 하늘을 상징 했고 비대 (碑臺)는 땅을 표현 했으며 비신은 인간 세상을 나타낸 삼신 (三神) 즉 天 地 人의 우주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걸작 품이다.

 글자 한자 한자가 정확하게 제 위치에 박혀 있다. 비틀어 졌거나 허물어진 곳이 없다. 글자의 깊이나 간격이 일정하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 사람들이 감탄을 한다. 쇠비석의 제작 연대에 따라 조각의 형상이 다소 다르게 제작되어 있어서 그 시대의 주물 공예 기술에 대한 예술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비석의 주인공은 관료적인 위압감과 삼권을 손에 쥐고 호령했다. 찌릉 찌릉 한 호통소리도 시류(時流)의 바람 앞에 뜬구름 같이 허망 할 뿐이다. 그토록 오래오래 그 이름과 업적을 남기려고 한 욕망도 잿불처럼 사그라졌다. 시대가 달라졌고 비석에 대한 판단도 달라졌다 비석 주인공의 업적 보다 비석을 만든 배경과 장인 (匠人])정신을 더 높이 평가 하고 있다. 이 시대에 와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장인들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잊지 않는 것이 안타 갚다.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오직 민족적인 예술제작에 혼신을 바친 그 룩 한 장인정신의 아름다운 숨결이 용광로의 불길처럼 활할 타오르고 있다. 없어 질 번한 비석을 제익근 공보실장과 윤병제 거제향교 전교의 협조로 보존하여 향토의 사료로 삼게 되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기쁨이 비석을 볼 때 마다 그때의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난다.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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