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박만희기자]
해군 수병 전투복은 우리 군 장병 대부분이 착용하는 디지털 전투복과는 다른, 해군 수병만이 입는 일명 ‘샘브레이-당가리’로 불린다. 샘브레이는 하늘색 셔츠, 당가리는 짙은 남색 바지다.

해군 수병의 상징인 일명 빵모자(정모)는 물을 퍼내는 바가지처럼 사용하기 위해 고안됐다. 함정에 물이 차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급하면 모자를 벗어 바닷물을 퍼내거나 함정에 물이 부족할 경우 빗물을 받는 용도로 쓸 수 있다.

​수병들이 '당가리'(dungarees)라고 부르는 근무복 바지는 바지 끝단의 품이 넓은 나팔바지 형태로 디자인돼 있다. 이는 단정을 육지로 끌어올리는 작업 등 물에 들어가야할 경우에 대비해 바지를 쉽게 걷어 올려 물에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납되는 수병(해상병) 전투복을 재활용한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어 정부의 저탄소·친환경 정책에 앞장서고 있다.

​해군군수사령부(군수사) 보급창은 지난 16일 “올해부터 신형 함상복과 함상화를 지급받은 함정 근무 수병들이 반납하는 전투복을 활용해 리사이클(Recycle) 품목으로 제작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입던 전투복으로 만든 리사이클 품목이 장병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전역하는 해상병들이 반납하는 전투복은 상태에 따라 재활용 피복소를 거쳐 후배에게 물려주거나 폐기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함정 승조원들의 안전성과 위생, 해상 환경 등을 고려한 신형 함상복이 순차적으로 보급되면서 기존의 해상병 전투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를 안타까워한 군수사 보급창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해상병 전투복을 재활용하게 됐다. 리사이클 품목은 장바구니, 앞치마, 토시, 차량용 블랙박스 덮개 등 4종류다. 보급창은 지난 4월 말부터 시제품을 만들어 영내 장병용으로 장바구니, 작업 인원용으로 토시, 조리병용으로 앞치마, 영외 간부용으로 블랙박스 덮개를 최종 선정했다.

지난달 7일부터 18일까지 각 부대에서 1차 제작 소요를 확인한 결과 불과 열흘 만에 19개 부대로부터 2200여 점의 제작 요청을 받았다.보급창은 지급 기준을 포함한 적합성을 검토해 총 1600여 점을 선별·제작하고 있다. 보급창의 기획력 덕분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뻔했던 ‘샘브레이-당가리’가 환골탈태한 것.

​제작은 보급창 물자정비지원대가 맡았다.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한 조미혜·이규림 군무주무관이 제품을 디자인하면, 피복팀원들이 전투복을 해체한다. 이어 섬세한 재봉작업으로 상의 몸통 부분은 장바구니로, 양쪽 소매 부분은 부자재를 덧대 실용적인 토시로 만든다. 데님(Denim·비교적 두꺼운 면직물의 일종) 재질의 하의는 조리병들이 작업 중 사용하기 편리한 앞치마와 차량용 블랙박스 덮개로 재탄생한다.

해군군수사령부 보급창이 반납된 해상병 전투복을 활용해 리사이클 품목을 제작·보급하고 있는 가운데 진해 군항 2부두에 정박 중인 노적봉함 조리부사관과 조리병들이 장바구니·앞치마·토시 등을 살펴보고 있다./해군군수사령부

물자정비지원대 피복팀은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도 힘을 보탰다.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장병 보급용 면 마스크를 자체 제작·보급하는 등 국가적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팽현윤 물자정비지원대장은 “신형 함상복 보급으로 기존 해상병 전투복 처리에 고민이 컸는데 부대원들의 아이디어로 세척 과정을 거쳐 리사이클 품목을 제작하게 됐다”며 “장병들이 자주 방문하는 복지시설에서 물품을 구입한 후 비닐봉지 대신 재활용 장바구니를 사용하게 돼 환경보호에 일조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리사이클 품목 제작을 총괄하는 구미현 팀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해상병 전투복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면서 해군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장병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친환경적이면서 실생활에도 유용한 피복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자신들이 입던 전투복으로 제작된 리사이클 품목을 받아 든 함정 근무 장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4900톤급 상륙함(LST-Ⅱ) 노적봉함에서 조리병으로 근무하는 김시영 이병은 “튀김 조리 과정에서 뜨거운 기름이 튀어 자칫 화상 위험이 생길 수 있는데 반납한 전투복으로 만든 토시를 사용하면서 이 같은 걱정을 덜었다. 매끼 식사 후 이뤄지는 잔반 처리 과정에서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어 매우 실용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리부사관 윤미리내 중사는 “기존에 조리 요원들이 사용하던 앞치마는 길이가 길고 무거워 조금 불편했는데 ‘당가리’ 앞치마 덕분에 이런 고충이 말끔히 해결됐다”며 “해군을 상징하는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제작돼 자부심도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

​

박만희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