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71]
     '여 우 구 슬'  

    허  원  영 

재 너머 여우 터에
보름달 둥실 뜨면
        
은빛 꼬리 펼쳐들고
재주넘는 미호 공주

백 개의 
구슬을 모아
天女 되려 하였네.
        

산 아래 선비에게
몸과 맘 기울어져
         
안 보는 듯 훔쳐보며
외로움 달랬지만

달맞이
슬픔 같은 연모
구슬 되어 맺혔네.

◎  미인의 기준 · 1
 지난 날엔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들었다. 신언서판은 사람의 용모와 품위, 말 그리고 배운 지식과 식견 또 하나가 사물을 보는 가치척도와 판단 능력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지금 그 평가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돈이 우선하는 세상이 되고 보니 제일 앞자리에 두어야 하는 것이 이재술이고 치부능력이 아닌가 싶다.

 신언서판은 남자에 대한 평가기준이었는바 여자 특히 미인의 평가 기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옛적엔 난을 미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난 꽃은 미인을 닮았다(蘭花似美人)’ 또 ‘그윽한 난초는 정녀와 같다(幽蘭如貞女)’라는 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난에는 귀녀 또는 우아한 미녀라고 하는 우의(寓意)가 있다. 왕비의 궁전을 난전(蘭殿)이라 하고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 또는 난실(蘭室)이라고 하는 데서도 미녀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촉마다 일고 있는 생명의 숨결일레
       기도같이 가뭇한 몸짓 예고된 사랑이기
       이제사 깊디깊은 병 눈물임을 내 알았다.

       정처를 알 수 없는 한 가닥 떠돌이 바람
       정갈한 기가 넘쳐 혼쭐 하나 맑히는가
       여지껏 잊고 살아온 엄니 손을 다시 본다.
                -졸시, ‘양란(養蘭)3’ 전문

 ‘조선시대 구색(九色)이란 미인의 기준이 있었다. 파적(破敵)삼아 옮겨 본다.
 삼백(三白) - 피부, 이, 손은 희고
 삼흑(三黑) - 눈, 머리카락, 눈썹은 검고
 삼홍(三紅) - 입술, 뺨, 손톱은 붉고
 삼장(三長) - 키, 머리카락, 팔은 길고
 삼단(三短) - 귀, 치아, 턱은 짧고
 삼광(三廣) - 가슴, 이마, 미간은 넓고
 삼세(三細) - 허리, 손가락, 발은 날씬하고
 삼박(三薄) - 손바닥, 발목, 콧구멍은 가늘고
 삼후(三厚) - 입술, 팔, 엉덩이는 도톰해야 한다.
 
 어떤 분의 경험적 미인관(美人觀) 일지는 모르나 무던히도 삼자(三字)를 좋아하는 분인 듯하다. 그러니까 三자가 포함된 기준 종류로는 九개항으로 대별하였고, 각 항의 세부내용으로는 27개 항목의 선택기준을 두었다. 엄청난 선택기준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으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제정된 항목만 요란스러웠지 별로 선정기준이 엄격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만한 기준이 미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여성의 대부분이 다 미인 속에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없지도 않다.

또 어느 고전(古典)에서 가인(佳人)에 대하여 평하되 “흑진진(黑鬒鬒)한 머리, 세만만(細彎彎)한 눈썹, 광류류(光溜溜)한 눈, 향분분(香噴噴)한 입, 직융융(直隆隆)한 코, 홍유유(紅乳乳)한 뺨, 분영영(粉瑩瑩)한 얼굴, 경요요(經裊裊)한 몸체, 옥섬섬(玉纖纖)한 손길, 일념념(一捻捻)한 허리, 연농농(軟膿膿)한 배, 요첨첨(堯尖尖)한 발, 화록록(花簇簇)한 신, 육내내(肉嬭嬭)한 가슴, 백생생(白生生)한 다리...” 운운하였다. 하도 묘사한 형용이 어려워서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옛날 중국의 양귀비(楊貴妃)나 서시(西施)같은 미인들이 이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갈 뿐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여우구슬〉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대극과 한해살이풀인 ‘여우구슬’을 두고 허원영 시인이 읊은 2수 연작의 서정시조다.‘여우구슬’은 여우가 꼬리에 구슬을 감춘 것처럼 잎사귀 아래에 숨긴 듯한 구슬 모양의 작은 열매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특징은 ‘여우주머니’와 비슷한데, 여우주머니는 열매에 자루가 있고 여우구슬은 열매 자루가 없는 것이 다르다. 여우구슬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마른 토양에서 자라며 키는 15~40cm 이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일가화(一家花)이며 적갈색으로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일가화는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의 나무에 함께 피는 것을 가리키며 자웅동주라고도 한다. 9~10월에 적갈색 열매가 달리는데 지름은 약 0.3cm 이다.뿌리가 붙은 전초(全草)를 여름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해열, 해독, 이뇨작용에 쓰이고 요도염이나 방광, 결석, 간염, 장염, 이질에 효과가 있다. 특히 급만성 간염, 간경화, 간암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B형 간염의 치료제로도 쓰인다.
 
시조 작품 〈여우구슬〉을 감상하기에 앞서 여우구슬 설화를 옮겨 본다.옛적에 여우가 여자로 변신하여 사람들을 유혹했다. 때마침 학동이 지나가자 유혹하여 입을 맞추면서 학동의 입속에 구슬을 넣었다 뺐다 하였다.그 학동이 기운이 없고 점점 야위어가니 서당 훈당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입속에 들어온 구슬을 삼키고 하늘을 보면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고 땅을 보면 땅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하였다. 학동은 다음날 여우를 만나 입을 맞출 때 자기 입속에 들어온 구슬을 삼켰다. 학동은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 별 쓸모가 없다고 여겨 땅을 보았다. 그 후 이 학동은 땅의 이치를 거울을 들여다보듯 잘 아는 풍수가 되었다.

〈여우구슬〉은 마치 전설을 소재로 한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진진한 흥미가 있다./ 재 너머 여우 터에 보름달 둥실 뜨면 / 여우가 재주를 넘는 모양이다 / 은빛 꼬리 펼쳐 들고 재주넘는 미호 공주/다. 미호 공주는 구미호를 말한다. 그 구미호가 구슬 백 개를 모으면 天女가 된단다. 그러다 / 산 아래 선비에게 / 반하여 몸과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 안 보는 듯 훔쳐보며 외로움 달랬지만 / 어쩌랴 그 선비는 바위같이 꿈쩍도 안했으니 / 달맞이 슬픔 같은 연모 구슬 되어 맺혔단다. / 연모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며 몹시 그리워함 일진데 ‘달맞이 슬픔 같은 연모’는 어떤 것 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둥두렷 솟은 달에 소원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았으나 아픔만 더했기에 이를 ‘달맞이 슬픔 같은 연모’라 했지 싶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끝내 구슬이 되어 알알이 맺혔단다.

시인은 동화작가가 되고도 남을 필력과 재간을 지닌 줄 알고 있다. 그 재간을 〈여우구슬〉에서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 같다. ‘안 보는 듯 훔쳐보며’며 ‘달맞이 슬픔 같은 연모’는 작자의 예리한 詩眼을 엿볼 수 있어 흔연했다. 수년 전 필자는 간경변 초기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그래서 여태 골골하는지, 기회에 ‘여우구슬’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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