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소설가 신말수 단편집 연재 보기
[신말수단편소설③] '엄마의 서리별'<1>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③엄마의 서리별

“동숭아, 이모 결국 돌아가싰다. 장지는 정했다, 영천 알제? 해병대 출신들 묘지 말이다. 이모부가 먼저 묻힌 곳이긴 해도 명애가 암말도 몬 하거로 딱 못을 박아삐네. 내 생각은 이모꺼정 그 멀리에 모신다는 기 좀 서운키는 하다만 뭐 우리가 소용이 있나, 호적 자석은 엄연히 명애로 올라 있응께. 지 부모 지가 알아서 한다는데,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는 객인데 뭐. 마침 공일이 끼여 주서방도 올 수 있겄네.” 종사촌, 그러니까 큰 이모네 큰아들인 종길이 오빠의 전화를 받은 건 저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려던 참이었다. 돌아가신 이모에 대한 애도는 잠시 밀쳐놓고 장지를 함부로 정한 명애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는 말투였다.

명애가 오죽 알아서 정했을라고요, 그냥 암말 없이 우린 따라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이 목젖을 건드렸지만 전화 길이긴 해도 한참이나 먼 부산에서, 오랜만에 대하는 오빠의 목소리인지라 꾹 눌러 삼켰다. 생전의 이모는 자식을 생산하지 못했다. 누구 탓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쉬쉬하는 뒷말 중에는 더러 이모를 매도하려는 의도가 많았다. 제 언니 터를 범한 죗값이라는 둥, 그래 삼신할미가 등을 돌렸다는 둥, 그런 말들이 음지식물처럼 몸을 숨기며 떠돌아 다녔다. 심성은 그렇게 모질지 못한 막내이모였지만 수더분 한 정을 느껴보지 못한 건 제 몸에 아이를 실어보지 못한 탓이었을까. 이웃으로 살면서 이모는 늘 남처럼 데면데면 살가운 맛이 없었다. 명애가 이모 집에 양녀로 들어오던 날은 바람 사납고 추운 겨울 날이었다. 아이를 낳다가 세상 떠난 제 어미 대신 추렴젖으로 키우던 아비마저 덜컥 목숨을 놓아 버린, 올 데 갈 데 없는 고아라고 했다. 댓살 되었을까, 마루 끝에 살짝 엉덩이만 걸친 아이의 양 볼은 가뭄 끝의 논배미처럼 갈라져서 빨갰다. 아이의 직감도 이모의 심사를 파악한 듯, 마음 터놀 염 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울타리로 둘러선 미루나무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는 일찌감치 시큰둥 한 얼굴로 인물이 별로라느니, 아이 나이가 많다느니, 그런 트집 잡을 궁리만 했다.

“그라몬, 애린 거 데불고 와서 니가 똥치우고 오줌 받아낼 자신이 있나! 그기 아무나 하는 일인 줄 아나. 찢어지는 뱃속 아픔 없이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인 기라. 개똥도 모림서 어데서 함부로 덤 벼들라 카노. 니 정말로 밤잠 설침서 맨 정신으로 수발들 자신있으몬 금방 빼낸 핏덩이 하나 지옥 불에 가서도 건져내어 니 앞에 바칠게.”
“그래도 저리 빠꿈 쳐다봄서 절대로 옴마 아이다, 카는 아 보담 낳제”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기사 당연하제. 니 뱃속에서 안 빼냈는 데 우째서 니가 옴마가 금방 될 끼고. 그랑께 니가 저 얼라를 니 새끼로 만들어야제. 지 새끼 만드는 일이 누워서 떡 먹디끼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나. 배는 안 아팠응께, 맘이라도 아파감서 새끼를 만들어 내야제. 원, 지 뱃속에 뭔 애를 실어 봤어야 면장을 하제.”
결국 엄마는 말끝을 살짝 입에 몰아넣으면서 이모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고 말았다. 뱃속에 담아보지 못한 아이는 이모에게 쓰 는 극약 방침이나 다름없었고, 이모는 샐기죽해진 얼굴로 약발을 충분히 받았다는 티를 냈다. 이모는 엄마의 극약 처방에 한참을 가슴을 앓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입씨름으로 맞아들인 명애 였다.
이모의 그런 마음이 깔려 있으니 명애의 새로운 삶에 큰 영 광 있을 리 만무했다. 애틋한 정 하나 없이 이모와 명애는 그럭저럭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공생 관계를 형성해 갔다. 

명애를 생각하면 늘 부르튼 손부터 먼저 떠올랐다. 어렸을 적부 터 아예 부엌으로 내쫓긴 명애는 이모 잔소리를 잘 받아냈다. 오 갈 데 없는 명애, 잔심부름꾼이 없었던 이모의 처지, 두 사람은 서 로의 필요를 맘껏 주고받으며 그런대로 세월을 일궈나갔다. 그렇게 구박덩이로 시작한 명애가 피붙이 하나 생산해 내지 못 했던 이모네 노후에 큰 힘이 되었다. 사람 좋은 뱃사람을 데릴사 위로 들여 손자 둘을 보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지만 남 보기에 손색없는 가족의 모양새였다. 공직에서 일찍 손을 놓은 이 모부가 늘그막에 벌인 사업은 실패로 치달았고 살림은 거덜나고 말았다. 억척스럽고 바지런한 명애가 아니었다면 이모네 말년은 자칫 초라한 행색의 삶으로 몰릴 뻔 했다. 피를 나눈 자식인들 명 애 만큼 했으랴, 명애에 대한 이모의 비정함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모를 몰몰아 뒷소리를 해댔다. 이모가 명애에게 베푼 것이라곤 손에 턱하니 내놓을 뭔가는 없었다. 어렵다는 핑계로 중학교 졸업 장도 겨우 거머쥔 명애였다. 제 배 아파 빼낸 아이라면 어디 봇짐 장사를 해서라도 달랑 하나뿐인 여식 공부쯤이야 어려울까만, 이모는 그런 궁리에도 인색한 양반이었다. 그 성질에 여북하겄어. 새끼 일이라면 목숨도 마다 않을 엄마가 알았다면 이모의 매몰참에 또 끌끌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 이모에게 명애는 부모 부양에 소홀함이 없었다. 투자한 데에 비하면 많은 것을 돌려받은, 이모에게 명애는 쏠쏠한 이문을 남겨준 장사나 다름없었다. 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피폐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이모부는 뜬금없이 노름까지 손을 댔던 모양이다. 이모 몰래 쌓인 빚을 명애가 쉬쉬하며 갚아 주었다는, 기특한 소문도 간혹 귓결에 들려오기도 했다. 이모부는 이모와 좀 달랐다. 정이 깊은 이모부는 명애에게 각별했고 경우가 바르고 싹싹한 명애는 이모부에게 그 갚음에 정성을 들였다.

설거지를 끝내고 얼굴에 크림을 문질러 대면서 생각은 자꾸 옛날을 들추어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별로 소용없는 기억들이 실꾸리 실처럼 절로 풀려 나왔다.젊은 나이로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이웃 사람들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의 이유가 한결 이모의 밑심에 짓눌렸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한 입심거리로 들추어내어 떠들었다 .자매는 절대 한동네로 출가하는게 아니야. 절대 안된다는 속설을 열심히 믿었던 사람들은 엄마의 죽음 앞에 신바람 나서 말휘갑을 치곤했다. 생전의 엄마와 이모 사이 또한 늘 앙숙이었다. 엄마 바로 밑 두 살 터울인 이모가 우리 동네로 시집을 온 후, 속설의 각본대로 우비(雨備)를 만들어 팔던 아버지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없는 살림에 익숙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돈과 함께 삶의 의지까지 잃어 갔다.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건강을 놓쳤고 더는 잃을 것이 없을 때 삶에 대한 응수는 자포자기였다. 언제나 밭은기침으로 하루를 열던 아버지, 그 기침 소리는 절망의 신호처럼 식구 모두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 가는 아버지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한마디씩 던졌지만 정작 세상을 먼저 놓아버린 쪽은 엄마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참이나 더 구차한 삶을 살다 떠 났다. 순식간에 며느리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큰댁 할머니는 눈물에 겨워 늘 잔물잔물, 시야가 부실했다.

“가야 할 것 같지?”
풀어헤친 생각을 앞에 놓고 멍히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남편의 진지한 눈길은 티브이에 붙잡혀 있었다. 내 대답을 채 건네받기도 전에 남편의 함성이 방안을 진동했다. 올림픽 축구 예선전 중계, 드디어 골이 터진 모양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남편 얼굴은 축구 선수의 흐뭇한 선전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 뒤척였다. 돌아가신 분은 진즉 이모였지만 내 생각을 다스리며 휘두른 사람은 엄마였다.
“아무튼 죽으면서까지 제 몫 다 챙기려는 이모의 놀부 심보, 아유 누가 말려. 어째 당신 노는 토요일까지 염두에 두고 눈을 감으실까.”
“왜, 아직도 뭐 남은 게 있어?”
“아이 그게 언제적 일인데, 뭐 아직일까 마는.”
내비게이션 포장 상자를 뜯던 남편이 지나가는 말투로 내 심중을 떠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새로 장만한 내비게이션 또한 이모 장례식을 위해 미리 준비한 셈이 되고 말았다. 포장지를 뜯어내면서 고향으로 내몰아 부치는 이모의 얄팍한 속셈까지 척 척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생전의 이모가 누렸던 삶도 늘 그랬 던 것 같다. 누가 한자매라고 여길까 싶을 정도로 이모와 엄마는 많이 달랐다. 생김생김은 물론이거니와 손끝 또한 야무진 엄마에 비하면 이모의 살림사는 법은 늘 허술했다. 그러나 삶의 질은 이모가 훨씬 우월했다. 여자 팔자 뒤웅박, 남자 하나 잘 만나니 늘어지게 잘 산다는, 아궁이 속을 휘젓는 부지깽이 끝에 매달리던 엄마의 푸념은 내가 겨우 알아들을 만큼 나직했다. <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