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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78]김용호-'가을 둔덕' ▲김용호:일운출생/경상대대학원졸/한국,거제문협,거제수필,거제시조,거제시문학,청마기념사업회,거제향교회원

    [금요거제시조選-78]
     '가을 둔덕'  

 

 

 





        용  호 

둔덕골 내려가면 넓은 들 나오는데
곡식들 한창 익어 정답기 그지없고
천변의 코스모스길 한정 없이 걷는다.

하둔의 가운데에 근사한 농협 건물
은행은 일층이고 이층은 식당이다
소문난 둔덕한우를 어찌 아니 맛보랴.

둔덕천 걷다 보면 갈매기도 따라 걷고
간척지 끄트머리 왕새우 양식장들
이 가을 살쪘겠구나 어찌 그냥 지나랴.

시인프로필
▲김용호:일운출생/경상대대학원졸/한국문협,거제문협,거제수필,거제시조,거제시문학,청마기념사업회,거제향교 회원/전국시조가사공모전일반부최우수상/현대시조등단(2020년)/시집「갯민숭 달팽이」/시조집「선운사 꽃무릇」/저서「풀어보고엮어보는거제방언사투리」,「재미나게풀어보는거제방언거제말」/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편집장

◎ 젖은 보릿단
비가 잦다. 잦기도 하려니와 내렸다 하면 폭우라서 두렵다. 내 고향 장승포에 산사태가 나던 그 해(1963년)에도 지금 같은 빗줄기가 며칠 계속 내렸다. 계속되던 장맛비는 애써 가꾼 보리를 썩게 하더니 6월25일 아침엔 끝내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소는 먹여야 했다. 소는 가난한 살림에 유일한 밑천이었기로 시키지 않아도 으레 내가 몰고 나가 풀을 뜯겨야 했다. 그날도 예외가 아니어서 낡은 우의를 걸치고 소를 몰고 나갔다. 우의는 말이 우의지 입으나마나 하는 그런 우의였다.비를 흠뻑 맞고 등교 시간에 맞추어 소를 먹이고 왔으나 아침밥이 미쳐 준비가 안 되었다.발을 동동 굴렀으나 비에 젖은 보릿대로 짓는 밥은 어머님의 마음만 조급하게 했지 좀처럼 뜸이 들지 않았다.

 젖은 보릿대는 불은일지 않고 매운 연기만 피어나와 그렁그렁 눈물을 쏟게 하였다.
 더 기다렸다가는 지각을 면치 못 할 시각에 두 살 위인 형과 나는 곱삶은 보리쌀 한 주먹을 간장에 훌훌 말아먹고는 5리 정도 거리인 학교를 향해 뛰어 갔다. 그때야 너나없이 가난하여 겉보리를 찧어 곱삶아 웃쌀을 조금 넣고 밥을 지었다. 쌀이 없었기로 빻은 보리쌀을 곱삶아야 먹을 만했다. 곱삶은 보리쌀로 지은 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만 있다면 원이 없을 그런 때였다.
 

어린 마음에 비까지 맞아 가며 소를 먹였는데 제때 밥을 주지 않는다고 어머님께 심한 투정을 하였음은 말 할 것도 없다.학교를 가는 길목에 있는 초등학교 담 모퉁이를 막 지나는 순간 내가 다니는 거제중고등학교 쪽에서 ‘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집동 같은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았다.집집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서는 소리 난 곳으로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다.나도 들숨날숨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아비규환, 그것은 차라리 지옥이었다.지금도 왜 그토록 큰 산사태가 일어났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지만, ‘꽝’하면서 갈라진 산자락은 학교 운동장을 덮치면서 7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땅에 묻고 말았다.

 늦은 아침밥이 화를 면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산사태의 소문은 금방 장승포 읍내로 퍼져나갔고, 우리 어머님께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어머님께선 소문을 들은 그길로 일손을 팽개치곤 학교로 행하니 내달려가셨다.그리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아들형제의 생사를 물었다. 평소에도 일곱이나 되는 아들형제들의 이름이 헷갈리시곤 하였는데 그 판국에 이름을 제대로 말씀하셨을 리가 없었다.뒷날 어머님께선 아들 형제들중 누구의 이름을 들먹였는지 기억에 없다고 하셨다.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에 죽었다고 말하기 어려워 모른다고 하는 줄 아시고는 장마비로 진창이 된 길바닥에 주저앉아 곱삶은 보리쌀만 먹여 보낸 죄책감에 목놓아 울부짖었다.

     곱삶은 보리밥은 
     허기진 유년의 탑

     가난도 부황이 들어
     비에 젖은 보릿단을

     어머니 행주치마엔
     동이동이 눈물이고 ·····.


     진창길에 곤두박힌
     천갈래로 찢기는 모정

     죄라면 그야 가난뿐
     소두방은 늘 윤이났고

     장대비 뿌린 저녁을
     연기 한 자락 기어갔다.


     물바다 묻히신 부모
     효심은 뜬 구름

     물지면 개골개골
     청개구리 울음운다

     울어서 될일이라면야
     울어서 풀릴 한이라면야 ·····.

      拙詩, ‘젖은 보릿단’, 전문.

‘곱삶은 보리밥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우리 어머닌 그때 실성(?)한 사람이었다. 그날 실성하신 장승포의 어머님이 한두 분 이었을까만, 우리 어머닌 실성의 도가 심하셨던 것 같다. 아침밥을 못 먹여 보낸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심한 투정을 했던 못난 자식은 장대 같은 빗줄기만 보면 청개구리가 된다. 울어서 풀릴 한이라면야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둔덕의 동쪽엔 507미터의 산방산이 자리하고 있다.산방산은 문필봉이다. 산방산을 경계로 거제면엔 筆에 해당하며 명필이 많이 배출되었고 文에 해당하는 둔덕면엔 청마를 비롯한 문사가 나왔다.
 1948년도에 발간된 청마의 시집 〈울릉도〉에 ‘거제도 둔덕골’이 실려 있다.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로 내려 내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산 비탈 알로
       몇 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할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造藥) 써서 병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 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 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적 베틀에 질삼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 망정 호연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종손이며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의 묏가에 
       부조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유치환, ‘거제도 둔덕골’, 전문.

 둔덕골엔 중앙으로 둔덕천이 흐르고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 하고 있다. 넓은 들에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다. 그 모습이 / 정답기 그지없기에 /천변의 코스모스 길을 /시인은 한정 없이 걷고 있다. 둔덕의 남쪽이 하둔이다. 그 하둔의 가운데에 신축한 농협 건물이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층이 은행이고 이층이 식당이다. 이 식당엔 언제나 성황이다. 소문난 둔덕한우 덕분이다. 둔덕한우관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란다. 소고기의 가격도 싸고 질이 좋아 언제나 손님이 만원이다. 이 둔덕한우를 / 어찌 아니 맛보랴 / 라고 식욕을 돋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둔덕천 뚝 길을 걷다보면 갈매기도 뒤 따른다. 따라 걷는다는 갈매기, 그 표현이 신선하다.왕새우 양식장의 살찐 왕새우, 왕소금에 튀긴 왕새우 맛이 어떤지는 먹어본 사람은 안다. 시인의 둔덕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연작시가 나올 정도로 둔덕은 시인의 소재 보물 창고인 셈이다.‘한정 없이 걷는다’ ‘어찌 아니 맛보랴’ ‘어찌 그냥 지나랴’ 의 마무리는 시인의 혜안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은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는 白露다.코로나에 지친 심신을 둔덕한우와 왕새우로 달랬으면 좋으련만 마음뿐이다.白露처럼 세상이 맑아 졌으면 하고 비개인 하늘을 바라본다. 고추잠자리 군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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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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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산사나이 2021-09-25 17:49:41

    고향냄새 물씬나는 아름다운 글 항상 고맙습니다. 앞날에 영광이 함께하시길~~^^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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