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79]
      ' 약  밥 '  

      허  원  영 

햇볕에 말려놓은 호랑이콩 한 움큼과
벌초길에 주워왔던 토실한 알밤들을
찹쌀과 골고루 섞어 시루에다 삶는다.

김 오른 면포 속에 동글동글 밥알들이
농소 갯가 몽돌처럼 까맣게 익어 가면
계피향 알싸한 추억 약밥으로 납신다.

노란 알밤 박혀있는 달달한 약밥이라
어른들 모여계신 경로당에 공양하니
둥두릇 솟는 보름달 다가서는 한가위.  
      
◎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사람의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뜻이다.한가위를 앞두고 세인들의 편견으로 잘못 알려진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부인에 대하여 역지사지로 살펴보기로 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그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작년 추석 때 나훈아 코리안 어게인 콘서트에서 열창한 ‘테스형’도 이 소크라테스를 말한다. 아울러 그 부인인 크산티페는 악처(惡妻)로 해서 철학자의 명성에 구색까지 맞춰 주었다. 하루는 크산티페가 심한 바가지를 긁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위에 찬물을 한초롱 쏟아 부었다. 천둥이 그치면 소나기가 쏟아지는 법이란 소크라테스의 말로 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더욱 현부(賢夫)로 추켜세우고 부인 크산티페는 악처로 찍히게 되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현부이고 크산티페는 악처일까. 어찌 현부에 악처가 있을 수 있으랴. 역지사지로 한 번 판단하여 보라. 크산티페가 오죽 울화가 치밀었으면 남편의 머리 위에 찬물을 쏟아 부었을까. 남편은 철학을 내세워 별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것인 양 난해한 어휘를 구사하여 이리저리 둘러대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남성이라는 억센 완력을 휘둘렀을 터인즉, 연약한 여자의 유일한 방어수단은 바가지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줄 수 있으리라.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찬물을 무기로 사용하였음은 어쩌면 사려 깊고 인정 많은 아내라 단정 지어도 좋지 않겠는가. 이런 현부(賢婦)를 악처로 규정지은 세인들의 편견은 얼마나 불공평하고 무책임한 비판인지 한 번 생각해 봄직도 하다.

     아닌 길을 길이라며
     외곬으로 내달았네

     부여잡은 소매깃을
     본체만체 뿌리치어

     오십 년 쌓은 공든 탑
     반나마는 기울었다.

     강산이 댓 번 변해
     절로 굽은 등줄기여

     석양에 붉어진 봄
     시부지기 웃는 그대

     남은 날 줍는 햇살일랑
     오지랖에 담아 주리.
                        -拙詩, ‘보은-아내에게’, 전문

일찍이 공자를 성인으로 존경하면서 그의 부인에게는 현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공자더러 편협한 남편이라고 하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세태인심(世態人心)이란 이런 것이다. 공자가 만고에 사표가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나 성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부라 할 수는 없다. 석가모니도 아무 죄 없는 젊은 부인을 버리고 출가를 했으니 현부하고는 거리가 멀다.공자처럼 아내에게 까다롭고 좁쌀스런 남편상은 보기 힘들지니 어디한번 흉이나 모아보자.공자의 괴팍한 옷 입는 취미만 봐도 그렇다. 공자 자신이야 세련되고 멋쟁이로서 손색이 없었겠지만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아내는 그 고초가 어떠했겠는가.

제사 때마다 밝은 색으로 새로 지은 베옷이라야 입으셨고 잠옷과 평상복도 연보라나 자주색, 분홍색은 옷에 따라 되느니 안 되느니 하며 색깔은 물론 치수까지 딱 맞아야 입으셨다. 그 정도는 약과다. 겨울철이라도 색과 옷감을 달리 했으니 검은 옷을 입으실 때는 흑염소 가죽의 갖옷을 입으셔야 했고, 흰 옷을 입으실 때는 흰 사슴 가죽의 갖옷으로, 누런색일 때는 누런 여우의 갖옷이요, 사사로이 계실 때는 두꺼운 담비 가죽의 갖옷을 입으셨으니, 전기다리미나 세탁기가 없고 재봉틀이 없던 시대에 그 수발을 드는 부인의 노고를 헤아려 주는 글은 아무도 언급한 바 없다. 공자의 식성은 까다롭다 못해 거의 신경질적인 괴벽에 가까웠으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한다. 물론 이런 것이 성인으로서 흠이 될 수 없고 더욱 인간적이라는데, 그 괴벽이 오히려 매력으로 돋보이고 있으나, 남편으로서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도 쌀 것이며, 보통 사람이 그랬다면 서슴없이 악부라고 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하여 얼마나 까탈을 부렸는지 살펴보자. 색깔이 좋지 않은 음식, 냄새가 나는 것, 맛이 간 것, 설익은 과일은 마다하였으니 냉장고나 가스렌지가 없는 시절, 그 부인이 겪은 고생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으로 그 정경이 눈물겹다 못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이렇게 이기주의의 표상이 되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살 여자가 이 세상 어느 구석에 존재 하겠는가, 이 정도의 까다로움도 그 제자들의 입을 통한 것이니 성인의 품도에 맞도록 좋은 점만 골라 썼으니 망정이지 일일이 다 기록 됐다면 읽기조차 피곤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식불언(食不言), 침불언(寢不言)의 그 점잖은 분께서 어떻게 해서 절손이 되지 않은 점도 자못 흥미롭다. 남흔여열(男欣女悅)은 커녕 하느님 같은 남편을 모시고 고통은 잠자리에서도 얼굴 한번 바로 쳐다보기 어렵고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숨 한번 못 쉬었을 테니 노라가 “나를 인간으로 대우해 주기를 바란다.” 며,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심적 고통 정도는 신발 벗고도 따라갈 수 없는 정도다.

 공자가 철환천하(轍環天下)한 13년 동안 독수공방과 살림을 꾸린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유산도 없으면서 돈벌이 했다는 기록은 없고, 그러나 제자는 3.000명이요, 찾아오는 식객 치다꺼리로 영일(寧日)없는 부인을 상상해 보라.  이러고서도 원만한 가정생활이 유지 되었을 리 없으니 싸주는 보따리도 마다하고 도망쳤을 게 자명하지 않는가.공자가 조강지처를 버린 것이 아니고 아내가 가출한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공자가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말한 사람은 일본인들이다. 중국 사람들은 공자라는 숲을 보았다고 평하며 일본사람은 공자라는 나무를 보았다고 평한다. 아무튼 공자 부인의 가출에 나는 한 표를 던진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약밥〉은 허원영 시인이 난생처음 지은 약밥을 두고 3수 연작으로 읊은 서정시조다.약밥은 전통 혼례 음식이다. 지식백과에 기록된 약밥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꿀을 약이라 하여 꿀밥을 약반(藥飯) 또는 약밥이라 하게 되었다는 설과 먹는 것은 모두 약이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에서 비롯되어 약밥이 밥 중에서 가장 약이 된다 하여 약밥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사를 보면, 신라 21대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보름날, 왕이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 친히 거동했을 때 갑자기 까마귀 때가 날아들고 그 중 한 마리가 봉투 한 장을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신하들이 주워서 봤더니 “이걸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고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은 왕이라 생각하고 서찰을 열어보니 “당장 환궁하여 내전 별실에 있는 금갑을 쏘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왕과 신하들은 급히 환궁하여 금갑에 화살을 쏘았는데 그 안에서 왕비와 내원(內院)의 분수승이 있었으며 왕을 죽일 모략을 하고 있었다. 왕은 두 사람을 주살하고 역모를 평정하게 되었다. 이후 왕은 까마귀 덕에 화를 면했다고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까마귀를 닮은 검은색을 띤 약밥을 지어 제(祭)를 지내고 까마귀에게 먹이로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텃밭에서 수확한 호랑이콩이랑 벌초 다녀오는 길에 주워 온 햇밤으로 생전 처음 약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경로당에서 고스톱을 치시는 마을 어른들께 대접해 드렸더니 어쩌다 성공한 약밥을 맛나게 드시고 칭찬도 아낌없이 해주셨습니다. 부모님 생각에 콧마루가 찡했습니다. 까만 약밥에 드문드문 박힌 노란 통 알밤을 보니 어느새 성큼 다가온 한가위 보름달이 떠올라 읊어본 시조입니다.
 햇볕에 잘 말린 강낭콩 종류인 호랑이 콩 한 움큼을 벌초 길에 주워온 토실한 알밤과 햅쌀인 찹쌀과 골고루 섞어 시루에다 삶았다. 난생 처음 지어본 약밥이긴 하나 / 김 오른 면포 속에 동글동글 밥알들이 / 근처에 있는 / 농소 갯가 몽돌처럼 까맣게 익어 가면 / 어느 사이에 코끝에 스치는 / 계피향 알싸한 추억은 약밥으로 납신다 / 농소 바닷가는 수마 잘된 오석이 나오는 수석 산지이기도 하였기에 지난 날 애석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세월 따라 수석 열기가 식은 지금 애석인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계피향 알싸한 추억’은 모르긴 하나 시인의 어머니께서 지어 주신 약밥은 알싸한 계피향이 피어났으리라 짐작된다. 노란 알밤 박혀 있는 달달한 약밥이라 동네 어른들이 모여계신 노인정에 공양하니 마침 둥두릇 보름달이 솟는 한가위가 다가서고 있다. 
 〈약밥〉엔 시인의 심성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만 같아라.’라 하지 않던가. 오는 손자손녀를 마다하는 한가위, 더도 말고 들도 말고 예전 같은 한가위였으면 좋으련만.<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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