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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③] '엄마의 서리별'<3>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날 못 잡아먹어서 걸신이 들렸는 가베. 그래 한 번 해봐라!”

아예 머리를 갖다 바치는 시늉을 하는, 그런 이모를 엄마는 넋 빠진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모는 그예 물에 뒤범벅이 된 머리로 엄마 가슴팍을 치고 말았다. 천만뜻밖인 이모의 반격이었다. 엄마는 물론, 도랑가의 여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정신을 되찾은 엄마가 응수하면서 대판가리는 시작되었다. 엄마의 우악스런 팔 힘이 이모를 도랑물에 몰아넣었다. 도랑물에 훌러덩 자빠진 이모의 옷은 다 젖어 붙었고 그런 이모를 엄마는 한번 더 내다 밀었다. 물속에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후 이모가 한 일은 엄마 머리카락을 낚아챈 것이었다. 어디에다 그런 힘을 감추 어둔겔까, 이모는 싸움에 목숨이라도 걸 셈인 듯 머리칼 잡은 손힘으로 엄마를 도랑물 속에다 패대기치고 말았다. 물속에 나둥그러진 엄마는 한동안 멍히 주저앉은 채였다. 방망이를 두드려대던 이웃 여자들도, 길가를 지나던 사람들도 이런 난장판에 헤 벌어 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을 흠뻑 둘러 쓴 엄마가 분연히 일어서면서 도랑가의 싸움질은 흥미진진, 본격적인 전면전에 들어갔다. 물에 발이 담긴 행동은 둘 다 어눌했다. 마치 재생 테이프 속의 늘엔 노르께한 알갱이들이 마치 축포의 흔적처럼 흩어져 내렸다. 나는 멍히 하늘에 눈을 꽂아 두었다. 하늘에 흩날리는 알갱이, 노란 알갱이들.
얼추 한 가마니 턱이나 될까, 두 싸움꾼의 손에서 놀아난 나락은 논바닥에 노랗게 드러누웠다. 가을걷이 초꼬슴에 벌린 푸짐한 나락 싸움 한 판이었다.

두 자매의 싸움질은 탈곡장 마당 사람들의 혼을 죄다 뺏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모부도, 아버지도 맥을 놓고 멍히 서 있기만 했다. 아무도 뜯어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먼저 지친 쪽은 이모였다. 치마를 뒤집어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엄마는 훌훌 옷을 털어대다간 머릿수건을 고쳐 쓰고 논두렁을 밟아 나갔다. 결국, 탈곡기는 우리 집 텃논인 구렁논으로 옮겨졌다. 벼 거스러미를 쓸어 담던, 알곡자루를 추스르는, 타작마당의 그 일꾼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왜 가져왔느냐, 라고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제 할 일에만 빠져 있을 뿐, 마치 음아증 환자들처럼 소리 없이 손길만 바빴다.
그날, 달은 높은 하늘에 둥실 떠올랐다. 여름 내내 무겁게 머금었던 습기를 걷어낸 가벼운 차림의 달, 그런 밤이면 마치 그 달빛에 부림 당한 듯 계집아이들은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 나왔다. 온 낮을 볏짚 나르기에 바친 피곤을 숨바꼭질 놀이로 풀어냈다. 숨서리 조짐이 보일세라, 농사꾼은 가을걷이에 손길이 바빠졌다. 여름 내내 찌는 더위를 잘 이겨낸 보람의 축제, 사람들 얼굴엔 황금들판이 안겨 준 풍요로움이 넉넉했다. 뱃속이 따뜻해지면 맘도 너그러워지는 걸까, 가을철이면 사소한 시빗거리도 물러가고 인심 또한 훈훈했다.   

먼지를 털어낸 불퉁 탈곡기가 삼터 너른 마당으로 옮겨졌다. 그 곳에서 덕재 아제네 나락을 털고 나면 당연히 구렁 논배미로 옮겨 올 터였다. 늦은 점심을 논두렁에서 먹으며 엄마가 기다린 탈곡기는 엉뚱한 데로 실려 가고 말았다. 그곳이 이모네 돌밖들 논이 아니었더라면 엄마의 노여움은 덜 했을지 모른다. 내막을 알아차린 엄마는 들길을 한달음에 달려갔다. 판수 할아버지가 담아 놓은 나락 자루를 논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친 엄마의 얼굴은 가을볕 탓 이었을까, 발갛게 달아있었다. 우선 가까운 것부터 털고 가면 시간 절약이 된다는 덕제 아제의 변명 같은 건 엄마의 노여움을 잠재우는데 아무 소용없었다. 논바닥에 흩어져 내려앉은 나락 알갱이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이모가 분연히 일어섰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끌며 엄마의 패악에 이모가 또 맞방이를 들이댄  것이다. 이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엄마는 패대기친 나락을 두 손 가득 담아서 이모 면전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모 또한 다시 나락 알로 응수했다. 서로의 얼굴에 나락을 퍼부어대는 두 자매. 파란 하차지를 하고 누웠던 3개월 동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신나게 떠들어대는 건 이웃들이었다.
‘그렇다카이, 한동네로 시집오는 기 아이라캉께.’
‘누가 한 사람은 져야 판가름 나는 문제라캉께. 참 무섭다이.’ 이모가 시집온 후, 우리 집 살림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누구의 지시였을까. 덜컥 몹쓸 병에 걸린 엄마는 눈을 감기 전까지 열심히 이모를 박대했다. 자매이지만 생김이나, 손끝이 베푸는 인정이나 많은 게 달랐다. 조왕 할멈은 그런 사람만 굽어 살피는지 이모네 살림은 굴러가는 눈송이처럼 불어났다. 그럴 때도 우리 집 가산이 그 쪽으로 쏠려 간다는 뒷말이 슬금슬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어느 밤, 엄마는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에 내려 앉은 달빛에 넋을 놓고 있었다. 인영아 조기 좀 봐라이. 반짝반짝 빛을 내는 거 있제? 조게 서리 별이라는 기다. 힘없는 엄마의 눈빛에 꽂힌 저것들은 뭘까, 가만 눈여겨보니 마당 구석자리에 자리 잡은 서릿발 무더기였다. 달빛을 머금은 서리 기둥들이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옴마 젊었을 적에 누가 그랬어. 별, 마치 반짝이는 별 같다 고…….
누가?

 둥실 높은 달이 짚 무더기 안을 내려와 있었다. 낟알을 갓 털어낸 향긋한 볏내. 그것에 취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 안온함에 애벌레처럼 몸을 쪼그리고 누워 내 몫으로 내려앉은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 그때였 다. 자루를 머리에 이고 논바닥을 걸어가는, 기척의 정체는 엄마였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엄마, 도랑을 건너 신작로에 다다른 엄마는 자루 속을 쏟아 부었다. 이모네 널방석이었다. 늦게야 타작을 마친 이모의 나락을 널어놓은……. 엄마는 밤새 논바닥에 흩어진 나락 알갱이를 쓸어 모았던 모양이었다. 편편하게 손바닥으로 고른 후 누가 볼세라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물러가는 엄마. 불혹을 코앞에 둔 엄마, 나는 그해를 잊지 못한다.
가을걷이를 끝낸 후 엄마는 덜컥 간암에 걸리고 말았다. 어쩌면 엄마는 제 속에 든 병을 알고 있었는지 몰랐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시간은 의외로 담담했다. 언제쯤 갈까, 그렇게 심심한 우스갯말로 당신 삶을 점치곤 했다. 아무 소용없음을 알고 있던 엄마는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냥 편안하게 집에서 유하다 가고싶다 했다. 엄마의 마지막 치유 기간이 결코 편했던 건 아니지만 평생 밭머리쉼조차 인색했던, 그 농사일에 손 한 번 제대로 놓아보지 않은 엄마였다. 방안에서 누워 있는 것이 삶의 말미에서나마 엄마가 누린 마지막 호사였을 것이었다. <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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