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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③] '엄마의 서리별'<4>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엄마가 그렇게 구들막 차지를 하고 누웠던 3개월 동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신나게 떠들어대는 건 이웃들이었다 ‘그렇다카이, 한동네로 시집오는기 아이라캉께.’ ‘누가 한 사람은 져야 판가름 나는 문제라캉께. 참 무섭다이.’ 이모가 시집온 후, 우리 집 살림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을

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누구의 지시였을까. 덜컥 몹쓸 병에 걸린 엄마는 눈을 감기 전까지 열심히 이모를 박대했다.자매이지만 생김이나, 손끝이 베푸는 인정이나 많은 게 달랐다. 조왕 할멈은 그런 사람만 굽어 살피는지 이모네 살림은 굴러가는 눈송이처럼 불어났다. 그럴 때도 우리 집 가산이 그 쪽으로 쓸려간다는 뒷말이 슬금슬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어느 밤, 엄마는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에 내려 앉은 달빛에 넋을 놓고 있었다. 인영아 조기 좀 봐라이. 반짝반짝 빛을 내는 거 있제? 조게 서리별이라는 기다. 힘없는 엄마의 눈빛에 꽂힌 저것들은 뭘까, 가만 눈여겨보니 마당 구석자리에 자리 잡은 서릿발 무더기였다. 달빛을 머금은 서리 기둥들이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옴마 젊었을 적에 누가 그랬어. 별, 마치 반짝이는 별 같다 고…….
누가?
대답 없는 엄마의 눈가가 슬며시 젖어드는가 싶었다.  결국 엄마는 며칠 후 세상을 버렸다. 엄마의 상여가 샌치골로 오르던 날, 진눈깨비는 하염없이 흩날렸다. 아버진 망연자실 마루에 앉아 엄마의 상여 길을 지켜볼 뿐이었다. 엄마가 없는, 튼실하지 못한 아버지의 몸은 온갖 앓음 자랑만 하다 생을 마무리했다. 아버지의 그 짜증을 받아냈던 그 기간들이 내 인생의 지옥이 아니었던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숯쟁이 아들 정수가 우체국 직원으로 발령을 받은 후였다. 일정 한 수입을 보장 받은 그가 제일 먼저 계획한 건 결혼이었다. 왜 그 렇게 결혼을 서둘렀는지, 그의 속을  아직도 가늠할 수 없다. 과연 결혼을 꺼낼 만큼 서로에게 사랑 같은 게 충분히 존재했었는지, 보내버린 그 아득한 세월은 지금도 함부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로 서성인다. 해가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내던 오후였다. 그가 우리 집 마당에 꿇어앉았다.  병약한 아버지에게 어디 그런 힘이 남아있었던지, 아버진 자신의 손에다 온 노여움을 다 실어 들였다. 결국 찬물 한 양푼을 둘러 쓰고 사립짝을 밀고 나가던 그의 등, 그 늦은 오후의 한 장면이 화인처럼 내 맘속에 지금도 박혀 있다.

산소는 말끔히 성묘가 되어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8월 말 쯤이면 해마다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각지에 퍼져 있는 일가 붙이들을 불러 내렸다. 100여 분이 넘는 종가의 성묘행사는 인력이며 경비가 여간 드는 게 아니었다. 성묘는 일 년 중 집안의 엄숙한 행사였고 자격과 의무 또한 냉엄했다. 양씨 성을 지닌 모든 남자들에겐 일정한 금액을 할당하는가 하면, 장남들의 책임 비용은 그 보담 웃돌았다. 나는 해마다 약간의 금액을 사촌의 통장에 입금시키는 걸로 슬쩍 책임을 대신했다. 그랬어도 고향이란 게 눈에 아물거리면 그 핑계로 가끔 얼굴을 보이는 적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드물었다.
“엄마, 막내 이모 만났우? 지금 또 머리채 잡고 싸울 참이지?” 남편은 동네 슈퍼에서 사온 막걸리와 명태포를 비닐 접시에 담아내는 중이었다.
 “또 무슨 실없는 소릴 시작하려구.”
남편이 눈을 찡긋하며 미리 내 입을 막았다. 동짓날이었던가. 그래 맞다, 내가 입학할 중학교에 임시 소집을 마치고 온 그해 동짓날이었다. 엄마의 가마솥에선 새끼들 먹일 팥 죽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부엌 아궁이 앞에 길 건너 집, 춘자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엄마와 이모의 분쟁에는 말전주 꾼 춘자 엄마가 늘 약방 감초로 끼어들었다. 마침 그때 이모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쌍심지가 한껏 돋우어진 엄마가 팥죽 한 바가지를 퍼내었다. 그래도 피붙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그 팥죽은 이모의 면전이 아닌 등짝에 나가 떨어졌다. 이모의 앙고라 스웨터에는 주르르 흘러내린 팥죽이 김을 게워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이모의 그 얼굴이 라니.
“야 이년아, 설마 니 돈 떼 묵을까봐, 입방정을 그렇게 떨고 댕기 나. 나가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니 돈 안 떼묵는다. 니 겉은 년이나 도둑질을 하지.”
“성아, 무슨 말이고?”
“점순네한테 니가 뭐라캤노? 뭐 내 살림이 쪼그랑바가지 되었다 꼬? 그래 우리 그 바가지 맹크로 폭삭 쪼그라 들었다. 누구 땜시 이리 된 줄 아니? 다 니 땜시다. 알기나 아나? 넘우 나막신이나 신고 다니는 년이 입만 살아 갖고는…….”
슬그머니 춘자 엄마가 부엌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엄마는 그날 아침 절대 안 떼먹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그 돈을 갚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하는 일마다 덜어 먹기만 했던 아버지는 그 후 몇 번인가 더 이모부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눈 아래 누레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마음 스산한 날, 이곳에 올라오면 바다 위엔 까치놀이 반짝이곤 했었다. 숯장수 아들, 정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보냈을 때였다. 하염없이 무덤가에 앉아있던 그날에도 바다 위를 노는 까치놀은 무심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그해 겨울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보란듯이 아버지 무덤 앞에서 청첩장을 태웠다. 내 눈앞의 젖은 일렁임이 그의 흔적인지, 까치놀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희망 같은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그렇게 중얼거렸던가.
“그만 내려가자.”
남편이 엉덩이에 붙은 검불을 털어내며 일어섰다.이모가 누워있는 영안실은 혼사 집처럼 붐볐다. 아직 세상을 살고 있는 어른, 그리고 자라나 훌쩍 어른이 된 내 아래 세대들이 다 모여 조그만 고향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섬에 내려오면 우선 마주치는 사람들의 말투에 안도의 숨을 쉬곤 한다. 맘 한 쪽 어디엔가 꼭꼭 숨겨 둔 내 유년의 언어를 함부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그 편안함이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고향 말은 언제나 살짝 그런 그리움을 건드리곤 달아난다.  조문을 하기도 전에 인사치레에 시간을 제법 빼앗겼다. 보다 못 한 남편은 이모가 환히 웃고 있는 곳으로 내 팔을 끌어당겼다. 언제 마련해둔 영정사진인지 이모의 얼굴엔 주름살 하나 비치지 않았다. 사진 속의 이모가 엉거주춤 자리를 불편해 하는 날 빤히 바라보았다. 
“왔더나, 수월한 길도 아일긴데?”
능포 이모였다. 어린 날 엄마 또래로 살았던 능포 이모는 제 피붙이 보다 더 엄마와 허물없이 속을 터놓던 사촌지간이었다. 여든을 넘긴 세월이 얹혀 있는 이모의 거동은 불편해 보였지만 정신은 말짱하게 간수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모, 저승 가서 새름 이모는 지금도 엄마랑 싸우실까?” “몹쓸 것 그기 그리 궁금하더나?” 쿡, 웃음을 터뜨리는 내 볼을 살짝 꼬집어 당기며 이모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렁저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제.”
“이모, 이유는 다 소문났잖아요. 한동네 시집 온 거.” “니는 아즉 그것밖에는 아는 기 없제?”
그것밖이라니. 이모 말은 뜻밖이었다. 솔깃해진 난 이모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제가 모르는 뭐가 또 있었어요?” “그라모, 있고 말고.”
그날, 초상집에서 풀어헤친 이모의 이야기는 퍽 파격적이었다. 잘 생기고, 온화했던,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빌려주기만 하던 이모부가 엄마의 첫사랑이었다는, 읍내 사무소에서 서기로 있던 이모부는 엄마의 마음도 얻어냈지만 완고한 외할아버지의 신분타령 때문에 결혼 허락이 미루적미루적 배를 내미는 사이에 이모가 일을 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모부를 혼자서 맘먹었던 니 이모가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 에…….”
“선수라니요?”
“아 요것아, 나이는 헛먹었나. 남녀 사이에 사고를 이모가 먼저 친 기라. 말하자몬 사람 도둑질을 너그 이모가 한 기제. 아마도 너 그 이모부가 사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술을 먹었거나 아니몬 구신한테 홀맀던 모양이제. 아무튼 간에 그리 되 뿐기라. 그러니 어쩔끼고. 외할아버지 맘이 급해졌제. 엄마는 얼른얼른 중신애비 앞세워 먼저 출가시키고…….”
“아, 그 시절에도 그런 사건이?”
“야는 뭔 소리를 하노. 그 시절이라니, 우리는 연애질 몬한 줄 알 았나. 그라몬 춘향이 이도령 이바구는 뭐신데?” 
“그렇도록 완고하신 외할아버지 난리 나셨겠네요.”
“하모, 쉬쉬함서로 그런 난리가 없었던 기라. 더구나 너그매(엄 마) 맘은 어쨌을 낀가 생각을 해 봐라. 너그매 마이도 울었다 아이가. 너그 외할배 그 성질에 소문 무서바서 잠이나 올키 잤겄나. 부랴부랴 결혼식은 올려 줬는데 한동안 외갓집에 너그 이모부는 발도 몬 내밀었다 카이. 그래갖고 한동네로 너그 이모가 들어 왔응께 너그매가 배미나 기가 찼겄나 말이다. 속이 많이 상했겄제.”

엄마와 이모의 비밀스런 투쟁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난 괜스레 입가로 미어져 나오려는 웃음기 때문 에 혼이 났다.
“그 사람이었수, 엄마의 서리별이 말예요? 그래서 이모를 그렇게 도둑년이라며 구박했나 보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도 히죽히죽 주책없이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가슴에 맺힌 사랑을 이모에게 분풀이로 훌닦았다니, 늘 열패감으로 살았을 엄마. 비밀한 가슴 한쪽에 담 아둔 엄마의 사랑이 가여우면서 살짝 귀엽기도 했다.
“이모 돌아가시고 나니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모양이지,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초록선일랑 아랑곳없이 FM 라디오 음악을 흥얼거리던 남편이 힐끗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다음 작품 '영목항'으로 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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