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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81]윤윤주-'이끼'(문동 폭포에서) ▲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원/거농문화예술원실장/동아대서양화전공/대한민국미술대전전통미술공예특선

「금요거제시조選-81」

     이     끼
   -문동 폭포에서-                      









    윤 윤 주

하늘 길 열고 섰는
운문폭(雲門瀑) 바위벽에

음각되어 꿈틀대는
승천 못한 용 한 마리

뜨거운 눈물은 끝내
못을 이뤄 놓았네.

 

암벽을 내리닫는
굉음은 골을 찢고

물줄기 살짝 비켜
납작이 숨 고르며

하늘을 당기고 웃는
모질고도 질긴 이끼.


굽다란 산길 가면
추억도 따라 걷고

살갗은 거칠어도
속정은 다감한 나

順命은 곱고 고아라
너를 닮아 살련다.

시인 상세 프로필

▲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원/거농문화예술원실장/동아대서양화전공/제39회대한민국미술대전전통미술공예특선/제46회부산미술대전문인화특선/제43회경상남도미술대전문인화입선/제21회대한민국여성미술구상대전문인화특선/제47회부산미술대전특선/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원

◎  난정서(蘭亭叙) · 1
당 태종(太宗)은 당(唐) 제국(帝國)을 세운 창업주이며 중국사 최고의 명군으로 그의 치세를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하여 높이 평가 되고 있다. 이런 당 태종이련만 우리나라에서는 애민덕치(愛民德治)의 영주(英主)보다는 고구려 원정에서 양만춘(楊萬春)에게 일패도지(一敗塗地)한 가련한 대제(大帝)로 기억되고 있다.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된 영화 「안시성」에서도 그는 알려진 대로 가련한 대제였다.

당 태종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열애하고 그 자신도 서예로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는 천하에 왕희지의 서(書)를 구하여 그의 필적이면 단간영묵(斷簡零墨)일지라도 극히 아끼고 사랑하였다. 하물며 천하명적(天下明跡) 난정서(蘭亭叙)에 있어서랴. 태종은 그 권력과 지략을 다하여 난정서의 행방을 찾고 그것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렇다면 난정서(蘭亭叙)가 어떤 글씨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사람은 왕희지다. 왕희지는 부귀영화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오직 필묵을 벗 삼아 그 글씨는 세상의 온갖 찬사를 다 바쳐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신필(神筆)로 추앙 받고 있다. 해서(楷書) · 행서(行書) 어느 하나도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특히 그의 난정서는 ‘행서(行書)의 용(龍)’이라 일컬어지는 천하의 명필이다. 난정(蘭亭)은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서 약 40리 떨어진 난저산(蘭渚山)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한·중·일 서예계에 널리 알려진 곳이다.난정은 그 주변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 아지비(鵝池碑), 곡수류상(曲水流觴), 난정어비(蘭亭御碑), 왕우군사(王右軍祠)등이 유명하다. 특히 난정어비의 전면에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필적으로 난정서의 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유적들은 하나같이 왕희지와 관계가 있다.

동진(東晉)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353) 3월3일에 당시 그곳 회계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왕희지를 비롯하여 손작(孫綽) · 사안(謝安)등 당시의 명사 42인이 모여 수계사(修契事)를 행하고는 곡수류상(曲水流觴)을 베풀었는데, 이 모임을 난정회(蘭亭會), 이때 지은 시 묶음을 난정첩(蘭亭帖) 이라 했다. 이 난정첩의 서문이 난정서 이다. 난정서는 유명세만큼 이름도 많다. 본래의 이름은 난정집서(蘭亭集序) 였으나 난정기(蘭亭記), 난정서(蘭亭序), 난정서(蘭亭叙) 등으로 불리었다.
 
수계(修契)는 부정한 것을 떨어버리는 3월3일 날 하는 물놀이며 곡수류상은 삼짇날 이리저리 구부려져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놓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놀이다. 왕희지는 서문(序文)을 썼다. 한번 붓을 잡으니, 그 필세는 미풍에 이는 잔잔한 파도와 같고, 천길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같았다. 그는 신필이 움직이는 대로 28行 324字를 단숨에 써내려갔으니, 이것이 저 유명한 난정서(蘭亭叙)이다.
 
술이 깨고 난 뒤, ‘그 자신도 이게 과연 사람의 필적인가 하고 놀랐다’하며 다시 몇 번을 되써보았으나, 그 오묘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 글은 왕희지가 서수필(鼠鬚筆 ·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로 잠견지(蠶絹祇)에 쓴 글씨로 더욱 유명하다.난정서는 왕희지의 문장 중 가장 뛰어난 문장이라 한다. 이 글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인생을 즐기면서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을 슬퍼하는 마음이 통절히 표현된 명문이다.

 「병가(甁歌)」 에 조선 중기 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 의 작품이 실려 있다
    말 없는 靑山이요  態없는  流水로다
    값 없는 淸風이요 임자 없는 明月이라
    이 중에 일 없는 내 몸이 分別없이 늙으리라.

조선 선조 때 참찬관을 지낸 우계 성혼은 학덕이 높았던 선비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이 시가에 나타난 그 웅혼한 시 정신도 비 개어 티 없이 맑아진 산하를 보듯 한점 티끌이 없는 탈속한 경지이다. 이 중에 일 없는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란다.이런 경지가 난정서에서의 왕희지와 맥락이 같은 경지라 여겨진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시조 작품 〈이끼〉는 ‘문동폭포에서’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문동폭포의 벼랑에 붙어 있는 이끼를 두고 윤윤주 시인이 3수 연작으로 읊었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운동하러 자주 가는 문동폭포입니다. 폭포를 마주하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용의 형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용의 형상은 어느 사이에 암벽 구석구석을 습관처럼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즐거움 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끼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그 모질고도 질긴 생명력은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끼의 삶은 가뭄에 말라비틀어지고 장마엔 파랗게 피어남은 어질 디 어진 順命 이었습니다. 그 순명을 닮고 싶었습니다.

 문동폭포를 운문폭(雲門瀑)이라 불렀다. 그 물줄기가 마치 구름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하늘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쉼 없는 물줄기는 웅덩이를 만들었다. 용소(龍沼)라는 웅덩이다. 용소는 마음을 맑게 한다고 하여 성심천(醒心泉)또는 신청담(神淸潭)이라 했다.
 예전엔 문동폭포 일대를 소요동(逍遙洞)이라 이름 했는데, 소요는 마음을 속세간(俗世間) 밖에 유람함을 일컫는다. 
 소요동이라 이름 붙인 이들은 유배객 이었다.
 1504년인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어머니인 폐비윤씨의 복위에 반대한 선비들을 처형하고 귀양 보낸 사건이다. 이때 유배를 왔던 선비 중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과 용재(容齋) 이행(李荇)이 문동폭포를 두고 20여 편의 시를 주고받으며 고난 한 유배의 시름을 달랬던 곳이다.
 다음은 최숙생의 운문폭(雲門瀑)이란 시다.

   長釼倚半天 (장인의반천) 긴 칼이 공중에 기댄 듯
   白日雷雨顚 (백일뢰우전) 맑은 날에 우레와 비 쏟아지네
   始到雲門上 (시도운문상) 운문 위로 처음 와서
   分明看飛川 (분명간비천) 날아 내리는 냇물을 분명히 보았노라

 최숙생은 조선전기 문신으로 대사헌, 우찬성, 판중추부사를 역임했다. 그의 유배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지금부터 500여 년 전의 문동폭포, 그 주변을 소요동이라 이름 붙인 선인들의 정취를 어림으로 그려본다.

내리쏟는 물줄기가 구름문을 연다기에 마주한 문동폭포,/ 하늘 길 열고 섰는 운문폭 바위벽에 / 용 한 마리가 음각되어 있다. 승천 못한 용 한 마리다./ 그 좌절의 / 뜨거운 눈물은 끝내 못을 이뤄 놓았다./ 그 못은 용소다. 옥같이 희고 마음을 맑게 한다고 하여 성심천(醒心泉)이라 이름한 용소다.
암벽을 내리닫는 폭포의 / 굉음은 골을 찢고 / 있다. 그 / 물줄기를 살짝 비켜/ 바위 한 켠에 / 납작이 숨 고르며 / 자세를 가다듬는 이끼다. 시인은 이 이끼를 두고/ 하늘을 당기고 웃는 모질고도 질긴 이끼 / 라 했다. 하늘을 당긴다는 표현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 굽다란 산길가면 추억도 따라 걷는다./ 걷다 살펴본 내 살갗이 거칠어 보인다. 순탄치 아니한 삶이었나 보다. 그렇긴 하나 깊은 속정은 다감하다고 자위한다.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주어진 대로 죽는 것이 곧 순명이다.
모질고도 질긴 이끼에서 시인은 順命을 보았지 싶다./ 順命은 곱고 고아라 너를 닮아 살련다/ 하고 다짐한다.
문득, 조지훈 선생의 글귀가 생각난다.
“돌의 맛 - 그것도 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眞髓)를 얻었달 수가 없다.”
하늘을 당기고 웃는 모질고도 질긴 이끼, 그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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