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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④] '영목항'<1>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④영목항
 

겨울이 끝나려는가 싶은 어느 날 오후였다. 밤새 내린 눈 위로 햇살은 맑아서 눈이 부시었다. 그 눈 덮인 배경과 햇살을 등뒤에 새워두고 남편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채색한 지 오래 되어 마치 마른버짐 자국처럼 희슥희슥한, 남편이 늘 못마땅해 했던 나무 대 문이었다. 이혼하고 떠난 후 10년 만에 보는 남편 모습이었다. “나야!” 베이스를 조금 웃도는 음성으로 남편은 마치 퇴근길처럼 인터폰 속에다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맞는 아내처럼 천천히 걸어 나가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빗장을 풀었다 그 익숙한 손놀림에 나 자신도 움찔 놀랐다. 털이 달린 모자에 얼굴이 묻힌 남편은 마치 에스키모인 같았다. 대문 앞에서 잠시, 아주 잠시이지만 멍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 로 우리는 간단한 인사치레를 대신했다.
남편은 눈 속에 파묻힌 돌을 정확하게 찾아 밟고 현관을 향해 걸었다. 나는 퇴근하는 남편의 시중을 들듯 그의 뒤를 다소곳이 따라 현관문을 들어섰다. 그 역시 너무 익숙한 행동으로 벗은 신발을 발놀림으로 정리했고 미닫이 유리문을 밀어내어 마루로 올라섰다. 마루에 들어서자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고, 그런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얇은 눈두덩이 사정없이 몰아낸 눈동자, 안경 없는 모습은 마치 그의 벗은 몸을 보듯 부담스러웠다. 모두 그 대로였다. 신발을 발로 정리하는 것도, 들어서면 안경부터 닦는 남편의 버릇들이. 그는 휘, 집안을 일별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다녀온 거실은 어찌된 셈인지 10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를 바 없는 그 거실이 내 시야엔 무척 생소한 광경으로 펼쳐졌다.

이런저런 일에 들락거린 그릇들이 정물처럼 제 자리를 엄숙하게 지키는 찬장, 그 위를 소형 망원경이 마루를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었다. 현관문 옆 관음죽은 키가 좀 자랐을 뿐, 붉고 긴 원통 화분에 뿌리를 틀고 있는 모습은 예전이나 다름없었다. 그 관음죽은 막 발아를 시작한 어린 나무였을 적에 남편이 들고 온 것이었다. 반투명 유리 창 속에 그려진 대나무 무늬 사이로 빠져나온 햇살이 마루에 힘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남편은 그 햇살 무늬를 밟고 멀거니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집안에 남편은 잠시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남편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거실에 미안하기도, 좀 부끄럽기까지 했다. 왠지 그에게 보여줄 게 이 것뿐이라는 초라함, 가슴 밑에서 약간의 열패감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던 남편은 세 번째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삐거덕, 남편은 그 소리를 들어보려는 듯 계단에서 다시 걸음질을 했다. 삐거덕, 남편의 발놀림이 또 다시 소리를 만들어 내었 다. 그 소리도 옛날 그대로였다. 화실이 있는 2층으로 살금살금 올라 가는 남편의 늦은 귀가를 제대로 숨겨주지 못하던 계단소리 였다. 신기한 듯, 아니면 그 옛날이 다시 생각난 듯, 남편은 잠시 그 계단에서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그가 걸어둔 그림이 그 자 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맨머리의 그 남자는 몸을 비틀며 두 손으로 입을 모아 소리지르는 중이었고, 뒤의 배경이 단호하게 생략된 그림이었다. 남편은 붉게 칠해진 배경 속에 ‘뭉크의 절규를 흉내 내다’라는 글까지 삽입했다. 뭘 그렇게 부르짖고 싶었던겔까, 유령 같은 남자를 빌려 남편은 어떤 절규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림을 두고 계단으로 내려 오는 밤이면 남자의 고함 소리가 내 등을 낚아채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림도 남편을 기다린 듯 변함없이 마주보고 있었다.

남편은 그림 가까이에 다가가 손으로 쓸어내리다간 지그시 바라보기도 했다. 붉은 물결 같은 강렬한 노을이 배경의 전부인, 다리 위의 남자는 어제도 그랬고, 아니 그 옛날에도 그랬듯이 동그랗게 모은 입으로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던 남편은 등을 돌렸다. 2층으로 올라간 그는 화실 문을 열기 전 방문과 직각을 이루는 화장실 문도 살펴보았다. 문고리를 잡아당기기도 베니어판을 툭툭 두드려 보기도 했다.
화실 문을 열었다. 문 안에서 냄새들이 몰려 나왔다. 가끔 통풍 을 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름 지을 수 없는 야릇한 곰팡내가 늘 문 앞을 서성였다. 남편은 비켜서서 그 냄새가 빠져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멍히 선 채로 미리 방안을 살펴보는가 싶었다. 너무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화실 앞에서 남편은 말문을 잃은 듯 했다. 보존하려고 애를 쓴 건 아니었다. 나는 단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남편은 그런 내 뜻을 알았을까, 어쩌면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암말 않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제 흔적을 추스르기 위해 먼 길 달려 온 그의 맘에 훼방 놓고 싶지 않았다. 화실은 옛날처럼 심하게 어질러 있었다. 굳어버린 유화 물감, 부러진 콩테 조각, 나이프들이 화구 사이를 함부로 흩어져 있는가 하면, 넘어진 이젤에는 그리다 만 그림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마치 어제 마친 작업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유리창 앞에 서서 서쪽 하늘을 응시했다. 남편은 그 서쪽 하늘에서 잠깐 자신이 앓았던 상처 한 자락을 찾아내는지 몰랐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에 습관처럼 주눅이 들었다.

이 집을 지을 때 남편과의 마찰이 많았다. 물론 집을 지을 때 뿐 만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유난히 생각의 방향이 달랐다. 어느 한 쪽을 결정짓기 위해 상대의 상처는 감수해야만 했다. 노을을 좋아하는 나는 서향의 집을 원했고, 남편은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남향을 고집했다. 남편은 집을 지을 때만은 순순히 고집을 꺾었다.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짓는 집 때문이었을까, 자존심 강한 마음에 누룽지처럼 눌러 앉는 그의 상처를 눈치 채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두고 갔던 물건들을 뒤져내기 시작했다. 책상 서랍 속의 졸업장이며 사진첩 등, 성장의 흔적에 관한 것이라든가, 그려 둔 그림들을 분류하기도 했다. 십 년 만에 찾아온 남편은 마치 보관증으로 물건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수첩에 적힌 것을 일일이 확인하며 포장을 했다. 그러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나이 먹는 세월을 피해다닌 듯, 50의 중반이라기엔 너무나 젊어 보였다. 십 년 전의 얼굴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듯한, 어쩌면 떠날 때보다 훨씬 더 활기차 보이는 것 같았다. 세월을 쓸어안고 충실하게 나이를 먹은 건 내 얼굴뿐이었다. 남편을 보는 내 맘은 의외로 담담했고 별로 노여움이 일지 않았다. 수첩에서 빠진 것들을 찾아주기도, 먼지 묻은 것들은 깨끗이 닦아주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찾아낸 것들을 챙겨 넣기도, 혹은 필요 없다는 말로 제자리에 갖다놓기도 했다. 거실 장식장 속의 화병을 꺼낼 때는 내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내가 가져가도 될까, 하는 말로……. 지금은 작고했지만 어느 시인이 손수 써넣은 시와 남편의 그림으로 빚어 구운 도자기였다. 나는 암말 없이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모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의 맘에 뿌리 내린 피해 의식을 조금이나마 걷어내어 주고 싶었다. 그런 자잘한 물건들이 남편의 맘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테지만 그렇게 해야만 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남편 또한 피해자이다, 그 생각은 내 맘을 관대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돈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이내 뱉어버린 그 말에 후회를 했다. 남편에 대한 오랜 습관 때문이었다.

10년이란 텅 빈 세월이 있었지만 불쑥 튀어 나온 그 습관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남편은 위자료를 넉넉히 받은 이혼녀와 재혼 했고, 그 여자의 가족이 모여 사는 호주로 떠났으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큰 슈퍼마켓을 경영한다고 했다. 물론 잘 산다는 말이 내 맘 어느 자락을 아프게 건드렸지만. 예상대로 남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돈에 대해 고개를 내 젓는 남편의 모습은 생소했다. 용돈있어요, 하고 물으면 한 번도 내쳐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그런 모습에 익숙했던 세월이 고개를 내밀었던 모양이다, 나는 낯선 남편의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편이 짐을 다 챙겼을 적에는 이미 저녁을 다 넘긴 때였다. 저녁밥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나를 눈치 챘는지 꾸려놓은 짐을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내일 다시 와서 가져 갈게. 남편은 그 말을 뱉고는 계단을 내려섰다. 중간쯤의 계단에 서서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우윳빛 불빛에 잠긴 남자의 부르짖음은 더 애절하게 들 리는 것 같았다. 여전히 마지막 세 번째 계단에서 남편은 삐거덕, 소리를 잊지 않고 들려주었다.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가, 새벽이면 조심조심 2층을 올라가는 남편의 발자국을 전혀 도와주지 않던 저 삐걱거림. 현관문을 나선 그는 눈 속에 반쯤 묻힌 돌을 징검징검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대문을 열다 말고 윗집 할머니 집을 올려다보았다. 돌아가셨어.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던 남편은 눈이 수북한 뜰로 내려섰다. 그는 눈을 둘러쓰고 있는 키 작은 회양목 가지에 손 가락을 벌려 빗질을 했다. 그의 손 사이로 눈송이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다간 앞 다투어 피어내던 장미 울타리 앞에서 암말 없이 한참이나 서 있었다. 할머니 집과의 비상구가 있던 언덕진 담에 눈을 주기도 했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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