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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④] '영목항'<2>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④영목항

비상구를 가려주던 탱자나무 가지가 없어진 걸 보며 할머니 집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대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내일 아침엔 임진각을 좀 다녀올까 해, 하고. 임진각은 남편 가족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화장한 그 의 어머니 주검도 임진각 근처에 뿌려 주었다. 임진각에서의 남편 가족들은 비온 뒤 화초처럼 생기가 돋아나곤 했다. 두고 온 부모 형제에 대한 죄송함,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이런 고통들은 그들의 선천적인 지병이었다. 처절한 상처들이 가슴 깊이 자극하듯, 그들에게 잠깐 살아나는 생기는 어쩜 착색된 그들만의 고통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가장 맛있는 것들을 조금씩 떼 내어 깨끗한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잘 싸서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북쪽을 향해 던지곤 했다. 북쪽에 대한 기억 하나 없는 남편도 임진각에 서면 생생한 아픔으로 연기하곤 했다. 결국 아픔은 바이러스처럼 감염  성질도 지닌 모양이었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남편은 짐을 가지러 왔다. 전화번호가 적힌 영문의 명함과 그림엽서 두 장을 식탁 위에 얹어두며 말했다.
“당신이 보고 싶어 했던 곳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래. 물론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이지만.”
엽서 속의 그림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피너클 사막이었다. 산호가 부서진 흰모래로 거대한 사구를 이루는 사막, 그 한가운데 석회암 돌기둥으로 우뚝 솟은 피너클이었다.
 피너클은 수시로 색깔이 변한다고 했다. 구름이 햇빛을 가리면 잿빛, 직사광선이 내리 쬐면 황금빛으로, 석양을 받을 때쯤이면 주황색 몸을 둘러쓴다고, 오래전 남편이
말해 주었다. 가고 싶다고 말했던가, 그 기억을 더듬으며 남편이 두고 간 엽서에 눈을 빠뜨렸다. 피너클을 둘러쓴 몸빛은 온통 주황색이었고, 남편의 말대로라면 일몰의 시점에서 앵글을 맞춘게 틀림없었다. 오페라 하우스는 그에 반해 푸른 바다에 눈부시도록 흰 날개를 젓는 아름드리 큰 새 같았다. 그 앞 바 다엔 유람선 한 척이 흰 물결을 앞세우며 달려가고 있었다. 남편이 짐을 챙겨 떠난 후 2층으로 올라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방이었다. 버릴 것과 그냥 둬도 괜찮을 것들을 양쪽에 편 가르듯이 구분지어 놓았다. 버려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진 느낌의 왼쪽에는 그리다 만 그림이며 말라버린 물감, 거의가 남편이 쓰던 화구들이었다.

그 맨 아래엔 곰팡이 자국처럼 희끗희끗해진 걸레까지 드러누워 있었다. 남편은 책상 위에 사진 한 장을 얹어 두었다. 마치 제 책상 위에 제 물건을 두듯 자연스럽게…….
젊은 여자 에게서 얻은 아이 사진이었다. 눈이 큰, 마치 혼혈아 같이 예쁜 사내 아이였다.
“왜 그 사진까지 가지고 왔대? 염장을 지르려고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라고, 초등학교 선생질밖에 못 해 먹을 인간을 공부시켜 대학교수까지 만들어 놓았더니, 뭘 핑계 될 게 없어……. 처가 재산으로 출세를 했으면 얌전히 누리고 계 실 것이지, 엉뚱한 년에게 호강 갖다 바친 꼴이니.”
“그 교수 짓도 내팽개치고 선택한 여자야.” “어쭈, 생불 났네.”
“아무렴 어때. 니 말대로 그 사람 짐 치우게 된 것만 해도 맘이 가뿐해졌다.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거 였잖니.”
“나 같으면 확, 불을 질러 버린다. 빙충이 같이 속만 좋아가지고 서는.”
매사에 너그러운 영조지만 유독 남편에게만 혼자씨름으로 몰아 붙이곤 했다. 남편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영조가 골을 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맘은 의외로 담담했다. 별로 노여움이 일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대처했던 나는 남편이 떠난 그 후 무력증에 시달렸다. 힘이 모두 빠져나가 마치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증세를 벗어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은 없다. 단지 절망의 늪에 빠져 그들이 원하는 것만큼 허우적여 주어야만 한다. 그 유별난 무력증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 힘을 얻어내는, 어쩌면 그런 의식인지 모른다. 절대로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단호한 방법일지도.

영조가 졸라대기 시작한 건 그 무력증이 꼬리를 보일 때 쯤이었다. 태안반도의 끝이라고 했다. 영목항이라는 그 이름을 앞세우며 바람 쐬러 가자는 영조의 말에 지난 봄, 은행장으로 승진한 그녀 남편도 후원했고, 이틀 동안의 일상 탈출이 목표로 정해졌다. 영목항은 열 장이 넘는 그 일정표 제일 끄트머리에 붙어 있었다.
 ‘안면도 제일 땅 끝에 차지하고 있어 대천의 여러 섬을 구경할 수가 있다. 신선한 해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가 있으며 횟집, 낚시, 민박집도 밀집해 있어 하룻밤을 쉬며 땅 끝의 빼어난 경관을 구경할 수가 있다.’
섬이 두엇 보이는 바다 위의 고깃배 한 척과 엉덩이에 하얀 물꽃을 매단 유람선, 여느 바다와 다를 것 없는 사진 밑에는 그런 글이 씌어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 마지막 장의 사진과 글을 번갈아 보며 읽고 또 읽었다. 영목항,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그도 아니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포구……. 그 막연함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꽃지 해수욕장의 낙조는 ‘꼭’이란 말로 손톱괄호 속에 묶여 있었다. 당진읍 은행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영조 남편이 맞추어준 일정표였다. 출발시간, 도착 예정지, 숙박정보, 안면도를 둘러보며 쉴만한 길가의 간이공원까지도 사진과 함께 세세하게 실려 있었다. 별 이야기, 맑은 하늘, 하늘과 바다 사이, 추억 만들기, 까치노을, 여행 스케치 등, 예쁜 이름을 가진 숙박시설만도 B4용지 3장이었다.
― 수명을 다하고 떨어지는 해지만 눈이 부셔서 오랫동안 바라보기 힘들다. ― 
노을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인 사람들이 줄지어 선 사진 밑에는 영조 남편의 멋진 글이 관광표어처럼 적혀 있었다. 영조 남편이 안내한 일정표대로라면 영조와 나는 이원 식당에서 박속 낙지를 먹고 만리포를 향했어야만 했다. 일출과 일몰이 함께 연출된다는 왜목 마을의 파도에 너무 시간을 많이 뺏긴 탓도 있었지만 속이 먹을 것을 청하지 않았다. 파도는 왜 그렇게 기성을 부리던지, 제 성질을 다 부려대는 바람살은 바다 속을 발칵 뒤 집어 놓고 있었다. 영조는 아이처럼 허연 뉘를 따라 내려갔다간 얼른 도망쳐 달려오곤 했다.
“우리 섬도 이렇게 자주 성깔을 부리곤 했다, 그지?” “더 심했지. 사람도 자주 잡아가곤 했으니까.”
“그래, 맞다.”
원한과 두려움으로 단단하게 교직된 그 바다의 기억, 그것들과 화해를 하고 싶었던 겔까. 나는 영조가 바다 여행을 조를 때 별 갈등 없이 따라 나섰다. 성난 파도는 도무지 가라앉을 생각을 안했 다. 결국 파도 앞을 물러 나와 차 안으로 들어 왔다.
“무슨 힘으로 저렇게 넓고 깊은 바다를 뒤집어 놓을까.”
영조는 대답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듯 혼잣말로 사납고 험한 파도를 험구하면서 시디를 뒤져 피셔 디스카우의 목소리를 풀어놓
기 시작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말러의 가곡이었다. 뜨고 지는 해를 공유한 왜목 마을의 바다, 그 언저리를 슬피 돌아나가는 디스카우의 목소리에 매달아 둔 내 맘을 나는 쉬이 거두어들이 지 못했다.

“간다.”
영조가 아무런 예고 없이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갑작스런 엔진 소리에 디스카우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리는가 싶었다. 잊었던 말을 주워 담듯이 간다, 라는 말로 시동을 건 영조의 차는 스산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헤치며 꽃지 해변으로 달렸다. 꽃지 해변의 파도도 다를게 없었다. 노을을 보려는 맘에 터무니 없는 모랫바람은  뺨까지 때려댔다. 꽃박람회 때에 만원을 이루었을, 영조가 주차한 자리는 그녀의 남편이 지시해 준 낙조가 장관이라는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 사이였다. 할아비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세워둔 소나무 몇 그루를 향해 파도는 헛매질 하듯 으르렁 거렸다. 그러다간 방향을 바꾸어 산더미 같은 몸체로 차창을 때려 부수려는 듯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거 아냐?”
달려오는 파도에 움찔 겁을 집어먹던 영조가 말했다. 맹렬한 바다. 그런 바다를 참으로 오랜만에 바라보았다. 관망, 객관, 그런 말들을 마음자리에 마련해 두었지만 가슴 밑바닥 차곡차곡 쟁여져 있던 뭔가가 자꾸 뒤적질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을 건드리며 달려
드는 파도, 견디지 못해 눈을 부르르 감았다.

구름 사이로 빠져 나온 햇살이 수평선 틈새로 길게 드러눕기 시작했다. 은빛 띠로 깔린 그 바다에 눈을 빠뜨렸던 영조가 갈치 비늘 같다고 말했다. 영조 가슴이 숨겨둔, 빛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개염 부리는 하늘의 구름,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노한 파도, 그 앞을 어슬렁거리던 젊은 남녀들은 힐끗, 하늘을 살펴 본 후 노을은 어림도 없다는 듯 모두 떠났다. 파도 앞에는 영조의 차 뿐이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어리번쩍 하늘이 드러났다. 해 하나 누일만큼 몸을 비껴준 구름 때문이었다.
“세상에!”
마치 하늘에 고여 있는 우물 같았다. 그 하늘 주위로 회색구름들이 약속이나 한듯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하늘에 넋을 놓고 있던 영조가 던진 말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그 옆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의 해가 쏙, 얼굴을 내밀었다. 가만 숨을 죽였다. 함부로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잠깐의 사이에 달아나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보기가 힘들다. ―
그 노을이 연출한 시간은 잠깐이었다. 노을을 거느린 태양은 은 비늘 갈치와 함께 바다 속으로 숨고 말았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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