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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목 김주근] '마음 속에 묻어둔 고향'김주근;아호 자목/시인.수필가/신한기업(주)대표

누구나 태어난 고향이 있다.1950년 한국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난민 신세로 발길 닿는 곳에 정착을 하고,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며 고향을 이제나 저제나 가고 싶지만, 한 평생 못가고 생을 마감하신 분들도 많다. 그 나마 사진 한 두 장이라도 있으신 분은 마음에 위로가 되겠지만, 가슴 속에 고향을 묻어둔 생각의 또 다름 사진들이 많을 것이다. 고향에서 태어나서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정하고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다수가 아닐까 싶다. 특히 1951년 1.4 후퇴로 생소한 외지로 와 힘들게 살면서 모두들 고향을 그리워 했다. 같은 해 12월 23일 함흥철수작전으로 미군의 수송선이던 메리디스빅토리호에 군수물자를 하역하고, 피난민 약 14,000여명을 승선시켜 낯설고 생활여건도 다른 거제도 장승포항에 첫발을 내딛어 당시 거제도 인구수가 갑작스럽게 불어났었다. 생소한 외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이 가슴속에 엄습할 때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을 달래어 보기도 하고, 한잔 술을 천천히 채우며 두 눈 속에 담아있는 고향을 함께 술잔에 채운다. 누구에게도 쉬이 말 못하고 가슴속에 남아있는 향수를 술에 담아 마신다. 고향을 생각하면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을 훔치기도 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을 것이다.

거제도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조선소 건설로 인구수는 엄청나게 불어났고, 생업을 위해 살러 온 분들도 인구수에 보탬이 되었다. 타향살이 30년을 넘기면 제2의 고향이라고 말들을 한다. 양대 조선소에 근무하면서 가족들이 거제도에 이사를 하고, 청년으로 회사에 입사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자녀들 학교에 보내고, 결혼을 시키는 과정에서 장년이 되어, 거제시민으로 노년을 보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거제도 안에는 실향 이주민들도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그리고 구천땜건설로 고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수몰되어 반 강제로 이주한 실향민들이 생겼다. 고향은 사라졌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가경제가 발전함으로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고, 땜 건설로 시민들이 좋은 물을 마시게 되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고향은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다.이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을 보존하였더라면, 지금은 관광의 자원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승을 날렸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아 있다.어디 그 뿐인가? 거제도에는 안타까운 역사도 있다. 보육원(애광원, 성지원)이 있다. 부모도, 고향도, 기억도 없이 보육원에 입양되어 공동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성장하여,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는 소식을 주고 받는 또래의 친구나 선후배들도 있지만, 소식이 단절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J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보육원 출신의 친구들이 다수가 있었다. 졸업을 하고, 나이가 들어 동기생들이 모임을 하고 있다. 특히 보육원에서 성장한 친구들을 만나면 반가워서 손에 힘주어 악수를 하고 서로 기뻐하면서 포옹을 한다. 그 만큼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소식이 두절된 친구들은 아쉬워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고향을 떠나서 성씨가 같은 집성촌 마을도 있다. 반씨, 옥씨, 윤씨, 김씨, 황씨 등 동네가 친척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소사가 생기면, 마을 전체가 서로 도와주는 협동심을 발휘한다. 살아가면서 서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한다. 서로 예의를 갖추어 살아간다. 혹시 어려움이 발생하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그뿐인가? 진전면 이명리 마을에 괴질병(장티푸스로 추정)이 발생하여 마을 전체 사람들이 죽어가기에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할머니는 지게에 봇짐을 지고, 보따리를 머리를 이고 걸어서, 걸어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할아버지는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에 정착하였고, 고모할머니는 동부면 평지리에 여장을 풀고, 평생을 살다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묻혀 있어 묘지가 이를 증명을 하고 있다.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초등학교(1996년3월1일부터 정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로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개칭)시절, 고사리 손을 잡고, 조상 벌초를 가면서 할아버지가 거제도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귀에 익도록 듣기만 했다.아버지는 태어난 고향을 떠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조상 벌초를 마치면, 구천마을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어르신들에게 큰 절을 하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랐다. 위에 열거한 사연들 외에도 거제도에서 정착한 사연들 가슴에 안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낚시가 좋아서, 경치 좋고, 공기 좋아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바다가 좋아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 등으로...
남녀가 청춘을 불태우는 그리움은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향에의 그리움을 가슴속에 담아 한평생 향수병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21.11.10)

지금 대우조선해양이 들어서 있는 내 고향 관송,아양마을의 옛사진, 앞에 보이는 당등산이 역사를 증명하는 듯 하다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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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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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수 2021-11-16 07:31:29

    고향은 우리들 맘속에
    늘 푸근하고 정겨운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삭제

    • 코스모스 2021-11-15 10:27:04

      나이가 들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깊어진다네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리운 고향의
      행복 했던 순간 순간들을 회상에
      잠겨봅니다 ~~^^
      작가님의글 덕분인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   삭제

      • DP 2021-11-14 18:57:32

        거제에는 대형조선소가 2개 있다보니 타 지역에서
        와서 거제가 제2의 고향이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거제도 좋지만 그래도 한번씩 원 고향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고향생각 2021-11-14 15:02:15

          글을 읽으면서 내 고향 강릉이 그리워 집니다.
          거제시에도 모르는 사연들이 기사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고항을 생각하면 오빠생각 노래가사가 생각나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삭제

          • 김동문 2021-11-12 20:26:24

            저도 고향을떠나 울산에서 타지생활을 하는데...
            많이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덕분에 고향 마산을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삭제

            • 씨엠송 2021-11-12 11:25:27

              잔잔한 고향 이야기가
              글 읽는 동안 내 고향을 다녀 오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삭제

              • 백강 2021-11-12 09:43:33

                저의 외가집이 관송이라 기억을 더듬어도
                어느곳이 외가집인가 가물거립니다
                정감있게 글을 쓴 작가님의 고향이
                그려집니다   삭제

                • 이재섭 2021-11-12 09:33:47

                  거제의 역사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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