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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87]허원영-'단양주' ▲허원영:시인/낭송가/시조창가/'10년시사문단시등단/'20년현대시조등단/거제문인협회이사/청마기념사업회이사/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부회장/거제시조협회사무국장

「금요거제시조選-87」

   단양주(單釀酒)               

 

 

 

 




     허 원 영 

백세미(百洗米)로 술을 빚어 한 이레 기다린다
닷세째 숨을 막고 이레째에 술을 뜨면
달달한
단양주 향기
절로 눈이 감기네.

추수 끝난 텅 빈 들녘 잠자리 한가롭고
지나던 이웃사람 하나 둘 모여들면
인정을 
버무린 호박전
동그랗게 익는다.

어두운 시골마을 별빛만 초롱초롱
늦도록 하하호호 웃음소리 넘치더니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우는 저 귀뚜리. 

 ◎ 안목(眼目)
안목(眼目)은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사람은 모두 눈을 가졌다. 생리적인 작용이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눈이 다른데서 개성을 찾게 되고 전문을 이루게 되고 또한 효과적인 무엇을 거두게 되는 것이 아니가 한다. 뭐니 해도 안목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지 싶다. 사람의 겉을 보아서 속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겠으나,  내심의 어떤 힘이 부지불식간에 외부로 표현 되는 수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밖으로 풍기는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속 을 알아차린다는 말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보는 관찰력에 대하여 이런 일화가 전해 온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터스는 비상한 관찰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산양의 젖을 먹어 보고서 그 젖을 짜낸 양의 색깔이 희냐 검으냐를 알아 낼 정도였으니 다한 말이다.  어느 날 의사의 시조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와 같이 어떤 처녀가 그를 찾아 왔다. 그 때 데모크리터스는 그 여자를 보고 분명히 순수한 처녀라는 뜻으로 깍듯이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그 이튿날 또 그 여자를 만났는데, 데모크리터스는 그때는 ‘부인’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 하자면 어제까지는 처녀였으나 간밤에 처녀를 잃었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요 대단한 관찰력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목의 차이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빚을 때가 많다.

        육신의 단내만 송진처럼 엉겨 붙어
        눈길 밝은 우물터에도 본심은 비치지 않고
        하 많은 사람의 무리 속
        사람 하나 찾는다.

        귓결엔 산골 물소리 피가 돌아 맑은 사람
        풋 내음이 절로 감겨 숲을 닮은 그런 사람
        어디고 지나다 보면
        눈인사도 향그런 사람.

        겹겹이 드리워진 가식의 옷을 벗고
        단단한 껍질의 아집 홀연히 깨고 나온
        하늘 빛 사람의 냄새
        가감 없이 맡고 싶다.
     이상범, ‘심인(尋人)’, 전문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참살하게 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되었고, 그 후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를 시작으로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까지 지낸 한명회(韓明澮)가 불우한 환경에 있을 때, 나이 사십이 되어 비로소 송도 경덕궁직(景德宮直)이 되었다. 이 때 송도에 있는 관료들은 대개가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어느 해 오월, 단오잔치를 위하여 모두가 만월대(滿月臺)에 모여 주연을 베풀게 되었다. 비록 한명회는 이 주연에 끼기는 하였으나 고작 경덕궁 고지기에다 나이가 많아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어 한 구석에 비켜 앉아서 술이나 받아먹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인 사람들의 직위가 자기보다 위인데다가 나이가 젊은 관속들의 자리인지라 자연히 시쳇말로 왕따를 당하고 말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취흥이 무르익자, 우리는 모두 서울 사람들로서 벼슬길을 따라 이곳에 와 있으니 본시 동향지인(同鄕之人)이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끼리 계를 모아 우의를 지속하자, 앞으로 벼슬이 올라서 송도를 떠나게 되어도 서로 연락하여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주석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지켜본 한명회는 젊은 관속들의 의기투합이 몹시 부러워 그 계원이 되고자 백방으로 원했으나, 경덕궁 고지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서 “우리들이야 같은 관가에서 자주 만날 수 있어 연락이 잘 닿을 것이나 자네는 변두리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곤란하다”는 모욕적인 거절을 당하였다. 무색해진 한명회는 자리를 빠져나와 분함을 달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세상은 바뀌어 이듬해 한명회는 정난공신이 되어 일약 출세가도를 치닫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송도의 미관말직인 젊은 관속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귀하고 귀하신 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는 옛날 송도계원들은 그의 곁을 감히 가지도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지난날을 크게 후회했다. 한명회로서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모의 기억이었으리라. 그래서 뒷날 조그마한 세력을 믿고 분수를 모르고 잘난 체하며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두고 송도계원(松都契員)이라 했다.
 송도계원,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시조 작품 〈단양주〉는 허원영 시인이 백번을 씻은 백세미로 술을 빚어 이웃과 나눈 정겨운 밤 한때를 3수 연작의 시조로 읊었다. 단양주(單釀酒)는 곡물에 누룩과 물을 넣어서 한 번에 빚어서 얻는 술이다. 여기에 곡물(술덧)이 더해 질 때마다 이양주 삼양주 등으로 불리어 지고 술덧이 추가 될 때마다 좀 더 부드럽고 도수가 높은 술을 얻게 된다.

 한번만 빚어 만드는 단양주는 제조 과정이 간단하면서도 여러 번 술덧을 하는 이양주나 삼양주에 비해 술 양이 많은 것이 장점이다. 시를 쓰는가 하면 시조창을 읊고 서양화에다 사군자까지 보폭을 넓히는 허원영 시인, 머잖아 술의 명장이 되어 시우들에게 명주를 안길 것이기에 미리 마시는 김칫국 소리가 자자하다. 술을 빚는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올여름 내내 찹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었습니다. 백번을 씻어 맑은 물이 날 때까지 매일 같이 쌀을 씻다보니 왼쪽 손가락 지문이 사라졌습니다. 쌀알이 깨지면 술맛이 탁해지기에 아기 다루듯 살살 문질러야 합니다. 일주일 두 번, 김해에 술을 빚는 전문가를 찾아가 술을 빚고, 맛보고 생각들을 나눕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술 빚기인데 점점 생각이 많아지고 무거워지는 마음입니다.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쉽지가 않습니다.

술을 담을 때마다 날씨, 온도, 습도, 술과 누룩, 물의 비율을 달리해 보기도 합니다. 만든 술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평가를 받습니다. 어떤 날은 희망이 샘솟고 어떤 날은 심란 하기도 한답니다. 술 만드는 일을 제 인생 2막으로 여기고 겁 없이 달려들었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은 술 이름 하나 정하지 못 했지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열심히 해 볼 참입니다. 〈단양주〉는 그런 제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원나라 징기스칸(成吉思汗)의 손자 쿠빌라이(忽必烈)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하여 한반도에 진출한 것이 13세기인데, 그 대본영(大本營)이 개성이었고, 병참기지가 안동이며, 제주도는 전진기지였다. 이때 그들이 가지고 온 술이 고량주(高粱酒)로 옛 부터 소주하면 개성과 안동, 그리고 제주 것을 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술은 예술성을 창조한다.
위대한 시인 묵객들이 술에서 얻는 예술적 영감으로 많은 걸작을 남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술에 취하면 때로는 시궁창도 아름답게 보인다. 시선(詩仙) 혹은 주선(酒仙)이라 일컫는 이백(李白)의 시 한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不愧天人生  (불괴천인생)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천약불애주 주성부재천)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지약불애주 지응무주천)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천지기애주 애주불괴천)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이문청비성 부도탁여현) 
聖賢旣已飮 何必求神仙  (성현기이음 하필구신선)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 
但得酒中趣 勿爲醒者傳  (단득주중취 물위성자전) 

(하늘이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하늘엔 酒星이 있을 리 없고 
땅이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땅에 어찌 酒泉이 있겠는가 
천지가 이미 술을 즐겼으니 술 마심이 어찌 하늘에 부끄러우랴
듣기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하니 
성현이 이미 마셨거늘 구태여 신선이 되길 원할쏘냐
석잔 술은 큰 도에 통하고 한말 술에 자연과 한 몸 되나니
오직 술꾼만이 취흥을 알 것 이니 
술 못 마시는 맹숭이에게 주도를 전하지 말지어다.)

역시 酒仙 이태백 다운 지독한 음주찬가다. 노장사상의 허무와 낭만적 인생관과 우주관을 근거로 한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에 이르러서는 이미 주도를 통하여 신선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손가락에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조심스레 백번 씻은 / 백세미로 술을 빚어 한 이레 기다린다. / 바람이 들세라 / 닷세째 숨을 막고 이레째에 술을 뜨면 / 행여 그르쳤을지도 몰라 기도하듯 숨을 들이키면 / 달달한 단양주 향기 절로 눈이 감긴다./ 그 淸福을 아는 이는 알지니.

가을들판 / 추수 끝난 텅 빈 들녘 잠자리 한가롭고 / 그야말로 텅 빈 충만 이다. 어느 사이에 단양주 소문이 마을사람들에게 퍼진 모양이다. 술 그른단 소문에 / 지나던 이웃사람 하나 둘 모여들면 / 아니 술 생각에 일부러 찾아온 마을 사람들일게다.어떤 이웃이 가져온 호박이지 싶다. / 인정을 버무린 호박전 동그랗게 익는다. / 마당엔 호박지지는 기름 냄새가 담을 넘고 가을밤이 깊어간다. 인정을 버무린 호박전은 동그랗게 익어가고 사람냄새가 진동한다.

고요하고 / 어두운 시골마을 별빛만 초롱초롱 /하고 / 늦도록 하하호호 웃음소리 넘치더니 / 영감님 기다리는지 /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우는 저 귀뚜리 /가 가슴을 저민다. 
장취불성(長醉不醒)은 술을 계속 마시어 깨어나지 않은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평생을 얼큰히 취한 채 지낼 수 있다면 모르긴 해도 축복 받은 삶이라 여겨진다.
술은 공과(功過)가 많다. 찌들고 메마른 삶에 윤활유 구실이란 말엔 후한 점수를 주지 싶다.과하면 화를 부르는 게 비단 술뿐이 아니고 인간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단양주를 곁들인 가을밤의 정취를 인정을 버무린 호박전이며 목이메인 귀뚜리 소리와 함께 소담하게 전해준 시인께 사의를 표한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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