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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④] '영목항'<3>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④영목항
바다 속으로 숨고 말았다.

그 여운은 내 마음 한 쪽을 예리하게 할퀴며 지나갔다. 바다 속으로 숨어버린 태양과 노을, 그리고 영조의 은빛 갈치와 그 외 많은 것들.  까치놀까지 삼킨 바다는 어둠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 어둠은 바다를 적시고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의 안타까운 거리도 지워 버리고 말았다. 어둠의 지시였을까, 바다는 점점 노여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유순해지는 바다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맨 처음 울었던 거 기억나니?”
하늘엔 별이 돋아나고 있었다. 몸을 낮추어 별을 찾던 영조가 마치 별을 향해 묻듯 입을 열었다. 내 대답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영조가 다시 말했다.
“나는 도랑에 운동화 한 짝을 빠뜨렸을 때였어. 외갓집에 갔었거든.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비 온 후, 그래 여름방학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할머니가 그 자리에 나머지 한 짝마저 버리고 오라 하시는 거 있지. 도랑에 신발을 던지면서 내내 울었어. 돌아오
면서, 저녁밥을 먹으면서, 잠자리에 누웠어도……. 할머니가 더 좋은 신발을 사주셨지만 그래도 울었어. 서럽게, 서럽게.”
그래도 울었어. 그 말끝에 식 웃던 영조의 얼굴에 어쩜 별빛일지도 모르는 희미한 빛 한 줄기가 어른거렸다. 
“넌 언제 울었어?”

고개를 돌려 그 빛줄기를 털어내던 영조가 물었다.
“공회당이었어.”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언제나 슬픔의 밑그림처럼 깔려있는 유년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 하늘을 만났던 날 나는 울었다.
“너 기억 안 나니? 하얀 가운을 입은 바이올리니스트였어. 그가 몸을 구부려 포스터를 연주했지. 내가 생전 처음 만난 음악회였어. 밀가루 자루가 쌓여있던 무대와 가마니 자루로 깔아둔 객석이었지. 그날 내 몫의 가마니 자루는 칙칙하게 젖어버리고 말았어.”
“아, 그래. 40여 년 전쯤 되었나, 그때 그 공회당에서 우리 공부했다. 맞다, 기억난다. 그렇게 슬픈 음악도 아니었는데……. ‘금발의 제니’ 같은 거였지 않아?”
“음악을 듣다가 눈을 돌려 창을 바라보았어. 그때 흰 구름이 몰려오겠지. 그리곤 유유히 창을 떠났어. 흰 구름이 떠난 유리창 속에 파란 하늘만 남아 있었어. 그 하늘 때문이었나 봐. 막 울었어. 니 말 맞아. 그때 ‘금발의 제니’가 바이올린 선율로 함께 흐느끼더라.”
“파란 하늘 때문에?”
“흰 구름이 떠난 파란 하늘 때문에.”
“요즘도 그런 하늘이 슬퍼?”
“응.”
영조의 말쯤이야 헤아릴 수 있었다. 이 나이에, 요즘도 그렇게 하늘이 슬픈 게니, 한심하게……. 하고 묻고 싶은 거라는 걸 
나는 암말 없이 어둠이 덮친 앞 바다를 바라보았다. 영조의 속맘을 짐작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그 햇살의 슬픔을 털어냈을지도 몰랐다. 여름 날, 신작로 바닥에 쏟아지던 창백한 그 햇살의 기억이 후비고 들어오던 가슴 자락을, 그럴 때면 까닭도 잡히지 않는 슬픔에 눈시울을 적신다는 얘기를. 영조의 차가 또 아무 예고도 없이 꽃지의 모든 것을 두고 몸을 뒤척였다. 간간이 마주 달려오는 도로 위의 헤드라이트가 어둔 길바닥을 드러내놓곤 사라졌다. 영목항은 영조의 차가 멈춘 그곳에 있었다. 자그마한 야산을 등에 기댄 듯한, 그러나 영목 마을이 맘 놓고 기대고 있는 건 뜻밖에 저 혼자 불쑥 솟아오른 아스팔트길이었다. 바퀴에 짓눌린 흔적이 야트막한 둔덕을 만들어 놓은, 그 길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그 마을엔 그런 신작로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마을이 제 앞에 아늑한 바다를 부려두고 있었다. 어둠 삼킨 섬들이 시커멓게 떠 있는 포구에는 하루 일을 끝낸 어선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함부로 뉘를 불러들이지 않는, 그랬어도 몇 개쯤의 상처에 깊이 앓아본 적이 있을 듯한, 그래서 모호한 슬픔도 함께 품고 있을 것 같은, 영목항은 그런 바다였다.
“혼이 나갔니? 역시 바다가 좋긴 하나 보구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잖니.”
“알지. 너 바다 냄새 못 맡으면 소증이 도진다는 거.”
호도깝스레 내 어깨를 툭 친 영조는 길모퉁이의 횟집으로 걸어갔다. 오복 횟집, 그 밑엔 민박도 된다는 글이 붉게 씌어 있었다. 영조 뒤를 따라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주중인지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마을 사람인 듯한 두 남자가 회 접시를 앞에 두고 술잔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술기로 불콰해진 남자가 술 한 병을 더 주문하기 위해 고함을 쳤다. 다분히 휘청거리는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맘에 걸렸는지 영조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영조 남편이 적어준 일정표대로라면 저녁은 갱개미 회였다. 
“가오리 새끼야, 그것 먹을래?”
일정표를 읽어 나가던 영조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이 남자 웃긴다. 별 걸 다 챙긴다. 우리가 어린앤가 뭐.”
갱개미 회를 맛있게 먹고 영목 마을의 저녁바다를 둘러보고 맥주 캔 몇 개를 사들고 들어가라는 ‘추신’ 란에 붉은 별표까지 그려 놓았다. 영조 남편의 별표 때문에 갱개미 회를 맛있게 먹은 후 밤바다를 본 후 맥주 캔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도 없는 해안 길의 어둠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그 어둔 길을 손님도 없는 횟집 불빛이 드문드문 전조등처럼 비추어 내었다. 느릿느릿 길을 지나 바닷물에 털썩 주저앉은 불빛은 시커먼 물 위에서 한없이 어른거렸다. 손을 내저으면 잡힐 것 같은 섬들이 띄엄띄엄 바다 위를 떠 있었다. 캔 맥주를 사기 위해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낚시점
이라는 글자가 더 굵고 또렷하게 씌어있는 가게였다. 영조가 거스름돈을 다 챙겨 나왔더라면 주인 여자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저만치 돌아 나오는 영조와 나를 불러 세운 건 유리문 밖에 얼굴을 내민 여자의 목소리였다. 약간의 경상도 억양을 숨겨둔 듯한, 남녘 사람이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할 목소리였다.
“저, 잔돈 받아 가세요.”
걸음을 멈춘 내가 먼저 가게 앞으로 걸어갔다. 가겟집 여자는 내 손 안에 동전 몇 개를 집어넣었다. 동전을 집어넣는 여자의 손, 그 손은 그 섬과 어울리지 않게 고왔다. 알맞게 길었고, 알맞게 살이 오른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거느린 손이었다. 나는 그 손 때
문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굴을 반으로 가른 코 선이 고집스러워 뵐 정도로 분명하고 날카로웠다. 그 코와 잠잠한 눈매는 무리 없이 잘 어울렸다. 그렇지만 그 여자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건 손이었다. 나이만을 살짝 비껴간 손이었다. 그 손이 건네준 동전을 쥐고 돌아서는 나를 다시 불러 세운 것도 가겟집 여자였다.
“저 혹시……. 아니예요,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요.”
물끄럼말끄럼 하던 그녀의 눈빛이 점점 응고되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을 거두고 가겟집 여자는 등을 돌렸다. 그 유심한 눈빛에 감염된 듯, 나 역시 까닭 모를 의심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불빛을 걸머진 그녀의 등을 훔쳐보았다. 크지 않은 키였다. 허리가 생략된, 
마치 드럼통 같은 그녀의 몸집, 어디서 봤던가. 그렇게 시작된 내 의아심 앞에 가겟집 여자는 황급히 문을 닫아 부쳤다. 소리 내어 닫힌 문 앞에 멍히 서 있었다. 왜 그러지? 그 의아심을 도와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멍했던 정신을 수습하여 영조의 손에 거스름돈으로 돌려받은 동전을 건네주었다. 
“왜 그래?”
거칠게 문을 닫아 부치는 여자의 문소리가 맘에 걸렸는지 영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몰라, 정말 나도 모르겠어.”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고 그 황당함은 가게 안으로 꼭꼭 숨고 말았다. 왜 그럴까, 고개를 갸웃했다.
“맥주 안주로 땅콩이 낫지 않을까?”
“크래커도 괜찮아.”
소금기 묻어나는 짭짤한 크래커였다. 남편과 함께 했던 그 작은 섬 분교였다. 학교 앞 너른 밭의 딸기가 붉게 익어가던 봄날, 할아버지가 섬으로 찾아 왔다. 할아버지는 두 상자나 되는 크래커를 양쪽 손에 쥐고 왔다.
“딸기가 잘 큰다 카더만은 증말이구나. 너거 할매 맹크로 니 손도 거는 갑다. 너그 할매 손끝을 청승스럽게 빼닮았구만.”
딸기밭을 휘 둘러본 할아버지는 딸기잼에 찍어 먹으라며 크래
커 상자를 마루에 부려 놓았다.
“그 많은 크래커를 딸기잼으로 먹어 치웠단 말이지?”
“그래 이 크래커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 딸기는 날 새기가 무섭게 붉어지지 먹어 내지를 못했어. 나누어 먹을 데도 없었어. 열 몇 가호가 되는 그 섬엔 다 자급자족이었으니까. 맨날맨날 석유풍로에 잼만 만들어댔어.”
“어 징그럽다. 그렇게 날 새면 만들어 내는 잼도 그렇지만 먹어내는 것도……. 아유 징그러워라.”
“그래 지금 생각해도 징그럽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 손길은 걸어서 남새밭 푸성귀를 언제나 미친 듯이 자라게 했다. 그 딸기밭에 서서 할아버지는 세상 먼저 버린 할머니를 불러들였다. 구정물 한 바가지도 아까워 신작로 건너 남새밭에 쏟아 붓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눈물은 언제나 손수건 안에 숨어 있었다.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당신 입에 대지 않는 마른 음식은 그 손수건으로 싸왔다. 치마 밑, 할머니의 속옷에서 나온 절편 한 조각은 그 손수건에 흡반처럼 붙어 있었다. 손수건을 뜯어내면 할머니의 눈물이 그 절편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곤 했다. 언제나 내 눈물이기도 했던 쌉싸래한 무늬가 그려진 절편 한 조각이었다. 
할아버지가 그 섬으로 찾아온 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나와의 작별의식이었다. 정서방, 요즘도 니 에비를 걸고넘어지나? 절대로 니 에비 뺄갱이 아이다. 정서방은 어데서 빗들어 갖구선…….등이 더 많이 굽은 할아버지의 걱정은 곤히 자는 얼굴에도 스며 있었다. 쇠잔한 그 얼굴로 창을 뚫고 온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 달빛은 할아버지의 주름 골에 흘러들어 함부로 놀았다. 할아버지는 정말 당신의 남은 세상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통통거리는 도선에서 얼른 올라가라며 그 거친 손을 휘저었다. 나는 그 배가 사라질 때까지 선착장을 떠나지 못했다. 아물거리며 사라지던 한 점,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영조는 바다가 보이는 방을 주문했다. 길게 트인 유리창이 영목항을 오롯하게 다 담아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영조는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왜목 마을의 일출을 위하여, 꽃지 해변의 노을을 위해, 영목항의 고적함을 위해……. 영조는 제목을 외칠 때마다 내 캔에 소리 내어 부딪쳐 왔다. 영조의 긴 발톱이 눈에 뜨인 건 맥주 캔에서 떨어져 나온 거품 때문이었다. 액체로 사그라지는 거품을 휴지로 닦아내던 영조가 발톱눈까지 다 들어난 발톱을 슬며시 이불 밑에 감추었다. 
“발톱 깎아 달라는 말을 깜빡 잊고 만 거 있지.”
영조는 그 나이가 되도록 제 발톱을 자르지 못했다. 영조 아버
지는 딸을 출가시키면서 사위에게 발톱 자르는 일을 넘겨주었다. 영조의 발톱 자르기는 남편의 몫이 되고 말았다.
“나, 사실은 발톱 잘라본 적이 있어. 여경이 아빠가 잠시 그 여자와 함께 살 때 말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이가 말이다, 그 동안 내가 어떻게 발톱을 잘랐는지 전혀 묻지를 않았다는 거야. 그게 너무 괘씸하더라.”
슬슬 술기가 영조 얼굴을 덮치는가 싶었다. 영조는 비밀을 얘기 하듯이 입에 손을 모아 나직이 말했다. 
“별 걸 다 시비 건다. 여경이 아빠가 너처럼 한가한 사람이니?”
영조의 시비를 막기 위해 미리 배수진을 치기 시작했다. 맥주 캔 두 개를 연거푸 비운 영조의 볼이 홍시처럼 빨개졌다.
“나 이래서 술을 못 마신다니까.”
손거울을 꺼내어 제 얼굴을 비추어보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던 영조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울기 위한 준비였다.
“겁난다. 나 감당 못한다.”
“뭘 감당 못해, 그냥 가만 두면 되잖아.”
두 손으로 캔을 모아 쥐고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던 영조가 그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조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들을 낳지 못해 종가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았던 영조였다. 영조 남편은 4대 독자였고 집안의 장손이었다. 딸만 둘을 낳은 영
조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말았다. 아이를 생산할 수 없
다는 것은 종가를 상대하기엔 너무나 불리한 조건이었다. 결국 남의 배를 빌려야만 했다. 씨받이였다. 그 아이는 지금 캐나다 유학중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인유였다.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
“맘이 안 놓여서.”
영조는 전화 소리에 잠시 울음을 멈추었다. 젖은 눈으로 인유니? 하고 물었다. 나는 빙그레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살지, 왜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 거냐, 좋아했던 사람 나이 들면서 만나 사는 거 많이 봤다. 늙으면 의지할 사람 필요해. 나이 들었으면 어때, 시원하고 완벽한 싱글들인데. 암튼 그 호두 속 같은 두 사람 맘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 영조는 술기로 사고조절 나사를 잃어버린 듯 함부로 헤살 놓았다. 나는 송화기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흘러들어 가는 영조의 말을 막아내려 애썼다.
“영조 지금 운다.”
“영조 술 먹었구나. 그런데 어디야?”
“영목항이야.”
“영목항이면 태안반도쯤? 그래 잘 했다.”
인유의 전화가 떠났고, 영조는 인유의 전화를 잊어버린 듯 다시 서럽게서럽게 한참이나 울어댔다. 그랬던 영조도 잠시 조용해졌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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