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89」
    '어떤 동행'

     윤 윤 주 

  깨지고 금간 사발
  메우고 덧칠하고

  바늘에 실 가듯이
  오롯이 한 길이네

  부부는 닮는다더니
  그림자도 닮았네.
 

  애지중지 예쁜 조각
  퍼즐을 맞추는 듯 

  서로 손 맞잡아서
  입혀 낸 옻칠 황칠

  금빛이 아롱진 사발
  눈길 오래 머문다.

 ◎  사람의 급수와 브랜드
가을이 절정이다. 가로수로 심겨진 단풍나무의 색깔이 어찌나 고혹적인지 황홀하기까지 하다. 담쟁이의 단풍색깔도 올해엔 유난히 붉다. 그런가하면 마삭줄의 단풍 또한 일품이다. 더러 진홍색의 마삭단풍에 눈길이 머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담쟁이나 마삭줄은 둘 다 만목(蔓木)이다. 두 만목의 단풍 급수를 따진다면 모르긴 해도 최상급이지 싶다. 이렇듯 단풍에도 급수가 있을 법한데 사람에게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무릇 급(級)이나 단(段)은 바둑이나 유도, 태권도 등에서 실력에 따라 엄격히 적용되는 것이다 ‘급’이란 대체 무엇일까. 급의 사전적 의미는 계급, 등급, 학급 등을 일컫거나 기술이나 실력을 정도나 수준에 따라 나눌 때의 일정한 구획으로 정의하고 있다. 급이 안되는 사람들이 높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들이 저지른 악폐의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했던 모양이다. 계급사회에선 직급이나 지위가 높을수록 그 권한과 급여가 높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위와 사람의 급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이곳이 명색관광지이고 보니 별의 별 사람들을 보게 된다. 비록 입성은 초라해도 절로 존경심이 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고급 승용차에 명품 옷을 걸쳤다 해도 행동거지에서 나오는 천박함에 아연할 때가 많다. 졸부의 냄새는 숨긴다고 해서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사람의 급수는 그 사람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권세, 명성 따위와는 상당한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급수의 평가기준은 그가 지닌 인간성이다. 사회적으로 내노라하는 인물도 싸구려가 있는가 하면, 호구(糊口)에 급급한 사람 중에도 보석 같은 사람이 있다. 다만 소유한 것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선 보석 같은 인물도 허접 쓰레기로 취급받기 일쑤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조건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경제이련만 언제 부턴가 그 본말이 바뀌어 버렸다. 수단에 불과했던 경제가 목적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 능력으로 평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상가로 초절주의(超絶主義)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 하였던 에머슨은 인격이 매우 고매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송아지 한 마리를 외양간에 넣으려 하였다. 그러나 송아지가 한사코 버티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진땀만 빼고 있었다. 그 때 늙은 가정부가 다가와 “저는 송아지를 힘 하나 안들이고 외양간에 넣을 수 있습니다”고 했다.
 놀란 에머슨이 “어떻게 그럴 수 있소?” “그 전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많은 책에는 대체 무엇이 쓰여 있나요? 예를 들어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밭일을 계속해야 할 경우 해를 붙들어 매라고 쓰여 있나요? 아니면 등불을 밝히라고 쓰여 있나요?”
 “책에는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은 없소. 굳이 비슷한 경우를 찾으라면 그럴 경우 책에는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고 적혀 있소.” “그렇다면 책에는 그런 경우 등불을 밝히라고 쓰여 있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왜 송아지 문제에 대하여 그런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말 하고 나서 가정부는 송아지 앞으로 가더니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송아지 입에 물려주었다. 송아지는 젖을 빨듯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하였고, 가정부는 천천히 뒷걸음침으로서 힘들이지 않고 송아지를 외양간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을 본 에머슨이 탄식 하였다.
 “부끄럽구나!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도 이럴 때 슬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힘을 사용 하려 했으니.” 아들이 아버지의 말에 덧붙여 말하였다.
 “가정부 할머니의 손가락 힘은 아버지와 나, 거기에 송아지를 합친 것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확실히 슬기는 힘보다 강합니다.” 자신의 급수는 자신이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사랑해야 하리라 믿는다. 자기 사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것은 자만심이나 자기도취와는 구별된다. 자기 사랑이 깊은 사람은 교만하지도 않고 늘 당당함을 지닌 사람이다.
 지금은 무한 경쟁시대다.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란 노르웨이의 Brander(불에 달군 쇠로 가축에 낙인을 찍어 산지를 표시한 것)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들은 브랜드 하면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브랜드가 된 것은 오래 전 부터의 일이다.
 
히틀러 하면 ‘독재자’로 세종대왕은 ‘한글’로,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로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로 되었듯이 말이다. 브랜드란 말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브랜드란 개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브랜드가 된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전문성과 열정을 가지고 자기 경영을 해온 사람들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에 열정적일 수는 없다.

       유년의 솜사탕 같은
       유혹에 이끌리어

       한달음에 내달은 땅
       그 땅은 늪이었어

       시원을 알 수 없는 늪
       종교보다 깊었다.

       헤어나지 못하는 미망(迷妄)
       차라리 은혜였다

       천년을 내리내리
       끝이 없는 신의 편애

       선채로 열반에 들어
       하늘 소리 듣는다.
      -졸시, ‘난의 늪’, 전문

 브랜드는 오랜 세월 구체적인 삶을 통해 익혀가는 열매와도 같다. 열정과 노력으로 이름만 듣고도 그가 하는 일이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자.아무렴 호랑이도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시조 작품 〈어떤 동행〉은 윤윤주 시인이 깨지고 금간 사발을 재생시키며 도예의 길을 함께 하는 합천 어느 부부의 사랑을 2수 연작으로 읊은 서정시조다.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평생 합천 땅에서 남의 논까지 만평 농사를 지으며 옛 도자기를 즐기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깨어진 옛 그릇을 유사한 도편들로 수리해서 차를 마시며 도자기를 감상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 했습니다. 그릇을 만들고 가마에 소성하지 않아도 해박한 지식과 상상력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습니다. 금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사발을 보며 부부의 삶은 한마디로 장인의 삶이었습니다.”

‘킨츠키’는 그릇의 깨진 곳과 흠집에 옻을 올려 메우는 기법이다. 이는 불완전과 결함을 감추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럼 없이 드러내며, 빛이 바랜 찻잔에서 그에 깃든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킨츠키는 일본의 모모야마시대(1573~1615)에 생 옻을 올린 다음 깨진 부분에 금이나 은을 뿌려 장식미를 보여주는 정교한 기법으로 단순한 예술기법을 넘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옛 그릇은 성한 것이 별로 없다. / 깨지고 금간 사발 메우고 덧칠하고 / 정성을 기울여 재생시킨다. / 바늘에 실 가듯이 오롯이 한 길이다/ 부창부수다. / 부부는 닮는다더니 그림자도 닮았네 / 살다보면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주변엔 닮은 부부가 있지 않던가베. 닮아도 너무 닮았기에 그림자도 닮았단다.
 킨츠키하다 보면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도편, 어찌 예쁘지 않으리오. / 애지중지 예쁜 조각 퍼즐을 맞추는 듯 / 몰입 한다. / 서로 손 맞잡아서 입혀 낸 옻칠 황칠 / 이다. / 금빛이 아롱진 사발 눈길 오래 머문다. / 옻칠과 황칠로 마무리 되어 새로 태어난 사발, 거기에 혼이 함께 입혀졌으니 그 기쁨을 어디다 비하리오.부부의 삶, 화려한 금빛으로 빛나는 예술이었다. 네 쌍 중 한 쌍 꼴로 한다는 황혼이혼이다. 머잖아 이혼이 자랑이 되는 세태가 되리란 진단이 우울하게 한다.황혼이혼, 남의 일이 아니기에 뒤가 캥긴다.금빛이 아롱진 사발 재현에 한길을 가고 있는 노부부의 삶이 아름답기만 하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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