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둣방 아바이'
                              
                                                             윤석희

  아바이의 구둣방은 거리의 정물화다. 비가 오면 천막으로 지붕 삼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면서 숫한 계절이 피고 지고 강물처럼 흘렀건만 일터는 난전 그대로다. 아바이는 읍내 농협 건물 앞 귀퉁이에 쭈그려 앉은 달팽이 같다. 오늘도 여전히 지치고 아픈 잡동사니들을 보듬어 안아 생기를 불어 넣는다.
  닳아빠진 굽을 갈고 헤진 데를 꿰매고 광을 내 신을 닦는다. 어디 신발 뿐인가. 목 부러진 우산대도 세우고 쓸모없어 밀쳐진 가방도 감쪽같이 바꾼다. 심지어 어부들의 송송 뚫린 그물까지 기워낸다. 시장을 오며 가며 눈여겨보지만 아바이는 그저 조용하고 묵묵히 손만 놀린다. 그러나 늦가을 낙엽같은 쓸쓸한 분위기가 늘 마음 한 켠에 가시처럼 걸려있다.
   언덕바지에 살아선가. 우산대가 자주 부러졌다. 유난히 험하게 신는 남편의 신발짝도 아이들 헤진 가방도 가끔씩 들고 나섰다. 수선된 것은 장을 보고 찾기도 하고 일이 밀리면 기다리기도 했다. 종종 드나들면서 인사 정도 나누지만 서로 말이 없어선지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까닭없이 편안하여 종종 들락거렸다.
   짐이 유난히 많아 차를 기다리던 날 아바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앉은뱅이 의자를 내어준다. 도와드릴 게 없냐해도 막무가내 손사래친다. 새댁은 어디서 오냐며 처음으로 말문을 튼다. 나도 몇까지 궁금증을 풀고 싶은데 그저 웃기만 한다. 일사후퇴 때 흥남에서 피난선을 타고 내려온 함경도 아바이란 것도 소문으로 알았다.
   조카 때문인가. 부쩍 아바이에게 관심이 갔다. 조카가 난데없이 구두 수선공이 됐다는 거다. 명문대를 나와 유망 IT기업의 대표까지 한 그의 난데없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뉴욕으로 간 녀석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괜시리 아바이는 고향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가늠을 해보곤 한다.
   구두쟁이 조카인 듯 그를 눈여겨본다. 날이 궂을까 일거리가 없을까 관심을 쏟아 붓는다. 일이 고되 드러누울까 조바심도 난다. 아니 늘 기도하는 마음이다. 일거리가 수북한 아바이는 쉼 없이 일을 하지만, 그의 손길을 고대하는 낡은 것들로 꾸준히 벌이 하지만 과연 형편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억지로 일거리를 만들어 귀를 세워 들락거린다. 아바이가 잘 살면 조카도 분명 끄떡없을 거라고. 객지살이의 설움도 함께 이겨 낼 거라고. 때가 되면 번듯한 화가가 되어 다시 돌아오리라고
   손은 가벼이 움직이지만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손님이 하는 대로 고개만 끄덕인다. 모자를 눌러쓴 채 전혀 속내를 보이지도 않는다. 언제나 미소 지어도 그리 밝은 낯빛이 아니다. 궂은 것들을 깔끔하게 손봐 ‘자아 이제 됐습니다. 더 써 보이소.’ 내줄 때만은 다 키운 자식 기꺼이 떠나보내 듯 스스로도 흡족한 표정이다. 받는 이도 물론 선물을 받는 양 감사하며 좋아한다. 그렇게 찾는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나누어주곤 했다. 나도 학교 때 신던 부츠를 말끔히 고쳐 받았을 때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기뻐했다.
   햇살 나른한 어느 봄날 이었나. ‘지금쯤 뒷산에 진달래가 한창일 게야’. 혼자서 중얼 거리던 아바이는 좀처럼 일에 열중하지 못했다. 그리 날렵하고 꼼꼼하던 손놀림이 느려지고 눈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니 금방 바람 들고 구멍 난 가슴처럼 북녘 하늘만 멍청히 바라보았다.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다 수선하지 못한 신도 버려두고 무겁게 돌아섰다. 그렇게 가끔씩 아바이는 울었나보다. 몹시 아팠나보다. 그리움에 지쳐 비틀거렸나보다. 남겨두고 온 누가 있는 걸까.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을 그리는 걸까.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설까. 묻진 않았다.
   아바이는 끝내 고향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그 자리서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등이 굽고 허리가 휘었다. 할아바이가 되고서도 일은 놓지 않았지만 두고 온 자식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거처럼 주변 사람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 그 자리 지켜냈다. 그렇게 듬직하고 묵묵한 그가 미더웠다. 조카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틈틈이 먹을 것을 챙겨 나오던 아마이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아바이는 불과 며칠 만에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지고 더 과묵해졌다. 몹시 외로웠나보다. 혼자서는 더 살아낼 자신이 없었나보다. 지심도 동백이 뚝뚝 눈물처럼 떨어지는 날에 아마이 따라 이내 세상을 등졌다.
  남에게는 이것저것 용케도 고쳐 주더니만 동강 난 자신의 삶은 왜 끝내 기워내지 못했을까. 그 깊은 슬픔도 이겨내지 못했을까.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떠나고 만 것이다. 망향의 그리움 한이 되어 부평초처럼 끝내 뿌리내리지 못했다. 부모님께 잠시 맡겨 두고 온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평생 속죄의 삶을 산 것이다.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돌봤다한다. 한 아이는 아예 집에서 보살폈다. 그렇게 가슴에 박힌 대 못 하나 빼내지 못한 채 낙엽처럼 가 버렸다.
  그가 자리 잡고 있던 농협 앞을 지나려면 아직도 바람이 휑하다. 눈이 먼저 가고 마음도 따라간다. 여전히 움츠리고 앉아 아바이 신발을 꿰매고 있다. 고개를 저으며 젠 걸음으로 눈 감고 지나친다. 이제는 함경도 어느 곳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까. 부모님을 만나 용서를 빌었을까, 어릴 때 헤어진 아이는 알아보기나 했을까.
  아바이가 그리우면 조카가 떠오른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조카가 궁금하면 아바이를 추억한다. 아니 헤지고 구멍 난 삶과 마주할 때마다 아바이를 찾고 싶다. 너덜한 나의 일상도 깁고 꿰매면 말끔해 질 수 있으려나. 바람 시린 날이어선가. 유난히 아바이가 젖어온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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