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95]'허원영-결의(決意)'

「금요거제시조選-95」
'결 의(決意)'

허 원 영

산폐장＊ 만든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
완장 두른 몇몇이서 마을사람 회유하여
고요한 긴장감 넘쳐 전운마저 감돈다.

금물결 출렁이던 큰개＊에는 도장공장
마을 품은 앞산에는 채석장이 들어섰고
망가진 그 산 아래에 폐기물을 묻자 하네.

임시 동회 열리던 날 고향 찾은 명길이는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인데
더 이상 망치지 말라 들썩이며 울었다.

힘 드는 싸움 길에 소임 다 하다 보면
반드시 올 좋은날 그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길을 나선다 반대서명 받으려.

＊산폐장 : 산업폐기물 매립장
＊큰개 :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큰 물가

◎ 일출과 열정
1월은 정월(正月)이다. 정월이라고 하였음은 일 년 중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마음을 올곧게 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자정 의지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산복도로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 신축년을 보냈기에 새해를 맞는 마음의 각오는 소중하고 절박했다. 불끈 솟는 해를 향하여 절을 올리며 임인년을 열정으로 채우리라 다짐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위대한 것 치고 열정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것을 이룩하는 데는 반드시 열정 즉,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열정은 추진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두고는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전각예술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가 손꼽힌다. 치바이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목수이었던 그는 27세에 처음으로 스승을 만나 미술지도를 받았다. 목수 출신이란 이유로 화단에서 배척받던 그는 56세 때에 비로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기관 근처에도 가보지 못 했던 그가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때문이었다. 치바이스는 그림에 시제(詩題)를 쓰기 위해 시를 배웠고, 전각을 하고 싶어 옛 글자를 배웠다. 그의 70세 때 일화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한 제자가 매화 아래에서 노는 수탉을 그렸는데, 그 그림을 본 치바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그림에는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기품이 느껴진다네. 집으로 가져가 그림을 모사하여 자네의 기법을 배우고 싶은데, 잠시만 빌려 주게나.” 제자는 기꺼이 그림을 내주었다. 일주일 뒤 치바이스는 제자에게 그림을 내놓으며 말했다.
“내가 베낀 그림이 어떤가?“
스승의 그림을 본 제자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베낀 그림 위에 적힌 글 때문이었다.
“제자의 그림이 아주 뛰어나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베낀 그림과 바꾸고 싶지만 제자가 승낙할지 모르겠다.” 제자는 이 세상 최고의 칭찬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제자는 스승이 베낀 그림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제자라 할지라도 배울점 찾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던 스승을 떠올리며 더욱 증진했다고 한다. 치바이스는 말년에 베이징중국회화협회 회장을 지냈다.

배낭 속 묵은 먼지
노독인양 툭툭 털고

솔바람 심호흡에
물 한 모금 찾았느니

하늘가 높은 다락에
쪽박 달이 내걸렸다.

불룩한 낡은 배낭
구름인 듯 베고 누워

말이 없는 메아리를
귀에 담아 뜸 들일 때

물 괴듯 가슴을 어르는
산자락의 벌레소리......

拙詩, ‘山吟歌’, 전문

나는 삼십대 중반부터 휴일마다 배낭을 메고 난을 찾는 채란길에 나섰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 이었다. 1년에 대략 휴일이 60여일, 10년이면 얼추 600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휴일이란 휴일을 몽땅 채란에 쏟아 부었으니 다한 말이다. 10년 세월 휴일마다 채란 길에 나선 것은 ‘10년 동안 휴일마다 채란 길에 나서리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 독한(?) 성정에 혀를 내두르기도, 열정에 감복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한국난계에선 살아있는 전설이라 회자되고 있는 줄 안다. 일출(日出)과 일몰(日沒)은 사진으로 구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둘 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일진데 일출과 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한다.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라 한 저 유명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떠올리면서 말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오늘날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우환덩어리를 꼽으라 하면 산업폐기물이 선순위에 꼽히지 싶다. 산업폐기물은 산업 활동에 수반해 발생하는 폐유, 폐산재 등 폐기물이다. 산업폐기물의 관리가 중요시 되는 것은 산업구조가 고도화 되면서 그 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 과정에서 산업폐기물의 종류가 양적으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다양화되는데 반해 자연계의 자체정화능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므로 우환덩어리가 된지 오래다. 시조 작품 〈결의〉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건립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다짐을 4수 연작으로 읊은 허원영 시인의 작품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허망과 희망을 동시에 주고 있다 하겠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
“거제시 해양관광개발공사와 산업폐기물업자, 마을사람 몇몇이 마을 앞 돌산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몰래 진행시키다 들통이 났습니다. 급히 임시 마을회가 열리고 주민 절대 다수가 반대를 해서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통해 백지화를 공표했음에도 주민들을 몰래 찾아다니며 회유를 하고 있습니다. 이일로 매일같이 시장, 시의원, 환경단체, 언론사, 민원실, 인근마을 이장, 통반장, 어업인 등 반대서명운동에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평온하고 공기 좋은 시골 마을 찾아 이사를 왔는데 왠 날벼락인지...다행히 마을 분들과 타처에 있는 후손들이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셔서 힘이 납니다. 이 시는 그런 마을 상황에 대한 걱정과 고민, 결연한 다짐으로 쓴 것입니다.”

시인의 거주지 하청면 실전리에 대한 사랑은 시조 작품 〈실전리 치자 밭 · 금요거제시조선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평온하고 공기 좋은 시골 마을을 찾아 이사를 왔단다.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실전리에 / 산폐장 만든다는 흉흉한 소문 / 이 돌았다. / 완장 두른 몇몇이서 마을사람 회유하여 /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만든다는 소문이었다. 팽팽하고 / 고요한 긴장감 넘쳐 전운마저 감도는 /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

큰개, 만조 때는 금물결이 출렁이던 곳이다. 그 아름다움이라니, 그곳에 어느샌가 도장 공장이 들어섰다. 그런가 하면 마을을 품고 있는 넉넉한 앞산엔 채석장이 들어서 망가졌다. 그 / 망가진 그 산 아래에 폐기물을 묻자 한다. / 얼마나 망가트려야 직성이 풀리려나. 기가 막힌다. 가만히 있으니 사람을 가마니로 안다고 하지 않던가.

급기야 임시 마을회가 열리고 주민 절대다수가 반대를 했다. / 임시 동회 열리던 날 고향 찾은 명길이는 / 목이 메여 /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인데 /를 부르다 / 더 이상 망치지 말라 들썩이며 울었다. / 그 울음은 통곡이었지 싶다. 누군들 망가지는 고향을 두고 울지 않으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 앉아서 당하기만 했던 시골 사람들, 김 안 나는 물이 뜨거운 법이다. / 힘 드는 싸움 길에 소임 다 하다 보면 / 여기서 시인이 모르긴 하나 산업폐기물 매립장 건립 반대 투쟁 위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고 확인하여보니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시조의 제목 〈결의〉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 반드시 올 좋은날 그 날을 기약하며 / 어제처럼 / 오늘도 길을 나선다 반대서명 받으려 /열일을 제껴놓고 말이다.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 도로가엔 “서당골 생수공장 시민이 막아야 합니다”란 현수막이 여남개 걸려 있다. 서당골 생수공장 건립 반대위원회에서 내건 현수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수 공장 건립 반대위 위원장은 구천리 이장을 맡고 있는 거제시조문학회 이덕재 회장이다. 그런가하면 “300만톤 산업폐기물장 시민 단결로 꼭 막아내자”라는 현수막을 내 건 이는 실전마을 산업폐기물장 설치 반대 대책위원을 맡은 거제시조문학회 허원영 부회장이다. 올곧은 사람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트윗하기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