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점자의 비밀'<3>

 그녀가 치매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아무도 함부로 그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런 증상을 앓고 있기엔 터무니없는, 우선 그녀의 나이가 아까웠다. 그게 확실하다면 불리한 그녀의 주변 환경, 그래서 치유를 보장받는다는 것이 퍽 어려울 것이었다. 이런 조건들이 불 보듯 뻔한 현실이기에 걱정들을 앞세웠다. 제 뱃속에 실어 본 자식 하나 없고, 그녀의 형제들은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하나 둘, 세상을 다 버리고 떠났다. 남은 건 점자뿐 이었다. 올케 몇이 남아있었지만 점자와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다. 그 비바람 부는 날, 나는 점자를 그렇게 만나고 돌아왔다. 더 이상 폰돌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괴성을 끌어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붙잡힌 몸이었고 그래서 맘대로 다그칠 수 있는 유리한 위치 때문이었을까, 은근히 여유가 생겼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어느 겨울밤을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였다. 그 혼란스런 틈을 이용해 남편과 점자가 증발했다. 그들이 비운 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내 의심을 개운하게 해줄 어떤 근거 또한 없었다. 두 사람은 시간을 잰 듯 차례차례 들어왔다.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여태껏 그 의심에 구체적으로 근접한 적은 없다. 남편은 내 정확한 짐작을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점자까지. 네 번째 찾은 병실이었다. 점자의 눈빛은 편안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악착같이 담아내던 그 눈은 슬프도록 고요했다. 왜 그걸 헤집어 놓고 싶었을까, 항상 내몰리던 내 어린 날과 그 여름 밤, 의심스런 기억의 소행이었을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녀의 고요한 눈 속에 돌을 또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폰돌이!”
그렇게 폰돌이를 빠뜨려 두곤 눈 속을 퍼져나갈 파문을 가만 지켜보았다. 모두들 점자의 의식에 손을 놓고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얼마간의 의식을 교묘하게 감추어두고 있다는 것을……. 교활 한 내 심보를 눈치 챈 겔까, 그날 점자는 심통 부리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곤 아예 뜰 생각을 안했다.
“홍점자. 폰돌이랑 도망간 3년 동안 어디에서 뭐 했니? 정말 폰돌이가 꼬셔서 끌려간 거 맞아?”
붙잡혀 돌아왔을 때, 점자는 폰돌이 꼬임에 빠졌다는 말만 앞세웠다. 나는 그때에도 폰돌이만은 믿고 싶었다. 점자의 눈빛이 무엇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경계하듯 도사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선 점자가 숨겨둔 의식을 다시 끌어 내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읔, 그 괴성은 곧 그녀의 의식이었으며 내 존재를 인정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녀의 몸을 닦기 위해 이불을 젖혀두곤 물수건을 갖다 댔다. 기저귀 밑으로 드러난 두 개의 다리엔 살 한 점 구경할 수 없었다. 마른 삭정이처럼 앙상한 발을 더듬어 올라가면 주암옹두리 같은 무릎이 허벅지와의 경계 표시처럼 박혀 있었다. 점자의 점은 허벅지가 끝나는 사타구니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마치 깊은 계곡, 바위 바닥에 씌어있는, 해독 불가능한 고대 문자 같았다. 한 번도 볕 구경을 못했을 가엾은 점은 헤진 천 쪼가리 같은 살갗에 쭈글쭈글 숨어들어 있었다. 많은 세월 유난을 떨며 감추어 두었던 비밀, 그녀의 점을 나는 맘 놓고 닦아댔다. 점자는 내 손놀림에 짐승 같은 고함을 쳤다. 아프다는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점 앉은 자리를 들켰다는 억울함이었을까. 자꾸 몸을 움츠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원래 그래요, 고함을 치면서 이빨을 밤새 뻑뻑 갈아대곤 해요, 뭔 원한이 그렇게 많은지…….”
건너편 자리 할머니가 말했다. 가끔 발이 저리다며 나를 불러대던 할머니였다.
“젊은 남자가 하나 왔다 갔는데.” “언제요?”
“어젠가, 아, 그젠가 보다. 그제 맞제?”
할머니는 옆자리의 침대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나이는요?”
“젊었어.”
“점자가 알아보던가요?”
“몬 알아 보제. 암말도 안 하고 울더만.” “울어요?”
“그리곤 몸을 닦아 주더만.” “누구라고 말은 안하구요?”
“그냥 울면서 몸만 닦아주던데.”
 
 친척 중의 여러 얼굴들을 그려보았다. 성국이가 다녀갔을까,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집안의 장조카인 성국이가 이 먼 길을 찾아 왔을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점자의 큰오빠인 성국이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였다. 그 무덤에 풀뿌리가 채 발을 뻗기도 전에 애발스런 점자는 제 동생과 함께 사촌들 매수에 발 벗고 나섰다. 올케 몫으로 남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법을 들이밀었지만 할아버지대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법은 점자 패거리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 과정이 무척 요란했고 볼썽 사나왔다. 그 동생 또한 얼마 전 간암으로 세상을 버렸다. 그런 고모를 위해 몸을 닦아주고 울어줄 성국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누굴까. 점자의 인생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고 궁금했지만 어떤 단서를 잡을 만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점자의 비밀, 그 점만 닦아주다가 돌아왔다. 돌아서는 귓가로 점자의 고함소리가 따라오는 듯했다. 비밀한 곳의 제 점을 맘대로 주물러댄 내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기 위해 뒤쫓아 오는 것만 같았다. 자꾸 등이 가려웠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병원 문을 나섰다.
‘홍점자의 뇌 세포가 죽고 있다.’
 점자의 뇌는 이미 70세 노인을 넘어섰다 한다. 그렇게 쉽게 몸이 망가진 건 남편이 선심 쓰듯 주도한 뇌수술의 실패가 치명적이었고, 보호자 없는 오랜 병실에서 영양실조 또한 한몫했다 한다. 그녀가 하루에 섭취하는 영양은 겨우 호스를 통한 두유 몇 봉지였다. 그녀를 덮친 병난(病難)을 살갑게 바라지해 줄 친지 하나 없었다는 게 악화의 원인인 게 자명한 일이기도 했다. 누구 하나 없다, 그 말 뒤에 나는 버릇처럼 한 남자를 떠올렸다. 몸을 닦으며 울고 간 남자. 홍점자의 인생에 어떻게 닿아진 인연이었을까. 홍점자는 내가 여섯 번째 병문안을 가기 전에 제가 잡고 있던 세상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아 볼 것도 없는 그녀의 몸은 6년 정도 함께 살 섞었던 남편의 연고지인 부산으로 옮겨졌다. 장례의식은 생의 말미에 그녀가 잠깐 의지했던 성당에서 행해졌다. 환히 웃는 점자의 젊은 사진 앞에서 성당 사람들은 끊임없이 미사를 드렸다. 역시 치밀하고 영악한 홍점자, 그녀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잔치를 위해 하느님을 미리 제 편으로 끌어들 일 줄도 알았다. 거동이 더 불편해진 남편, 저년이 칼을 들고 날 죽이러 온다며 정신을 놓친 점자를 구석으로 내몰던 의붓딸은 꼭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고 떼를 썼지만, 그런 것들도 그녀 하느님의 너른 가슴 안에서 흔적을 감추었다. 그래서일까, 점자 가는 마지막 길은 그렇도록 초라해 뵈지는 않았다. 홍점자의 몸은 화장하기로 했다. 화장이야말로 점자를 보내는 가장 알맞은 방법일 것이었다. 점자의 육신을 재로 사르기 위한 시간은 얼마 소용되지도 않았다. ‘화장완료’라는 전광판의 글자를 확인하기까진 불과 몇 십분, 그녀의 굴곡진 삶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시간이었다. 점자를 실은 장례차는 어린 날, 그녀의 흔적이 남 아있는 섬을 향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결국, 한 줌 가루가 되어 제 유년의 무대로 돌아가는 점자의 마지막 길, 연민이었을까, 내 눈가가 젖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에서 잠깐 머뭇거리던 차가 등을 돌리고, 제 그림자까지 쓸어 담고 사라졌어도 나는 장승처럼 노박이로 서 있었다. 부재중이었던 내 의식을 불러들인 건 남자의 울음소리였다. 남자는 모서리 진 벽에 기대서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장례 행렬이 빠져나간 괴괴한 가을 낮에 약간의 긴장을 풀어놓았다.

  물끄러미 남자의 울음을 건네다 보았다. 누굴까. 누구이기에 점자의 마지막 길을 저렇도록 서럽게 울어 주는 걸까. 정성들여, 마음먹고 차려 입은 검은 양복은 정갈하고 반듯했다. 목을 감싼 깃에 흘러내린 곱슬머리와 이마를 경계하는 다북눈썹, 서른을 넉넉하게 넘겼을 튼실한 어깨, 오랜 노동으로 다져졌을 성싶은 믿음직 한 두 다리는 애와치는 남자의 슬픔을 잘 지탱해 주고 있었다. 딱히 꼬집어낼 수 없었지만 남루해진 기억을 붙잡고 다가오는 느낌이 낯설지 않다는 것, 어디서 봤을까. 잡혀들지 않는 기억에 안달하다 결국 포기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예매해둔 기차표 때문이었다. 택시를 탔고, 부산역 광장을 걸어가면서도 내 머릿속  꽉 들어찬 남자의 울음소리로 스산했다. 기차가 밀양을 버린지 오래였다. 멀리 길가엔 은행나무들이 떨어뜨린 이파리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그 순간 노란 이파리 위로 울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천천히 겹쳐 떠올랐다.폰돌이었다. 점자가 밝히지 않았던 3년, 그 물음표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의 흔적이며 핏줄이 아닐까. 또한 점자의 몸에 실려 세상을 만났음직한, 그런 추리가 충분한 남자, 내 생각은 의심 없이 그쪽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은행나무 때문이었다. 폰돌이를 불러들여 모자이크하듯 지난 일을 꿰맞추기 시작한 건.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이면 절골 마당엔 유난스레 노란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던가, 신작로 건너 들판은 쌀뜨물을 들어부은 듯 보잇한 낯빛 이었다. 책가방을 들고 나서던 그 아침, 지게를 짊어진 폰돌이가 사립문 앞을 서성였다. 땀이 얼룩진 그의 이마 언저리에 곱슬곱슬 한 머리카락들이 들붙어 있었다. 그리곤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은행나무 이파리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맑은 노랑이었을까. 손바닥, 그 노랑 빛깔에 눈만 빠뜨린 채 서 있기만 했다. 뭐신데? 그때 점자의 목소리가 마주선 폰돌이와 내 앞에 날카롭게 꽂혀 들었다. 폰돌이 얼굴은 금방 햇노랗게 변했다. 은행잎은 결국 홍점자가 낚아채가고 말았다.

내 유년을 껴묻고 있는 폰돌이의 기억은 가을날, 그의 손바닥에 놓여있던 노란 이파리 속에 살아 숨쉬곤 했다. 은행잎을 갈취당한 그 아침 때문에 나는 점자를 평생 내 미움 속에 가두어두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유년의 미움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불구의 응어리로 남아 피해 의식만 키웠는지 모른다. 한 번도 그녀를 이겨본 적이 없었던 유년, 홍점자는 내 앞을 버티고 선 안타까운 암벽이었다. 그녀가 제 정신을 놓치고 죽음을 안고 있을 때, 내 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호기(好機)라 여겼다. 억눌리는 자의 기분은 어떤가, 홍점자 너에게 맛보기로 보여줄게, 남편의 이름을 비수처럼 품은 채, 폰돌이를 수없이 들이밀어 보았다. 그래서 운신 못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우월감을 함부로 누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불행을 미끼로 내 유년에서 유래 한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려는 심보였는지 몰랐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계획이 퍽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점자는 항상 한 수 위였다. 나를 이기는 방법쯤이야 훤히 꿰차고 다녔다.
죽어 세상을 떠나는 마당, 그럼에도 아직 새끼 한 번 품어보지 못한 내 상처 앞에 제 핏줄 당당하게 세워 놓고는…그녀가 날 린 한 방의 린치에 나는 또 보기좋게 당하고 말았다. 구차한 육신을 벗어던지고 높은 곳에 오른 홍점자, 내 꼴을 지켜 보며 어쩌면 지금 까르르 웃고 있는 건 아닐까.<끝> <다음 작품:별 이야기>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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