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13」
'맹종죽 테마파크에서'

    윤 미 정   
맹종죽 테마파크
임도 따라 살방살방

청아한 댓잎소리
귀문이 절로 열려

얼룩진 삶의 자락을
대끝에다 내겁니다.

하이얀 아카시아
용등산은 봄에 취해

원두막 바닥에다
몸을 온통 뉘어 놓고

마알간 구름 한 점에
마음 실어 봅니다.

◎  지음(知音)
  전국시대(戰國時代) 사군자의 한 사람인 춘신군(春申君)의 식객 중 한명(汗明)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춘신군에게 기마(驥馬) 얘기를 했다. “그대는 기마를 아십니까. 무릇 천리마인 기(驥)가 나이가 들어 소금 수레를 끌고 태항산(太行山)을 넘게 되었습니다. 말굽은 늘어지고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늘어지고 땀은 비 오듯 하고, 게다가 소금은 녹아내려 땅을 적셔 산중턱에서 더 오를 수도 없는 터에 수레 앞 나무도 부러져 버렸습니다. 이때 마침 백락(伯樂)이 이를 보고 수레에서 내려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비단옷을 벗어 말에게 덮어 주었습니다. 기는 땅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크게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 울려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기가 만난 백락은 바로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知己)였기 때문이지요.”
 백락은 춘추 진목공(秦穆公) 때의 말을 잘 안다는 손양(孫陽)을 말하는 것인데, 흔히 천리마를 아는 인물, 곧 지기(知己)로 비유되고 있다. 천리마는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한유(韓愈)는 ‘잡설(雜說)’ 이란 글에서, “세상에 백락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가 있게 마련, 그렇지만 천리마는 늘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名馬)라도 백락의 눈에 띄지 않으면 다만 노예의 손에 고삐가 잡혀 고생만 하다가 끝내는 노마(駑馬)와 함께 마구간에서 죽고 말아 천리마란 이름 한번 듣지 못한다.” 라고 했다. 스스로 천리마라 여기거든 백락을 만나라. 남자는 누구를 맨 처음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여자는 누구에게 맨 처음 치마끈을 푸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만남이란 그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만남을 늘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백락은 세상에 늘 있는게 아니니 슬플 따름이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春秋) 시대에 백아라는 거문고의 명수가 있었고, 그 친구인 종자기(鍾子期)는 듣는 명수였다. 백아가 거문고를 켜 높은 산의 모습을 형용하려 하면, 옆에서 귀를 기울이던 종자기는 “참, 훌륭하군! 높이 솟아 있는 느낌이 마치 태산(泰山)같고나”라고 칭찬해 주었고, 흘러가는 물을 그리려 하면 “정말 잘 지었도다. 양양한 물이 흐르는 듯하며 마치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와도 같구나”하고 기뻐하여 주었다. 이런 식으로 백아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거문고의 가락에 의탁하는 기분을 종자기는 뚫어지게 알아맞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이 맞는 탄수(彈手)요, 청수(聽手)였지만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종자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아는 슬피 울며,“이제 내 음(音)을 알아주는 지음자(知音者)를 잃었으니 거문고를 타 무엇하리”하며 마침내 거문고를 부수고 현(絃)을 끊어버렸다.

  백아는 금도(琴道)에 정혼을 쏟아 넣어 일세의 명인이라 불리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기가 죽은 후 두 번 다시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종자기라는 얻기 어려운 청수(聽手)를 잃은 바, 이미 자기의 거문고를 들어줄 만한 상대가 없는 비탄에서 온 것으로 참다운 예술정신을 시사하여 주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백아절현 혹은 백아파금(伯牙破琴)이라 하고 있으며 지음(知音)이란 말은 여기서 생겨났다.
우정에 대하여 전해오는 얘기가 많다. 우정은 산길과 같아서 서로 아끼는 마음이 오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져서 이내 산길은 묻혀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에 우정이 돈독해지는 것은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다. 애정과 자기희생의 바탕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다. 애정과 자기희생이 따르지 않는 친구 관계는 친구가 아니고 단순히 알고 지내는 지인(知人)에 불과하다.

        사람도 친구되어
        한 십 년 어울려야

        열 길 물속보다 깊은
        그 속을 연다더라

        아무렴 깊디깊은 속
        속내 한번 보이리니.

        사람이 난에다가
        정붙이고 사는 것도

        몇 년 묵은 된장같은
        난우를 찾는 것도

        이제사 내 알 것 같다
        사람 사는 재미란 걸.
       -拙詩, ‘蘭友頌’ , 전문

세상엔 기쁨을 같이 할 수 있는 사이가 있고, 고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있다. 즉 기쁘거나 슬프거나 한결같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사이란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한 목적을 두고 목숨을 걸고 혈맹으로 공동투쟁을 하다가도 일단 목적한 바를 이루고 나면 사이가 벌어져 반목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성공의 기쁨을 누릴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시킨 다음엔 얼른 자리를 떠나야 하며 그 성공의 맛을 같이 오래 누리자고 나섰을 땐 반드시 혼란이 일어난다. 그 성공의 도가 큰 것일수록 혼란의 폭도 크기 마련이다. 작은 잇속에도 부나비처럼 몰려들다 돌아서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세태를 모르는 바 아니다. 긴 밤을 지새우며 삶을, 인생을 논할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내 신세가 안타깝다 못해 처량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내 처지가 마치 거제 해금강 한쪽에 외롭게 솟아있는 촛대바위 같기만 하기에 자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소주잔을 기울인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맹종죽 테마파크에서〉는 윤미정 시인이 거제 하청면에 있는 맹종죽 테마파크에서의 감회를 2수 연작으로 읊었다.

 이곳 거제에는 맹종죽 테마파크가 있다.
 맹종죽은 호남죽(湖南竹), 죽순죽(竹筍竹), 일본죽(日本竹), 모죽(毛竹) 이라고도 한다. 높이가 20m에 이르는 것도 있고 지름이 20cm 정도로 대나무 중 가장 굵다. 맹종죽은 효자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중국 오나라의 맹종(孟宗)은 효성이 지극 하였는데,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오래 누워 지내다가 어느 겨울날 죽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 죽순이 있을 턱이 없지만, 효성이 지극한 그는 대밭에 들어가서 꿇어 앉아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 앉았던 자리에서 죽순이 솟아나 있었다. 하늘이 맹종의 효성에 감동하여 죽순을 솟게 한 것이다.그래서 이 대를 맹종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역마살이 있는 시인의 발길은 맹종죽 테마파크로 향했다. / 맹종죽 테마파크 임도 따라 살방살방 / 걸었다. 특유의 발걸음이다. 마디마다 속이 빈 맹종죽, / 청아한 댓잎소리에 귀문이 절로 열렸다. / 순간 부끄러움을 느껴서일까, 시인은 어쩌면 맹종의 효심을 떠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 끝에다 내건 삶의 자락, 숙연함이 느껴진다.

 테마파크가 위치한 용등산엔 하이얀 아카시아가 만개했다. 아카시아향에 취한 용등산이다. 산보객을 위해 마련한 / 원두막 바닥에다 몸을 온통 뉘였다. / 그때 하늘이 보였다. / 마알간 구름 한 점에 마음 실어 봅니다. / 이 종장을 두고 문득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삼공의 벼슬인들 이 강산과 바꾸랴)이란 싯귀가 떠올랐다. ‘삼공불환’이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중국의 높은 벼슬인 ‘三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1167~1248)의 시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이다.
 구름 한 점에 눈길이 머문 시인의 마음 또한 이와 같았으리라. 어느 새 감상자의 마음도 용등산에 가 있다. 괭이바다가 보이는 용등산이다. 거기 푸른 나울이며, 청아한 댓잎소리에 취해있다. 좋은 詩 한 수를 감상하는 마음, 어쩌면 三公不換 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나라 맹종죽의 85%가 거제에서 생산된다. 소남 신용우 선생이 계셨기에 거제 맹종죽이 있게 되었다. 선생의 공적을 아는 이는 알리라. 거제 하청은 큰사람이 나는 고장이다. 무원 김기호 선생이며, 향파 김기용 선생, 소남 신용우 선생이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한사람, 오늘도 애타게 그 한 사람을 기다린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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