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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⑩]'내 영혼 바람 되어<2>'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내 영혼 바람 되어<2>
“좀 들어 보실래요?”
내 힐끔거림이 그 음악 때문인 줄 알았을까, 그가 헤드폰을 건넸 다. 다음 트랙으로 ‘헤이 쥬드’가 흐르고 있었다. 아우스쿨타테, 덴 마크의 수사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올레보 르와 버글럼 수도원 수사들이 연출해내는 그레고리안 챈트 버전 의 비틀즈, 꾸밈과 기교가 없는 보통 사람의 목소리였다. 중세 분 위기를 자아내는 수사복 속에 가려진 얼굴, 그들의 소리는 깊은 동굴 속을 빠져 나온 듯 신비스럽도록 잔잔했다. 세상의 모든 것 을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듯한 포근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쥬드 를 끝냈다.
쥬드가 끝난 후 헤드폰을 벗어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음악을 듣 는 남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는 척하며 나는 계속 남자만 훔쳐 보았다.        
정우도 그랬다. 멜로디에 손가락 장단 맞추는 걸 즐겼다. 입술 의 움직임이나 손가락 두드림만으로도 음악 내용의 짐작은 쉬웠 다. 그가 즐기는 음악은 장단이 붙으면 더 흥을 돋우는 재즈 주류 였으니까.   
여름의 그믐밤이었다. 자신의 분신 알토 색소폰을 어깨에 매고 정우는 대문 밖을 나섰다. 수돗가에서 설거지 중인 내게 눈을 찡 긋했다. 물론 뒤따라오라는 눈짓이었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걸어가는 바닷길 초입까지 색소폰 선율은 마중을 나오는 중이었다. 썸머 플레이스였다. 그가 기분 좋을 적이면 빠른 템포로 신나 게 연주하는 곡이었다. 뵈진 않아도 흥겨움에 그의 몸짓도 리듬 을 타고 있을 터였다. 복학을 한 후 처음 맞는 여름 방학, 오랜만 에 집에 돌아온 정우였다. 정우와 바다, 그리고 색소폰은 한몸이 듯 잘 어울렸다. 가끔 모차르트를 재즈 기법으로 연주하는 적은 내가 신청했을 적이었다. 색소폰으로 듣는 클라리넷 협주곡은 알 토, 낮은 음에서 젖어 나오는 맛부터 괜스레 서글펐다. 셔츠의 단 추를 풀어헤치고 열정과 자유와 흥으로 연주되는 재즈곡이 왜 정 우의 색소폰은 파도에 젖은 듯 서글프게 울리는지 그 이유를 그때 는 알아채지 못했다. 정우의 알토 색소폰 선율은 늘 비머리한 새 처럼 불서러웠다.       
마지막 곡으로 ‘밤하늘의 블루스’를 마치면 정우는 벌렁 모랫바 닥에 드러눕곤 했다. 말없이 어둠 속의 별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 가 손으로 툭툭 쳐서 내 누울 자리를 제 옆에 마련했다. 광해나 공 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하늘엔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하 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바람이고 싶어. 다시 태어난다면 난 바람으로 살아갈 거 야.”
“왜 바람이어야만 해?”
“자유롭고 싶어. 나를 옭아매는 모든 고리에서, 그리고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어. 내 맘이 가는대로, 가고 싶은
곳을 달리면서 내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어.”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바닷물 속에 첨벙 발을 담갔다. 그의 무 릎 아래는 온통 시거리 빛발이 매달려 들었다. 그리곤 돌아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바닷물이 은밀하게 밀려왔다간 다시 돌아가 곤 했다. 바닷가를 달리기 시작하는 정우, 물속에 놀던 시거리 빛 들이 그의 발길에 부딪쳐 흩어졌다간 다시 모여들곤 했다.  
“넌 아직도 저 시거리가 바다 속에 묻힌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생 각해?”
“물론.”
그믐 바다에 발광하는 빛의 무리, 그 시거리를 손 안 가득 받아 내던 정우는 물가를 첨벙거리며 또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잡혀 끌려가던 내 무릎에도 시거리 그 빛 무리들이 주렁주렁 매달 려 들었다.
나는 그렇게 스물셋을 정우와 함께 살아내고 있었다. 나이를 먹 어갈수록 바람이고 싶은 정우의 고뇌는 치유되지 않았고 그는 스 물넷을 다 살아내지도 못한 여름 바다에서 삶을 마감했다. 정우가 왜 세상을 떠났는가, 사고였는지, 아니면 자의에 의한 떠남인지 아무도 모른다. 정우 자신과 바람만 알고 있을 뿐.
그가 떠나던 날 밤, 방문을 두드렸다. “나와 봐.”
“왜?”
“시거리가 떴어.“
그날도 그믐밤이었다. 정우는 그믐의 밤을 좋아했다. 오직 어 둠으로 살아가는 야행성 동물처럼, 그런 밤이면 시거리를 쫓아 달 리곤 했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달음질로 시거리 빛 을 몰아가던 정우, 그의 손에 잡힌 나는 빠른 걸음을 감당할 수 없 어 바닷물에 드러눕고 말았다. 저만치 혼자 달려가던 정우가 다시 돌아왔다. 물에 텀벙 주저앉은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그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곤 덥석 품에 안았다. 그의 채취에 알코 올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나왔다. 한참이나 안고 있던 그가 내 손 을 잡고 바닷가로 나왔다. 모래밭에 풀썩 주저앉은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먼 바다를 바라볼 뿐. 얼마를 지났을까, 하늘에서 떨 어져 내린 별똥별 하나가 먼 바다에 잠수를 했다. 그때를 기다렸 다는 듯 정우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버지 손에 잡혀 대문 안을 들어서던 너의 여덟 살을 잊 을 수가 없어. 쬐끄만 애가 눈은 왜 그렇게 큰지, 그 깊은 눈 속에 가득 담긴 슬픔이라니, 아니 차라리 두려움이라는 게 맞겠다. 그 때부터 난 생각을 했어. 저 애를 내가 지켜주어야만 한다고. 너를 보는 순간 난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어. 너의 엄마를 생각했거 든. 내가 너를 본 순간이 있었듯이 아버지 또한 너의 엄마를 본 순 간 나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아버지를 이해하기로 맘먹은 거야. 너를 만나기 전엔 아버지 같이 단정하신 분이 외방자식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거 든.”
“넌 울 엄마를 잘도 치장해서 그려내는구나. 내겐 비정한 모성 이야. 한 남자와 나를 바꾼 거지.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엄마를 난 용서 안 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맘에 품고 사는 건 불행한 일이야. 이제 잊어. 엄마의 맘은 제가 겪어봐야 깊은 이해가 생기는 거야.” 그가 나를 다시 품에 안았다. 절대 엄마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 은 입속에서만 맴을 돌았다. 그날 밤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후 그는 노를 저어 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왜 그 밤에 배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갔을까, 어쩔 셈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
몇 날의 수색 끝에 빈 배만 발견되었고 그가 힘겹게 저었을 노는 한 달이 지난 후 파도에 떠밀려 왔다. 마치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그의 흔적이기라도 하듯.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 은 ‘재즈 히 스토리’를 치우는 것이었다. 그의 일기는 해독하기 어 려운 암호 같았다. 표지를 열면 온통 재즈 이야기뿐이었다. 거친 음색과 억세고 폭발적인 특징의 뉴올리언즈의 초기 재즈에 대한 이야기는 십대 후반을 살아가는 정우였다. 벙크 존스, 조지 루이 스, 루이 암스트롱이 주류를 이루던, 아직은 때묻지 않은 시대, 늘 
그리워할 것이라며 그날의 기록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스물 초 입에 만난, 생동감 있고 화려한 스윙재즈에 대한 정우의 이야기 는 우호적이진 않았지만 베니굿맨 듀크 앨링턴에 대한 찬사는 대 단했다. 모던 재즈를 거쳐 정우가 가장 즐겼던 프리재즈까지 그의 하루하루 일기는 재즈 이야기로 표현되었고 어느 문장 하나 이해 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그려낸 마음그림은 짐작할 수 있 었다.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난해한 내용이었지만 그의 고뇌가 오롯하게 담긴 그 일기장이 남의 손에 발가벗겨지는 건 견딜 수 없었다. 정우가 내게 남긴 유품이듯, 아니 내 몫으로 받은 정우이 듯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바람이고 싶은 그의 일기장은 내 맘의 일부가 묻혀 있는 무덤이기도 하다.
섬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곤 저만치 걸어갔다. 배낭을 등에 멘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정우가 두고 간 나이 를 살아가는, 정우처럼 속멋이 배어나오는 뒷모습이었다.  날은 이미 저뭇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서성였다. 안방을 피해 아랫방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정연이 뚫어지게 가방만 바라보았다. 정연은 누구보다 내 가방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날 밤을 마치 짐 작이나 하고 있은 듯 암말 없이 내 가방을 이불장 안에 숨겼다. 그 러는 정연을 추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달랑 하나인 아들은 돌 아오지 않고 두 딸의 여의살이에도 지쳤을 아버지, 그러나 큰 딸 
정연은 친정으로 돌아온 지 오래 되었다. 노쇠한 아버지의 어깨에 또 하나 더 걸릴 짐이 가방 속에 다 들어 있음을 정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둘째의 가방에 기함할 아버지의 맘은 불 보듯 훤했다.  정연은 불 켤 생각도 없이 이불을 꺼내 제 옆자리에 깔았다. 나 는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어 도 정연은 한마디 말도 묻지 않았다. 이 밤에 어디로?, 이런 쉬운 말조차도. 어쩌면 정연은 내 모든 이유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당을 내려섰다. 안방은 적막했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 허 리 통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끙끙 앓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방문 밖을 차고 나올 것 같았다.
뒤뜰을 건너 별채로 걸어갔다. 아직도 툇돌 위엔 정우의 신발이 그대로였다. 그가 평상시에 즐겨 신던 밤색 단화였다. 세월을 비 켜갈 수 없었을까, 신지도 않았을 신발은 시간만큼 낡아가고 있었 다. 단정하게 끈이 묶인 정우의 신발, 아버지는 아직도 그가 언제 든 집안으로 돌아와 그 신발로 마당을 돌아 나오리라, 그 꿈을 버 리지 못하고 있다. 방문을 열다말고 그 신발에 내 발을 넣어 보았 다. 터무니없이 헐렁했지만 신발은 분명 내 발을 기억하고 있었 다. 옛날과 다름없이 다감하고 따뜻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 는 그의 신발에 발 담그는 걸 즐겼다.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것 조차 마뜩찮게 여기던 그의 엄마는 그런 내 모양을 날 선 눈빛으
로 힐끔거리곤 했다. 바다 모래밭에 나서면 정우는 젤 먼저 제 신 발을 벗어주곤 했다. 내 신발 두 짝을 들고 앞서가던 정우는 헐거 움에 걸음이 늦는 날 돌아보며 깔깔 웃었다. 같은 나이를 살고 있 었지만 정우는 신장은 물론 발까지 내 사이즈를 훨씬 웃돌았다. 내 발은 늘 그의 신발에 욕심 부리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신 발에 발을 넣으면 발 밑바닥이 전해주는 안온함에 시시부지한 내 현실이 스르르 물러가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누리는 유일한 사 치였고 평화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엊그제도, 지금도 그러 하듯 방은 그의 숨소리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벽도 그대로였다. 빈틈없이 붙여진 재즈 연주가들의 브로마이 드로 벽은 숨 쉴 틈조차 없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젤리 롤 모 턴, 스윙 시대의 대표적 색소폰 연주자 벤 웹스터의 매캐한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옆에는 그가 좋아했던 빌리 홀리데이가 얼굴을 차고 넘치는 큰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뿐인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미친 듯 드럼을 두드리고 있는 아트 블레이키, 트럼펫을 불고 있는 디지 길레스피의 두 볼 은 터져나갈 듯 부풀러 있었다. 색소폰, 트럼본, 피아노와 드럼으 로 수많은 재즈 맨들이 합주에 열심인 벽, 나는 방안을 들어설 적 마다 귀를 막으며 시끄러워 죽겠다며 엄살을 부리곤 했었다.  
‘재즈 히 스토리’를 서랍에 넣다 말고 마지막 장을 읽어 보았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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