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계룡수필:이양주] 독락당(獨樂堂) 서화 이양주)2012년'수필과 비평'등단/‘2014젊은수필’선정/한국문협/계룡수필문학회/제8호인간문화재이수자/눌산문예창작교실수료

독락당(獨樂堂) 
                                                                                                                                 이양주

외로움이 맑고 당당하면, 외로움도 청복(淸福)이 된다. 그 청복을 누려본 자는 스스로 외로움을 떠나지 아니한다. 이 집 주인도 청복을 누린 것이 분명하다. 혼자라는 표현은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독락(獨樂), 혼자서 즐거움을 독차지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혼자지만 그 즐거움이 얼마나 지고(至高)하였으면 독락당(獨樂堂)이라 이름 붙여 고하였겠나.  

독(獨). 내가 한때 제일 버거워한 것은 독(獨)이었다. 혼자라는 자체를 가장 큰 불행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나 혼자만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이 된 양 지독한 분리감에 시달렸다. 소속과 분리. 밖으로 나가 사람들 속에 소속되면 완전체가 될 줄 알았다. 섞여서 웃고 떠들고······. 그러나 헤어져 돌아올 때면 기대만큼 공허감은 커져갔다. 부질없는 관계의 소모였다. 내가 바르게 서지 않았으니, 세상을 수용하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을. 삶의 시작도 끝도 혼자가 아닌가.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덤이라는 허망한 흔적도 하나 없이, 한 줌 뼛가루가 되어 강물에 흘러 가버린 어머니는, 이 생(生)에 속지 말라고, 너 자신에게조차도 속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외부로 연결된 모든 문을 닫는다고, 내 정신을 뺏어가는 도둑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허약했기에 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밖으로 향하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다. 나만 보였다. 나 밖에 없으니 나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만으로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적인 내가 아닌 본연의 나를 찾아 바로 세워야 한다. 

고독이 여전히 사방을 에워쌌다. 어쩌면 고독이 나를 깨어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고독 때문에 때론 울지만, 고독에 당당해야 한다, 단 맑은 고독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예전처럼 내 곁에 서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듯했다.

“얘야, 하늘이 다 보고 있단다.” 
하늘은 진리였다. 하늘을 알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그나마 수시로 올려다보며 하늘이 함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선택한 세상과의 통로는 책이었다. 그 당시 손바닥만한 크기의 문고판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가격은 삼백 원짜리였지만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 가난한 자취생 살림에 벼르고 벼르던 책을 산 날은 마냥 배불렀다. 모아 두었던 지나간 달력에서 그림이 좋은 것을 골라, 책에 옷을 입히고 모서리가 닳을세라 테이프를 붙여 감쌌다. 책 속에서 수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고뇌와 방황이 그들의 것과 비슷하다는 건 위안과 용기가 되었다. 그들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신에게 맞서며, 그 해답을 찾아내어 세상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던진 수많은 질문과 발견과 답변을 통해 내가 무엇을 구하고 깨달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와 성자들의 말이 선명하게 들려올 때면 가슴이 벅차,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그들을 따랐다. 행간에 들어 있는 그들의 인간적인 숨결이 느껴지면서, 나의 호흡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었다. 사람이 그리운 내게 음악은 단지 소리를 넘어, 내 귀에 들리도록 말 걸어주는 존재였다. 음악이 좋아, 아침에 눈을 뜨고 늦은 밤까지, 때론 밤새 음악을 켜 놓고 잠들기도 했다. 음악이 하는 말이 좋아 자꾸 듣다 보니 따라 하게 되었다. 노래를 불렀다. 내 안에 닫히고 굳어 있던 것들이 조금씩 열리고 녹아 밖으로 나왔다. 무겁던 내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보이지 않으나, 보이고 들리는 세계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체감한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놀기를 좋아한다.  

해질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나면 나는 옥포루의 주인이 된다. 임진왜란의 첫 승첩을 기념하여 조성된 옥포대첩기념공원의 진짜 주인은 충무공과 병사들이지만, 그 시간이면 나도 주인이 된 기분에 빠진다. 오후 나절 공원을 찾으면 제일 먼저 장군의 영정 앞에 묵념을 올리고, 바다가 잘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폐장 시간이 되어 인적이 끊어지면 옥포루에 홀로 서서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장군께 먼저 ‘한산섬’을 창으로 바친다. 이즈음은 계절이 좋아 ‘산천초목’이란 곡을 즐겨 부른다. 

      산천초목 속잎이 난다 
      구경 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따다가 얼화 입에 물어 
      날 오라 하네 날 오라 하네
      산골 처녀가 얼화 날 오라 한다
             (...) 

내가 정가(正歌)를 하면서 체득한 것은 독락(獨樂)이다. 꽃도 혼자 피고 새도 혼자 노래하는 것을, 달도 혼자 소리 없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을. 나도 살아 있어 혼자 이렇게 노래한다. 세월의 강물이 흘러서일까. 형체에 집착하는 것도 이상을 좇는 것도 모두 허상이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어떤 깨달음도 구하려 애씀이 없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 외줄기 노래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나는 내 소리를 들으며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나가던 바람도 이름 모를 새도 조화를 이룬다. 나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저녁 어스름에 녹아든다. 

독락당을 향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는데 가슴이 설렌다. ‘진리의 근원이란 고요한 곳에서 찾을 것이다.’라고 설한 회개 이언적, 그는 퇴계 이황의 스승이다. 독락당은 회개 선생이 정치를 접고 낙향하여 지은 집의 당호다. 

나는 독락당이라는 당호를 붙인 연유가 내내 궁금했다.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사람에게서 오는 외로움은 어쩌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외로움을 싸매어 놓으셨나 하였더니, 독락당 담장에 작은 살창이 나 있는 게 아닌가.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고자 세운 담장에 뚫어진 살창을 보는 순간,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 미소가 나왔다. 궁금증인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작은 숨통인가. 두고 왔으나 차마 근심스러운 세상을 잊지 못하여 이렇게라도 끝내 살피려 함인가. 독락당에 앉아 서책을 가까이하며 살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흘러가는 물소리에 마음을 실어 보냈을 선생을 생각하며 나도 심중으로 살창을 들락거려본다. 

독락당 뒤쪽에 있는 별당인 계정(溪亭)으로 향한다. 그런데 독락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을 나서지 않아도 안과 밖이 연결되도록, 푸른 자계천을 배경으로 완전히 열어젖혀 놓았다. 사방이 다 통하고 있다. 경계를 그어놓은 것 같으나 경계가 없다.  

다만 사람 없이 홀로 있음이 독(獨)이 아니다. 그의 독(獨)은 상대적인 단절이 아니었다. 존재의 당당함.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아 돌아앉은 줄 알지만, 스스로 고요와 한가함을 택했을 뿐이다. 안과 밖이 하나로 활짝 열려 연결된 세계.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홀로 누리는 즐거움과 더불어 누리는 즐거움의 깊이와 넓이가 어찌 같겠는가. 그의 독락(獨樂)은 동락(同樂)을 향하고 있었다. 

주인 없는 계정에 앉아 숨을 고른다. 계정의 두 칸 마루가 그리 넓어 보일 수가 없다. 아마도 회개 선생은 잠시 머물다 가는 이도 다 주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선생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어찌 눈에 보이는 독락당만이겠는가. 어디든 언제든 허정(虛靜)한 마음이 있는 곳이면 펼칠 수 있는 무형의 독락당이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건너편 숲과 자계천의 푸른 바람과 세심대(洗心臺)의 맑은 물소리가 계정 안으로 온전히 들어온다. 나는 선생의 숨결이 머물렀던 마루에 앉아 그의 제자 이황 선생의 ‘청산을’을 노래하며 동락(同樂)을 꿈꾼다. 

* 허정(虛靜) ; 고요히 함. 전혀 구애받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넓이를 가진 조용하며 안정된 상태.

* 옥포루 ; 옥포승첩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거제도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된 옥포대첩기념공원 안에 위치.

* 독락당 ;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건축물로, 대한민국 보물 제413호 지정. 2010년 양동마을의 일부 구성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 중종 11년(1516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사랑채로 사용하던 곳은 옥산정사로 명명하고, 서고(書庫)에는 독락당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독락당의 현판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 선생의 글씨며, 옥산 정사의 현판은 이황 선생의 친필이다. 계정에 걸린 편액은 한석봉 선생이 썼다고 전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