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24
    하 소 연 

    김  영   자
            
 소나기 아니랄까 빗소리 요란하다
 수선한 골목풍경 창밖에 비치는데
 장맛비 핑계대고서 낮잠 한번 청한다.

 빗소리 자장가에 저절로 감기는 눈
 비 맞던 강아지가 창가에 머리 쫑긋
 지난밤 뭐했느냐고 따지는 듯 날 본다.

 밤잠이 설쳐지고 이런게 갱년긴가
 모처럼 낮잠으로 평온한 마음이니
 제발 좀 모른척하렴 웃음지며 하소연.

◎울어라 매미야.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 곤충을 들라면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잠자리다. 올해 들어 잠자리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종류를 불문하고서다. 수년 전만 해도 이맘 때 해질녘의 고추잠자리 군무를 보아 왔는데 이제는 군무는커녕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잠자리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다. 
 잠자리가 사라진 세상, 무언가 불길한 조짐이다. 잠자리 다음에 사라질 곤충은 벌과 나비지 싶다. 근간에 나비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눈여겨보진 않았지만 한두 마리 정도 본 것으로 기억된다. 벌은 어떻던가. 특히 꿀벌의 소멸은 세계 도처에서 아우성이 비명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엔 극성스런 매미 소리가 조금은 짜증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어쩌다 들리는 매미 소리다. 매미마저 사라지지 않으려나 염려스럽다. 며칠 전 일이다. 자지러지는 매미 소리에 웬일인가 하였더니 새끼 고양이가 매미를 잡아 장난치는 중이었다. 매미가 도망가려면 앞발로 잽싸게 낚아채고, 그러면 또 매미는 발버둥치고, 분위기가 묘했다. 가련함에 고양이에겐 미안한 노릇이나 매미를 날려 보냈다. 

 방선부(放蟬賦)는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놓아준 뜻을 통해서 탐욕스런 세태를 비판한 글이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하게 울고 있어 차마 측은하여 줄을 풀어 매미를 살렸다. 곁에 있던 동료 대감이 트집 잡아 따진다. 같은 미물인 벌레인데 매미는 살려주고 거미는 굶주리게 합니까. 아니요, 거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살아 바탕이 맑을세라, 욕심 많은 놈이 맑은 것을 박해하니 내 어찌 그냥 가리요. 보이지 않는 망사 줄을 걸어놓아 눈치 없는 매미가 속아서 못 보고 걸렸지요.”라고 매미를 날려 보낸 사연을 읊었다. 매미의 ‘蟬(선)’자는 虫(벌레 충)+單(홑 단)‘의 합성어다. 아주 간단하고도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곤충이라는 의미다. 매미를 이르는 말은 원래 ’蟬蜎(선연)‘이라고 하는데 매미의 자태가 예쁘다는 연유에서 유래된 애칭이다. 신선으로 탈바꿈하는 곤충이라고 해서 ’선세‘라고도 한다. ’선세(蟬蛻)‘란 매미의 껍질을 가리키며 속세를 초연히 벗어난다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매미가 껍질을 벗고 성충으로 비상하듯이 자신의 음울한 과거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나기를 희구하는 마음을 뜻한다.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는 매미(蟬有五德), 그래서 매미를 의인화하여 예찬한 시인 묵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민화에서 상서로운 의미의 매미가 자주 등장했다. 특히 과거 길에 오르는 선비에게 매미 그림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굼벵이 매암이 되야 나래 도쳐 나라 올라
          노프나 노픈 남게 소�l는 죠커니와
          그 우희 거뫼줄 이시니 그를 조심하여라.
  작자 미상의 고시조다. 현대어로 고쳐본다.                    
          굼벵이 매미 되어 날개 돋아 날아 올라
          높디 높은 나무 위에 우는 소리 좋거니와
          그 위에 거미줄 있으니 그를 조심 하여라.
 (평범하게 살다 벼슬자리 오른 사람들아, 높은 관직에 부리는 권세로 좋다만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권모술수가 판치니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일, 조심하는 수밖에)

 고류선성(高柳蟬聲)은 높은 버드나무의 매미 소리란 말로, 매미 그림은 버드나무와 함께 그려진 예가 많다. 버들은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고향에 은거하여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부른 이래로 은자의 삶 속에 등장하는 소재였다.  조선시대 매미 그림의 대표로는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송림한선(松林寒蟬)을 꼽는다. 송림한선은 소나무 숲의 가을 매미다. 매미는 끈적끈적한 송진이 흐르는 소나무와 짙은 향나무,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은행나무엔 좀체 앉지 않는다. 송림한선도는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매미만을 크게 부각시켜 주제를 강조하였다. 겸재는 조선의 진경화(眞景畵)를 선도한 화가다. 사생화를 그린 그가 그만한 눈썰미와 관찰력이 없어서 소나무 가지에 매미를 그렸을까?

 송림한선에서 정선이 말하고자 한 것은 금약한선(噤若寒蟬)이었지 싶다. 금약한선은 다가올 추위가 무서워 울지 않는 매미처럼 시류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 잘못된 것에 직언을 하지 못하거나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噤(금)자는 입 다물 금이다. 매미를 상세하게 그린 이 그림은 당시의 세태를 매미에 의탁해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울어야 매미다. 깨어있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썩지 않는다. 금약한선, 새겨들어야 할 사람들이 많다. 고관대작들 말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게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하소연〉은 김영자 시인이 장맛비에 낮잠을 청하다 일어난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것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더위와 갱년기로 해서 잠을 설치어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나날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잠을 잘 잤던 기억에 일에 매진하는데도 평안한 잠과 멀어진지가 좀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비오는 풍경을 보다 점심시간에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려는 참에 현장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저를 처량하게 바라봅니다. 평소엔 붙잡고 대화도 나누는 친한 사이인데 비 맞은 지 처지보다 내가 딱한지 흐린 듯 멍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나기는 참 짓궂다.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비 맞은 중놈 중얼거리듯’ 이다. 속담 사전엔 이를 두고 “추레한 모습으로 남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이른다. 이전에 스님들은 너나없이 탁발을 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것이다. 당연히 비도 맞았을 것이다. 비를 맞고도 탁발을 해야 하니 속인이 보기에 볼썽 사나 왔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억불시대의 초상화다.”라고 풀이 하고 있다. 비슷한 속담으로 ‘비 맞은 중 담 모퉁이 돌아가는 소리’도 있다. 내가 아는 ‘비 맞은 중놈 중얼거리듯’ 이라는 속담이 생긴 내력은 따로 있다. 그 내력을 소개하면 이렇다.

 탁발을 한 스님이 바랭이를 매고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편의상 그 고개 마루를 학동재라 칭한다. 그때 오줌이 마려웠다. 오줌을 누려고 주위를 살피는데 학동 바닷가쯤까지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곧 학동재까지 올 것 같았다. 순간 머리를 굴렸겠다.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누어도 소나기에 옷은 다 젖을 터이고 입은채로 옷에다 오줌을 누어도 옷이 젖기는 매일반이다. 더위에 바지춤을 내리기도 귀찮은 터에 그 자리에서 옷에다 오줌을 누었다. 오래 참았는지 그 양이 많기도 했다. 앗뿔싸, 쏟아지던 소나기가 바로 몇 발작 앞에서 뚝 그쳤다. 여름 소나기가 안그렇던가베. 암소의 등짝을 두고도 한쪽만 내리고 그친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부터 스님은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놈의 소나기가 올 테면 끝까지 오던가. 안 올 테면 안 오던가 하필 눈앞에서 멎을게 뭐람. 그렇담 내가 옷에다 오줌을 쌌겠는가. 하면서 학동마을까지 갔다던가. 더위에 오줌 저린 고쟁이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웠겠는가. 궁시렁거릴 수밖에.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비 맞은 중 중얼거리듯”이다. 사실은 비 안맞은 중인데 말이다. 可可大笑.

 누가 소나기 아니랄까봐 그 빗소리 한번 요란하다. 마른장마로 애타던 때라 창가로 달려가 보았다. / 수선한 골몰 풍경. 창밖에 비치는데 / 때는 이때다. / 장맛비 핑계 대고서 낮잠 한번 청한다. / 근간에 잠을 설친지라 낮잠은 꿀잠이 되고도 남았으리.
청하는 잠인지라 / 빗소리 자장가에 저절로 감기는 눈 / 이다. 그때 / 비 맞던 강아지가 창가에 머리 쫑긋 / 내밀었다. / 지난밤 뭐 했느냐고 따지는 듯 날 본다. / 평소에 정을 주면 꼬리 흔들던 녀석이 날 보는 눈이 지난밤에 잠 안자고 뭐했느냐고 따지는 것 같다. 도둑이 제발저리는 법. 갱년기를 맞았는지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불면이다. / 밤잠이 설쳐지고 이런게 갱년긴가 / 싶어진다. / 모처럼 낮잠으로 평온한 마음이니 / 강아지야 강아지야 / 제발 좀 모른척 하렴 웃음지며 하소연 / 한다. 사람 잠 좀 자자구나. 강아지에게의 하소연에 절로 웃음이 인다.시인의 작품엔 재치와 익살이 돋보인다. 그 재치로 해서 잠시 더위를 잊는다.낮잠이 꿀잠이라 보약이라 하지 않던가. 잘 수만 있다면 낮잠도 자 가면서 쉬엄쉬엄 가보세나.-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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