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25
          김매기

     이  덕   재
            
 새소리 물소리와 물안개로 가득한 밭
 호미자루 움켜쥐고 김매기에 빠져들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조차도 몰라라.

 허리 펴고 돌아보니 체증 내린 기분이다
 여기까지 어찌 왔나, 야윈 손을 내려본다
 겁먹은 눈앞이 이리 깨끗해져 있다니.

 호미 씻고 걸터앉아 흐르는 물을 보니
 뿌옇던 흙탕물은 이내 흔적 없어졌다
 저 물에 가슴을 빨아 헹궈 널 수 있다면.

◎ 개망초꽃의 변신
  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진을 보내오기도 한다. 계곡에서 물놀이라, 나에겐 그림에 떡이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계곡에 가면 될 일을 두고 엄살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사정이란 높다란 석주에다 부착한 식물을 살리기에 쓰고 있는 안간힘을 말함이다. 요즘 같은 폭염엔 물을 주고 돌아서면 마르기에 하루에도 두 차례씩 물을 주고 있다. 수압이 좋은 모터에 연결한 호스 끝에 분사기를 달고 물을 주는데 가짓수가 많다 보니 얼추 두 시간이나 걸린다. 병약한 몸이라 마냥 버겁다.
 
 얼마 전 일이다. 8미터 높이의 석주끝자락에 물살 따라 하얀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못 보던 것이라 웬일인가 하고 눈 여겨 보았더니 만개한 개망초꽃이었다. 잡초가 저토록 아름답다니, 눈을 의심했다. 그것도 제일 높은 곳에서 군림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음에 탄성이 절로 일었다. 8미터 높이의 석주는 열댓 개의 기다란 돌을 이어붙여 제작한 것이다. 그 열댓 개의 이음새마다 걸맞은 식물을 부착하고 이끼를 감싸 마무리 한 것이다. 정수리를 차지한 개망초는 내가 붙인 것이 아니라 이끼 틈새에서 자생한 것이다. 개망초는 애당초 부착되는 식물군에서 제외된 이를테면 잡초였다. 
 
 꽃의 모양이 계란 부침을 닮았다고 하여 계란꽃이라고 불리는 개망초는 망초와 유사하지만 가짜 망초꽃이라는 의미로 개망초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개망초는 쌍떡잎식물로 초롱꽃목 국화과 개망초속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로서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다. 우리나라의 토양과 기후에 잘 맞아서 어엿한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키는 30~100㎝ 정도이며, 개화기간은 6~7월이다. 다만 알려진 것으로는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기에 이명으로 왜풀이라 불리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고 해서 개자를 붙였다고 하나, 망초를 닮은 가짜 망초라는 게 정답이지 싶다.  개망초의 전초는 약용으로, 어린잎은 식용으로, 꽃은 꽃차로, 잎은 염료로 이용되는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들풀이다.

        높다란 석주 끝에 개망초가 폈습니다
        한 번도 눈길 안 준 돌기둥 끝입니다
        세상을 눈 아래 두고 호기롭게 폈습니다.

        어떻게 피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알 길이 없습니다
        지천에 널부러졌던 개망초가 아닙니다.

        하늘을 이고 섰는 당당한 자탭니다
        벌 받듯 고개 젖혀 한참을 봤습니다
        잡초도 선자리 따라 귀한 몸이 됩니다.
                - 拙詩, ‘변신’, 전문
  흔히들 자신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 잡초다. 잡초의 사전적 의미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잡풀이다. 이런 잡풀들이 세계적으로 약 30만 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잡초의 특징은 강인한 생명력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이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이용 가치가 있다면 여느 꽃에 견주어도 당당하다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력 있는 것들은 하찮거나 쓸모없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보잘 것 없고 하찮다고 하여 앞에다 ‘개’ 자를 붙여 그 가치를 비하했다. 개망초에서부터 개나리, 개버들, 개쓴풀, 개불알꽃, 개살구, 개머루, 개두릅, 개복숭아 등이 그것이다.

  ‘진가(陳家)의 결혼식’이라는 중국 고사가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동물들이 등장한다. 중국판 이솝우화라 하겠다. 결혼식장에 쓸 가축을 잡아야 하는데, 다들 제 쓸모만을 내세운다. 거위를 잡으려 하자 “나는 알을 낳고 집을 지키니 별 볼 일 없는 수탉을 잡으시오” 한다. 수탉은 화를 내며 “나 없이 새벽을 어떻게 알려 하오”하고 대든다. 거위도 닭도 버거웠던지 주인이 이번에는 양에게 다가선다. “겨울에 헐벗고 싶으시오? 일 않고 빈둥거리는 저 개를 잡는 게 어떠하오?”라고 미룬다. 개는 양에게 삿대질을 해 대며 “은혜를 모르는 놈, 늑대를 누가 막아 주길래?”라고 따진다. 마음이 여린 주인이 하는 수 없이 말에게 눈길을 보낸다.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건 누구 덕택이오? 같은 등이라도 소 등과 다르지 않소?”라고 뻗댄다. 잠자코 있던 소가 “나 없이 그 넓은 밭은 어찌 갈려 하오?”라고 맞선다. 하잘것없는 짐승이라도 타고난 재주나 쓸모가 있는 법이라는 얘기다. 짐승도 짐승마다의 고유한 자질이 있기에 함부로 그 우열을 따질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얘기다. 

 제자리가 아니면 모두가 잡초가 될 수 있다. 밀밭에 보리가 나면 보리가 잡초이고, 보리밭에서 밀이 나면 밀이 잡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망할 놈의 개망초라 놀리든, 버릴 게 없는 귀한 꽃이라고 치켜세우든, 때 되면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 의미를 인간의 잣대로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인 듯하다. 개망초꽃을 보면서 사람을 생각는다. 사람도 꼭 필요한 자리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을 자리가 아닌데 뭉개고 있으면 잡초가 된다. 타고난 자질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쇠똥구리에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석주의 정수리에 핀 개망초꽃이 오래 갈 것 같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게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김매기〉는 바람 한 점 없는 외딴 밭에서 김을 매면서 느꼈던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농사꾼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장맛비 오락가락 하는 사이 들깨 밭엔 잡초가 웃자랐다. 사이사이 예초기로 베고 김매기를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외딴 밭에는 새소리와 물소리뿐이었다. 물안개 걷혀가는 이슬 머금은 밭으로 들어서며 ‘언제 한 줄이라도 매나?’ 걱정이 앞섰다. 반은 뽑고 반은 뜯고 뿔뿔 기어가다 보니 어느새 끝에 와 있었다. 어른들 말씀이 ‘겁 많은 눈’ 이랬는데 정말 그랬다. 야윈 손이 대견했다. 개울 뚝 에 걸터앉아 장화와 겉옷을 빨고 멍 때리다 바라보니 뿌옇던 흙탕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잡초 뽑듯 마음속도 매고 심신도 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시인의 시조 작품  〈김매기〉를 감상하는 도중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떠올려졌다. 귀거래사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41세 때 마지막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는 소회를 운문으로 쓴 작품이다. 입신과 양명에 눈이 멀어 권력에 아부하고 금권을 쫓아 타락 하는 관료 사회의 염증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원에서 자연을 접하는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대표작으로 꼽히면서 송나라 말 원나라 초에 뛰어난 시문을 모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수록되어 이후 한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전해 내려왔다. 《고문진보》는 14세기에 조선에도 전해져서 조선의 선비들의 문장을 사숙하는 교본이 되었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바로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 소냐.(歸去來兮 田圓將蕪 胡不歸)”의 명구에서 시작되어, 대체로 영탄적 어조가 강하나, 그려진 자연은 선명하고 청아한 풍이 넘쳐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농사꾼 시인,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세상에 그냥 두어도 잘되는 것이 잡초인데 그 잡초가 장마를 만났으니 오죽 잘 크리오.
 / 새소리 물소리와 물안개로 가득한 밭 / 이라고 시인은 첫 수 초장을 열었지만 가득한 것에 하나가 빠졌다. 바로 잡초다. / 호미자루 움켜쥐고 김매기에 빠져들면, / 그야말로 잡초제거 삼매경(三昧境)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조차도 모른단다.
 이윽고 / 허리 펴고 돌아보니 체증 내린 기분이다. / 이 잡초를 언제 다 매려나 겁먹은 눈이었는데, 이리 깨끗해져 있다니 자신도 놀라 야윈 손을 내려 보았다. 겁먹은 눈과 야윈 손, 그 대비가 사뭇 흥미롭다. 시인은 작품 <바랭이·금요거제시조선·24> 셋째 수 종장에서 “바랭아 거기 섰거라 호미 장군 납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조선 후기 문신인 남구만(南九萬,1627~1711)은 / 동창이 밝았으냐 노고지리 지저긴다 /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 라는 시조를 남겼다. 시인이 매는 밭도 꽤 사래 긴 밭이지 싶다. 그 사래긴 밭의 김을 다 매고 / 호미 씻고 걸터앉아 흐르는 물을 보니 / 뿌옇던 흙탕물은 언제 씻기었는지 흔적도 없고 마알간 물이 흐르고 있다. 아! / 저 물에 가슴을 빨아 헹궈 널 수 있다면 /文如其人이라 하지 않던가. 냇가에 헹궈 널어놓은 시인의 가슴이 보인다. 장맛비에 자잠시 보이는 햇살 속에서 말이다.-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