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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130」허원영 '가을 女心 '▲허원영:시인,낭송가,시조창가/2010년시사문단시등단/2020년현대시조등단/거제문협.청마기념사업회이사/능곡시조교실수강/2020.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전국스토리텔링공모 우수상

  금요거제시조選-130
     가을 女心

 

 

     




     허  원  영

 녹색에 붉은색을
 덧칠하나 싶더니만

 산야가 단풍되어
 바다마저 색이 변해

기어이 옮겨 붙으니
어이하나 이 가을.   

◎대비(對備)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진(秦)나라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식객 중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천지 만물, 고금의 인사에 관한 의론(議論)을 집록(集錄)한 것이다. 여씨춘추에 종(鍾) 도둑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시대 진(晋)나라 범씨(范氏)가 망했을 때, 그의 종을 훔친 자가 있었다. 훔친 종을 등에 지고 가려 했으나 너무 커서 질 수가 없었다. 조각을 내어 가지고 갈 요령으로 망치로 종을 두들기자, 꽝하고 소리가 울렸다. 종소리를 듣고 누가 와서 빼앗아 갈까 덜컥 겁이 난 그는 얼른 두 손으로 자기 귀를 막았다는 것이다. 

 11호 태풍 힌남노가 상륙하던 5일 밤에 나는 범씨의 종 도둑처럼 귀를 막고 있었다. 귀를 막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속으로 알고 있는 신(神)은 다 들먹이며 기도했다. 기도빨이 통했는지 힌남노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렇긴 하나 어찌나 인사성이 밝은지 크고 작은 나무들 죄다 휘몰아 부치어 떨어진 가지와 잎사귀를 치우느라 진땀을 뺐다. 이것도 태풍 매미에 비하면 즐거운 비명 정도였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던가. 철저히 대비하노라면 하늘도 감복하리라 믿어본다.
 
조선의 청백리 만암(晩庵) 이상진(李尙眞・1614-1690) 대감이 한 젊은이와 함께 산길을 가고 있었다. 이 젊은이는 인척간으로 총명하고 성실하여 비서 겸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언젠가는 좋은 벼슬자리를 구해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호젓한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가다가 젊은이가 볼일을 보겠다고 했다. 만암공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숲속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라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젊은이가 오지 않는다. 만암공은 혹시나 하며 숲속으로 들어가 보니 젊은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다시피 하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 찾고 있나?”
 당황한 젊은이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아, 네, 뒤지를 할 풀을 찾고 있습니다.”
 이 소리에 만암공은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준비성이 없는 사람을 내가 여태 데리고 다녔구나. 더구나 벼슬까지 시켜 줄 생각을 했다니, 저렇게 준비성이 없는 사람에게 국사를 맡기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상진 대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가 버렸다. 실상 준비성이 없는 젊은이의 죄목은 둘이다.
 첫째는 길을 떠나기 전에 볼일을 보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뒤지를 마련하지 않고 볼일을 본 것이다.
 첫 번째 것에는 생리적인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하겠으나, 두 번째 것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이상진 대감이 혀를 찬 것에 이렇다 할 말이 있을 수 없는 셈이다. 만암공이 대형 사고가 연발되는 오늘의 작태를 보았다면 하도 혀를 많이 차서 혀가 뭉그러졌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 TV 화면엔 다음 주에 12호 태풍 무이파의 발생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옴마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태풍에 대한 트라우마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모양이다.
 
         바람의 향방 따라
        생사가 출렁인다

        하와이 무궁화란
        십팔호 태풍 차바

        이름값 인사치레치곤
        행티 한번 별났다.


        광란의 춤사위에
        성한 곳이 없는 산하

        공염불 알면서도
        천지신명 불러 본다

        삼십분 머문 자리에
        낭자해라 저 잔해.
    拙詩, ‘태풍 차바’, 전문

 재난은 종 도둑처럼 귀를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선한 마음으로 대비하고 볼 일이다. 태풍 힌남노를 비웃듯 모기란 놈이 설친다. 참으로 요상한 세상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가을 女心〉은 허원영 시인이 단풍든 산야를 두고 그 단풍이 가슴에까지 옮겨 왔음을 단수로 읊었다. 그래서 제목이 ‘가을 女心’이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이 긴밀한 관계성을 유지하는 유기체이어야 한다. 초장에서 중장으로, 중장에서 종장으로 갈수록 그 긴장도가 강해야 힘 있는 시조가 된다. 기승전결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모든 문학적인 양태에서 필수적이라 하겠다. 자유시의 흐름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시조는 정형의 틀 안에서 짧은 문장들로 승부를 내야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 시조가 단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피라미드를 인류의 불가사의한 건물이라고 하듯이 시조를 두고도 초장에서 종장으로 내려오기까지 삼각형 형태로 더욱 내밀하고 과학적이고 불가사의 하기까지 한 언어의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 전개는 기승전결 과정이 과학적이면서도 치밀하기 그지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힘을 제대로 표출 할 수 있다. 일찍이 정완영 선생은 시조의 3장 6구에 민족혼의 내재율인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이 갈무리 되어 있다고 했다.

 시조 작품 〈가을 女心〉이 초, 중, 종장의 긴밀한 관계성이 유지된 유기체인지 살펴보자. / 녹색에 붉은색을 덧칠하나 싶더니만 / 하고 초장을 열었다. 계절의 변환을 ‘녹색에 붉은색을 덧칠하나 싶더니만’ 하는 초장의 전개로 해서 詩作에 들인 공이 상당하였음이 읽혀진다. 그런가했더니 어느새 산야가 단풍으로 물들었다. 단풍을 보다 눈 들어 바다를 보니 덩달아 바다색이 변했다. 그 바다색은 수묵색이던지 핏빛이던지, 둘 중 하나라 여겨진다. 중장 또한 그런대로 긴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어이’로 시작되는 종장을 열기에 앞서 정완영 선생의 ‘시조작법 서설’을 옮겨본다. 『 이 3장 6구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비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나라 사랑 안목으로 바라볼라치면 춘하추동 계절의 행이, 할머니의 물레 잣던 손길, 늙은 농부의 도리깨타작, 우리 어머님들의 다듬이 소리, 그 어깨춤도 절로 흥겹던 농악에 이르기 까지 가만히 새겨 보고 새겨들으면 3장 6구아닌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 비교가 어떨는지 모르나 / 기어이 옮겨 붙으니 어이하나 이 가을. / 은 ‘늙은 농부의 도리깨 타작’ 이 연상된다. 그래서 이어진 긴장은 깔끔한 종장으로 마무리 되었다. 만산홍엽의 그 붉은 불이 기어이 옮겨 붙었으니 이 가을을 어찌 할 건가. 타는 이 가슴을 어이 할 건가. 나는 모를레라. 태풍이 길을 열었는가. 빨라진 가을의 발걸음이 보이누나.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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