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33
      아픔조차 그리워라

     



       김  영  자 

    등 시린 밤이 오면
    그리움 스멀스멀

    가녀린 구절초로
    애잔한 들국화로

    하나 둘 하늘거리며
    깨어나는 기억들.

    마당가 서성이다
    찬바람 마주하니

    보고픈 얼굴들은
    달처럼 떠오르고

    잊혀진 많은 이름들
    별똥별로 지누나.

    가는 이 뒷모습에
    나 홀로 자책하며

    살가운 화초들과
    말문을 트고 있네

    아직도 다하지 못한
    지난날의 아픔이여.

 ◎사람을 알아주는 일(3)
중국 항공우주사업 창시자인 첸쉐썬(錢學森, 1911.12.11. - 2009.10.31.)은 불리는 이름이 많다. ‘중국 대기권(大氣圈)의 아버지’, ‘중국 과학의 아버지’, ‘중국 자동제어의 아버지’, ‘로켓왕’ 등이다. 첸쉐썬은 장쑤성(江蘇省) 출신으로 중국의 상하이 자오퉁대학( Jiao Tong University)을 마치고 1934년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항공역학을 전공했다. 학위논문으로 대기과학(大氣科學)과 수학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았다. 그가 미국에 체류하던 시기는 2차 대전이 발발한 시기와 겹쳤는데, 그는 외국인임에도 군사기밀을 다룰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미국 최초의 군사용 미사일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독일의 V2 로켓보다 우수한 성능의 로켓을 개발하였고, 1955년까지 미국 항공역학의 핵심 학자로 활동하였다. 그 당시 첸쉐썬이 발표한 30여 편의 논문도 이미 노벨상 수상에 오르내릴 만큼의 세계적인 학자가 된 것이다.

 1957년 양전닝(楊振寧)과 리정다오(李政道)가 중국인으로는 처음 노벨상을 탔지만 첸쉐썬이 계속 미국에 있었다면 먼저 노벨상을 탓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1955년 초 중국의 수상 저우언라이(周恩来)가 사사로이 첸쉐썬을 설득하여 돌연 귀국하였다. 귀국의 이유는 ‘가난하고 궁핍한 조국의 백성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국방성은 첸쉐썬이 별안간 귀국하자 허탈감에 빠져 ‘첸쉐썬을 귀국하게 한 것은 마치 3개 사단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전해진다. 고국으로 돌아온 4개월 후 ‘국가방위를 위한 중국의 대기산업(大氣産業) 설립안’을 국가의 의회에 제출하였고, 그의 계획안에 따라 의회와 중국군사위원회는 대기산업위원회(미사일과 대기과학 연구를 이끄는 조직)을 설립하였고, 첸쉐썬은 위원회 위원겸 중국과학원 원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로켓과 미사일 연구기관을 설립했고, 또 그것을 개발하였다. 그는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과 중국에서 최초로 개발한 지구궤도를 선회하는 인공위성 생산의 책임자였다. 그는 중국의 원자폭탄 실험과 핵폭탄 생산과 그 실험의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했다. 또 중국에서 최초로 별과 별 사이를 비행하는 개발계획에도 참여했다.  
 
마오쩌둥(毛澤東 ),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등 중국주석들이 새해가 되면 그의 집에 세배를 가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한때 장쩌민 주석이 그의 집에 세배 간 것이 세계 언론에 화제가 되기로 했다. 그의 집은 17평 아파트였다. 첸쉐썬은 말했다.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의 생활이 일반 백성들보다 사치스러운 것은 범죄행위이다. 지식인이나 지도자의 역할은 바로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야 할 채무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지식인이나 지도자라는 개념은 바로 일반 서민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歸去來 歸去來한들 물러간 이 그 누구며
      功名이 浮雲인 줄 사람마다 알건마는
      세상에 꿈 깬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海東歌謠」에 있는 이정보(李鼎輔)의 작품이다. 모두들 입으로만 귀거래 귀거래 하지 실제로 벼슬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물러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더란 말인가./공명이 부운인 줄 사람마다 알건마는 /세상 공명이 다 뜬구름인 줄 모르는 이가 없건마는, 공명이란 뜬구름이란 걸 알긴 알면서도 그 꿈에서 못 깨어나니 슬프지 아니한가. 그렇긴 하나 세상엔 꿈 깬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체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정치가 예나 지금이나 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수준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승기(李升基)가 북한에서 비날론과 미사일, 핵무기 등을 개발했거나, 개발하다가 죽었거나, 세계는 북한의 영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한 첸쉐썬이라는 과학자가 자기의 학문적 성과와 능력을 길러 준 미국을 버리고 가난한 조국인 중국으로 간 것을 두고 미국무성에서는 좋게 보지 않겠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아픔조차 그리워라〉는 그리움이 스멀스멀 깨어나는 등 시린 밤에 지난날을 반추하는 심사를 3수 연작으로 읊은 김영자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늦게까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가고 살그머니 가을이 다가 왔습니다. 이때쯤이면 이제는 연락도 안 되는 옛사람들이 종종 그리워집니다. 그리운 이들은 가을꽃이 필 때면 더 생각나더군요. 언젠가 친구가 서울에서 이곳 거제도까지 날 찾아 왔었는데 그날따라 바빠 변변한 대화도 못 나누고 밥만 한 끼 사 먹이고 보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화초 잎을 닦으며 꽃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황진이 이후의 멋진 여인이자 시인이었다고 찬사를 받는 이영도 시인은 ‘그리움’이라  題한 단수 시조를 남겼것다.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이영도, ‘그리움’, 전문

 못 잊어 할 때 생각을 멀리 할 수는 있지만 월컥 밀려오는 그리움이사 어쩔 수가 없지 않던가베. 그 그리움의 대상이 청마가 아니고 기 뉘려노.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닐지니. 
외로우면 등이 시려진다. 그 / 등 시린 밤이 오면 그리움이 스멀스멀 / 인다. 그리움은 / 가녀린 구절로 애잔한 들국화로 / 피어나 / 하나 둘 하늘거리며 / 기억들을 깨어나게 한다. 시인으로 해서 나도 덩달아 외로워진다.

 잠 못 이루고 마당가를 서성이다 찬바람과 마주했다. 처연한 마음에 / 보고픈 얼굴들이 달처럼 떠오른다. / 순이며, 숙이며, 자야며 / 잊혀진 많은 이름들 아스라히 별똥별로 지고 있다.  지난날 / 가는 이 뒷모습에 나 홀로 자책하며 / 눈시울을 적시다 / 살가운 화초들과 말문을 트고 있었다 /. 아직도 다하지 못한 지난날의 아픔들을 반추하면서 말이다. 봄처녀 가을남자라더니, 여심도 가을을 타나보다. 그래서 이 가을 아픔조차 그리워지는지 모를 일이다. 가녀린 구절초며, 애잔한 들국화를 만나러 산길에 나설까 한다.<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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