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 - 135」

 고 현 천   수 달 

   김   용   호
  

 놀래라 첨벙첨벙 이 무슨 소리인가
 밤 늦은 고현천변 수상한 낌새 있어
 자세히 바라다보니 수달인 게로구나.

 씩씩한 모습으로 물굽이 헤집는데
 어릴적 멱을 감던 그 모습 닮았구나
 잠자다 놀랜 왜가리 꺼억꺼억 홰를 친다.

 옛날엔 물 맑아도 수달은 없었는데
 천연기념물에 멸종위기종이라더니
 이 어찌 아니 반기랴 고현천의 수달아.

◎ 고종명(考終命)과 천직
본격 조락(凋落)이 되기엔 아직 이르지만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이 상당하다. 제 11호 태풍 힌남노가 할퀸 상처 때문이다. 아름은 안되지만 골격이 제법 단단한 모과나무에 꽤 많이 달렸다 싶었던 모과였는데, 자고 나니 여남 개나 낙과가 되었다. 우스꽝스런 모양새와 먹을 수 없는 과일이란 선입관 때문에 실없는 과일로 취급받는 모과지만, 좋은 향을 지녔기에 버리기가 아까워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조석으로 모과를 보던 중 고종명(考終命)을 떠올렸다.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으로 오래 사는 것의 수(壽)와 풍부한 물질의 부(富), 건강과 편안함의 강녕(康寧),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유호덕(攸好德)과 더불어 오복(五福) 중의 하나다. 설익은 모과의 낙과는 사람으로 치면 고종명을 못한 셈이다. 눈여겨보면 과일이 온전히 익기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비바람과 병충해를 견디고 날짐승의 해코지를 피해야만 옹근 과일이 된다. 근간에 주변의 성한 사람들이 모과의 낙과처럼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아 충격을 받곤 한다. 나이 탓이리라. 
 고종명이 오복의 하나이긴 하나 적어도 오복의 반열에 들려면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편안하게 오래 살다 죽는 자연적인 죽음이 고종명이 아니라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자기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열심히 살고 나서 맞이하는 죽음만이 고종명이다. 일생 동안 어영부영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을 두고 천직이라 하겠다. 천직은 바로 타고난 직분이다. 자신의 천직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세 개의 원을 그려 그 교차점을 찾으면 된다고 한다. 각 원의 이름은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하는 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 개 모두 해당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로 좋아하는 일에서 직업을 찾지 아니하고 돈 버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가 전해 온다. 옛날 욕심 많은 사내가 살았다. 욕심껏 모으다 보니 재산도 상당하여 인근에 들먹거릴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재 넘어 사돈댁에 경사가 있어 제일 좋은 비단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개천을 건너려다 보니 웬 선비 하나가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을 텀벙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사내는 궁금하여 “대체 무엇을 잃어버리셨소?”하고 물으니, 선비는 대답 없이 찾기에만 열심이었다. 사내가 재차 묻자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평생 쓰고도 남는 것이라오. 여기서 빠뜨렸는데…”.사내는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평생 쓰고 남는 것이라니 귀한 것 중에 귀한 것일 게고, 그걸 찾아준다면 적잖은 고물이라도 생길 성 싶었다. 그는 체면이고 비단옷이고 신경 쓰지 않고 개울물로 첨벙 들어갔다. 고물 생각에 흙탕물에 옷이 엉망이 되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자 선비가 물속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붓 한 자루였다. 사내는 화가 치솟았다. “평생 쓰고도 남는 것이라더니, 겨우 붓 한 자루요? 공연히 옷만 버렸잖소.” 그러자 선비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이것 하나면 평생 쓰고도 남소.”

 가만히 헤아려보면 한 가지로 평생 쓰고도 남는 게 더러 있다. 각자가 지닌 이름이 그렇고, 타고난 육신이며, 다듬어진 손재주며 발재간 등이 그것이다.

        암만캐도  아니지 싶다
        내 지난 오랜 세월

        잰걸음으로 설쳐봐도
        저만치 비켜 가고

        눈앞의
        아득한 그대
        아지랑이 같은 그대.

        내 안에 있다 싶어
        해 질 녘 찾아보면 

        어느새 별이 되어
        허공 중에 박혀 있다

        아찔한 현기증 속에
        까마득히 오는 그대.
    - 拙詩, ‘난의 늪•3’, 전문

 적성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면 선비의 붓 한 자루 같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대단한 청복이지 싶다. 난과 돌에 과한 욕심으로 골병이 들은 나도 때론 청복으로 여기는데 이들로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할행인 농곡 이셩보 시인

시조 작품 〈고현천 수달〉은 천연기념물로 멸종위기 종인 수달을 고현천에서 만난 감회를 3수 연작으로 김용호 시인이 읊었다.수달(水獺)은 천연기념물 제330호다. 족제비과에 속하는 수달은 전 세계에 분포하며 하천 유역이 주요 서식지이다. 유연한 몸과 긴 목, 작은 귀와 짧은 다리를 갖고 있다. 다리에 물갈퀴가 있어 쉽게 헤엄을 치고, 물속에서 400m 정도를 나아갈 수 있다. 수달은 잠식성으로 작은 수생동물이나 포유동물을 먹고, 물고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물속으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리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뭍에서 사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
 
수달의 특징은 장난꾸러기이다. 가장 즐겨하는 놀이는 가파른 진흙이나 눈 비탈에서 미끄러져 물속이나 눈더미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영리하며 우호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어린 새끼일 때 가져다 기르면 쉽게 길들여진다.우리 거제엔 수달생태공원이 있다. 하지만 수달생태공원엔 수달이 보이지 않는다. 야행성이기에 낮엔 볼 수 없다.거제 학동에서도 수달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달이 배에 올라 어장에 잡아 놓은 고기를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야 하지만 해코지를 당하기도 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미움을 받기도 한다. 

 초장의 첫머리에 ‘놀래라’라고 하였음은 일상으로 쓰는 말을 자연스레 등장시킴으로서 관심을 끌게 한다. ‘첨벙첨벙’ 하는 물소리가 수상하기 짝이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달임이 분명하다. 물구비를 헤집는 씩씩한 모습에서 어릴 적 멱을 감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그 모습이 씩씩하고 말고다.수달이 물굽이를 헤집어 놀란 나머지 왜가리가 꺼억꺼억 홰를 친단다. 외마디 ‘꺼억꺼억’에 고현천 한밤의 정경이 잘도 그려진다. 수달이 헤집는 물굽이, 놀란 왜가리의 비명, 점입가경이다. 물 맑았던 지난날, 그땐 수달을 볼 수 없었다. 이상한 일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수달은 천연기념물에다 멸종위기종이다. 그러길래 좀체 볼 수 없었다. 그 수달이련만 고현천에 나타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시인의 어릴적엔 수달에 관심이 없었다. 보릿고개에 근근이 사는 형편이라 수달에 무슨 관심이 있었으랴. 먹고 살만한 세상, 그리하여 주변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이기에 더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수족관을 털다 행여 수달이 죽으면 뉴스 꺼리인데, 수족관 주인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수달이 사람보다 대접 받는 세상,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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