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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139」윤윤주 -'경이(驚異)'▲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원/거농문화예술원실장/동아대서양화전공

 「금요거제시조選 - 139」
    '경이(驚異)'
 -실생산수화에 부처-

 


 



                     

   윤   윤   주

까만 태 두른 화판 흰 하늘 옮겨 놓고
굴피로 세워놓은 아찔한 기암절벽
구름이 천연덕 걸려 있고 산새소리 들린다.

한줌 흙 덮어놓은 포근한 이끼 숲에
키재기 하고 있는 석곡과 일엽초 옆
바위손 촉을 틔우고 고즈넉이 웃는다.

바람이 숨어들어 잔잔한 흔들림에
구절초 잠을 깨고 나 또한 깨우는데
눈앞에 약여(躍如)하는 생명 넋을 놓고 바라본다.

시인상세프로필 ▲윤윤주
-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 회원/거농문화예술원 실장/동아대 서양화 전공/ -2021년 현대시조 등단/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전통미술공예 특선./-제46회 부산미술대전문인화 특선./제43회 경상남도미술대전문인화 입선./제21회 대한민국여성미술구상대전 문인화 특선./제47회 부산미술대전 특선./한국미협회원/능곡시조교실 수강/거제시조문학회 회원

 ◎ 살얼음과 조신(操身)
 저수지를 끼고 도는 도로에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서 숨을 고르다 잎을 떨구고 있는 은행나무를 바라보았다. 영고성쇠(榮枯盛衰)였다. 말랐던 저수지는 만수위가 되고 무성한 잎을 자랑하던 은행나무는 얼추 나목이 되었으니, 하릴없는 영고성쇠였다. 저수지의 물결 따라 떠도는 지푸라기에 눈길이 머문다. 지푸라기는 바람 부는 대로 떠돌다 사라지리라. 어쩌면 우리 인생도 저 지푸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인데도 전부인 양 목숨을 걸다시피 설치다 정작 큰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적잖이 보아왔다.
 이항로(李恒老) 선생은 조선 말기 대표적인 성리학자다. 어느 날 갑자기 포졸들이 선생의 집을 포위하더니 곧이어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과 제자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금부도사에게 매달려 사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항로 선생은 태연한 얼굴로 집안사람과 제자들을 꾸짖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렇게 못나게 굴다니. 죄가 있으면 벌을 받으면 될 것이요, 없으면 면할 것이 아닌가. 오직 하늘의 뜻을 따를 뿐이다.”
 선생은 그 길로 옥에 갇혔는데 심문 과정에서 죄 없음이 밝혀졌다. 그러자 그를 흠모하는 옥리들이 상부의 명이 하달하기 전인데도 그의 목에 씌워져 있던 칼을 벗겨주려 했다. 선생은 “석방한다는 글을 보기 전에 어찌 칼을 벗을 수 있겠는가.”하면서 이를 거절했다. 마침내 출옥한 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들에게 강의를 계속했다.
 “방금 옥고를 치르고 나오셨는데, 포박되어 가기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저희를 가르치고 계시니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금부도사가 나를 데리고 갈 때도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지나간 마음을 돌이켜 바꾸란 말인가?”
 한 제자가 물었다.
 “갑자기 환란을 당했을 때 스승님처럼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항상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자신을 단속하며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네.”
 이항로 선생은 한평생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독학으로 높은 학문을 쌓았으며, 현실을 꿰뚫어 보았고, 당대 최고의 집권자인 흥선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등 선비로서의 지조를 잃지 않은 인물이다.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자신을 단속하는 일, 이는 범인이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르긴 하나 성인의 반열에 드는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지 싶다. 고관이 되려다 청문회에서 발가벗기어 낭패를 본 인물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벼슬을 탐한 결과 천당으로 가려다 나락으로 떨어진 꼴이니, 어찌 딱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또 어떻던가.

 베트남 민화(民話)에 재단사 얘기가 있다. 
벼락감투를 쓴 사람이 양복점에 갔는데, 치수를 재던 재단사가 물었다. 
 “감투를 쓰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그게 옷과 무슨 상관인가요.”
 의아해하는 손님에게 재단사가 말했다.
 “처음 감투를 쓴 사람은 가슴을 앞으로 힘껏 내밀고 고개를 잔뜩 치켜들지요. 그래서 저고리 앞쪽을 뒤쪽보다 길게 만들어야 합니다. 얼마쯤 지나면 내밀었던 가슴이 들어가고 앞을 똑바로 보게 됩니다. 그땐 앞뒤 길이를 똑같이 만들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가슴은 편안히 두고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살피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저고리 뒤쪽을 더 길게 만들어야 몸에 맞게 된답니다.” 

     功名도 잊었노라 富貴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리.

『병가(甁歌)』에 있는 이광욱(李光煜)의 작품이다.
 이광욱은 안동사람으로 호를 죽소(竹所)라 하고 광해군 때 판서까지 지낸 인물이다. 때가 광해군 때이니 공명도 부귀도 잊었단다. 현직(顯職)에 있던 이광욱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세상에 번거롭고 근심되는 일 다 되돌려주고 잊어버리겠거니, 남이 나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그 시대상을 잘 나타낸 노래다.

 목에 힘을 빼고 고개를 숙이고 아래쪽을 살피고 살라. 지난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검소하면 할수록 더욱 화려해지고, 낮추면 낮출수록 더욱 높아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왠지 하늘 보기가 두렵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경이〉는 실생산수화(實生山水畵)에서 느낀 감회를 3수 연작으로 읊은 윤윤주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 본다.

   “자연 소재로 만들어 놓은 작은 액자 속에 열악한 환경에도 꽃을 피워내는 식물을 보며 감탄의 눈길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부지런히 적응하는 자연을 보며 순응해야 세월에 처지지 않고 매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실생산수화(實生山水畵)는 말 그대로 그림을 물감이나 먹으로 그리지 않고 살아 있는 식물을 소재로 하여 산수화를 연출한 것으로 감상자의 특허등록품이다.

 감상자는 자연을 소재로 자연예술품을 창작하여 왔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반세기가 지났다. 그렇게 해서 세 가지 작품을 특허등록하기에 이르렀다. 첫째가 ‘석부작용 입석 제작과 그 방법’, 둘째가 ‘실생산수화의 제작 방법’, 셋째가 ‘원경작품과 그 제작 방법’이다.
실생산수화는 살아 있는 식물이 포인터이기에 식물 선택이 요건이다. 우선은 크기가 작아야 하고 생명력이 강하여 여간해서 죽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 작품을 제작한다 해도 식물이 고사하면 실패작이 되고 만다. 그래서 즐겨 찾는 소재는 각엽진산, 눈향나무, 석곡, 풍란, 일엽초, 넉줄고사리, 바위손, 부처손, 좀마삭 등이다. 산수화이니 산과 바위는 돌과 나무껍질을 이용한다. 나무껍질로는 굴피가 제격이다. 굴피를 세워 연출하면 잘 썩지 않는다. 눕혀 두면 쉽게 썩으나 세우면 습기가 아래로 빠지기에 수십 년은 너끈히 버틴다.

 시인이 본 실생산수화는 까만 태를 두른 흰 화판인데, 흰 화판을 두고 하늘을 옮겨 놓았단다./굴피로 세워놓은 기암절벽 / 이다. 그곳에 / 구름이 천연덕 걸려 있고 산새소리 들린다. / ‘천연덕스럽다’는 시치미를 떼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꾸미는 태도를 일컫는다. 그 표현이 화가스럽다.

 이끼로 마무리된 실생산수화다. / 한 줌 흙 덮어 놓은 포근한 이끼 숲에 / 석곡과 일엽초가 키재기 하듯 서 있다. 석곡은 난과식물이고 일엽초는 양치류다. 두 식물의 생명력에 있어서는 난형난제다. 바위손도 양치류인데 잎의 모양세가 웃는 모양이다. 시인은 이를 두고 고즈넉이 웃는다고 했다. 그 표현이 한층 맛깔스럽다. 마침 시인이 접한 실생산수화에 구절초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그 잎새 사이로/ 바람이 숨어들어 잔잔한 흔들림에/ 구절초가 잠에서 깨어나 하이얗고 청초한 꽃을 피웠나니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예술 혼을 깨웠나 보다. 아! 눈앞의 경이로움! 그것은 약여하는 생명이었다. 하여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약여(躍如)는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생함을 말한다. 화가가 마주한 ‘실생산수화’, 그 느낌을 「경이」로 읊었다.  구절초 향기 속에 가을이 깊어간다.-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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