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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황설수설17]'하청초 100년사'황양득:육사48기졸/전 서울대학군단교관및훈육관/에이펙아카데미 & 어학 원장

1991년 봄으로 기억한다. 대한항공 858기와 탑승객 110명을 폭사시킨 주범 김현희가 육사 생도들을 위한 교양강의 강사로 왔다. 그 사건은 87년 11월 29일에 인도양 상공에서 벌어진 대참사였고 폭파범 “김현희”라는 명백한 실존증거가 있음에도 여전히 지금까지 배후 및 조작의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노 대통령이 사면 결정을 함으로 당시는 안보 강연을 통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KAL기 폭파는 그해 12월의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쳤고 88년 서울 올림픽에 소련과 중공의 선수단 파견을 막아보려는 북한이 던진 최후의 카드였다. 12월 15일 김현희의 압송 TV 방영은 다음 날 1노3김의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의외의 승리를 선사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훗날 전통과 노통으로 이어지는 육사출신 대통령을 위한 군부와 안기부의 음모론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김현희는 사면이 되었다. 

김현희, 자신의 삶과 그간의 한국 생활 등 이런저런 안보 강연이 마무리될 즈음 질의응답 시간에 4학년 동기생인 최기환이가 “당신은 마땅히 무고한 110명의 생명을 산화시킨 장본인으로 사형되어야 하는데 왜 여기 이 자리에서 강연하는가?”라며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당시의 육사 내 을지강당에는 1층에는 1~4학년 전 생도가 그리고 2층에는 육사 교장을 비롯한 장교나 군인 가족 그리고 원로 선배 육사인이 함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당황한 연사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심한 놀라움과 충격을 내보이고 있었다. 5월의 포근한 강연장은 이내 싸늘한 기운으로 정적만이 흐르고 최 생도의 질타에 말문이 막혀 초조해하는 김현희와 그녀를 안타깝게 여기는 청중들만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필자가 손을 덤과 동시에 일어나 한마디 했다. “남한에는 이북사투리가 영화나 방송에 소개되고 있는데 북한에서도 남한의 사투리가 소개되는지 혹은 남파 간첩들이 사투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기관이 있는지 내래 고거이 무척이나 궁금합네다.” 필자의 마지막 이북사투리가 온 장내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고 요기 저기서 웃음과 작은 박수도 들렸다. 하청초 100년사를 읽어 보기 전까지 필자가 기지가 있고 잘나서 김현희 씨를 구해내는 기사도 정신이 있었다고 착각했다. 어린 시절 하청 동네 시장통 철철이 할머니의 흥남 사투리가 이제야 떠오른다. 

1950년 12월 25일 메러디스 빅토리호 피난민 14,000여 명을 포함하여 거제에는 약 8-10만 명의 전쟁을 피해 남단으로 내려온 피난민이 있었다고 전한다. 함경남도 출신이 90%였지만 조선 8도 출신이 그 당시부터 모이기 시작하였다. 장승포가 15,000으로 가장 많고 거제면 10,000명 정도 그 외 7개 면이 7~8,000명 정도 수용을 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호에서 장승포항에 내릴 당시 7살인 꼬마는 온종일 걷고 걸어서 연초를 지나 고갯마루(덕치)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땅도 바다도 좋고 하늘도 맑고 또 아름다운 이름의 하청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 해 3월 1일부터 하청초에는 북한 피난민 특설반이 설치되어 하청에 정착한 가정의 초등학생들이 하청면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학생으로 인해 산기슭 잔디밭에서 수업하고 교과서가 부족해 상급생들에게 물려받아야 했고 늘 교과서는 깨끗하게 사용해야만 했다고 한다. 

하청초 윤현구 25회 졸업생의 추억의 에세이(p.384)를 참조하면“…. 자연환경이나 생활 풍속이 다르고 성장환경의 차이가 큰 함경도 6학년 3반 학생들과 의견충돌이 많아 멱살 잡기 또는 발차기가 수시로 발생하여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이 대단하였다. 다툼이 확대되어 싸움이 일어나면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 아니라 피난민과 싸움이 붙었다고 내편 네편 나누어져 패싸움이 되기도 하였다.” 피난민들의 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수용소에서 거주하거나 원주민의 빈방을 빌려서 생활하거나 가끔은 직접 움막을 지어 사는 가정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느 움막집에서 불이나서 너무나 다급한 아주머니가 당황한 나머지 물과 불이 섞여서 “얘 물 났으니 불 갖고 오라‘ 는 억센 함경도 사투리를 못 알아들은 토박이 학생들은 결국 도움을 주지 못하고 그 움막은 폭삭 내려앉고 말았다고 한다.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는 ”물 났으니 불 갖고 오라“는 이북사투리는 그날 이후로 만날 때마다 건네는 일상의 인사가 되었다. 

하청초등학교 총 동창회(회장 41기 배종규)는 본교가 1923년 하청공립보통학교로 시작하여 올해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청초등학교 100년사”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하청초등학교 100년사”는 총 739페이지의 하청초교 100년 대역사를 시대순으로 일본인 초대교장을 비롯하여 제35대 현 교장까지 사진을 포함하여 당시의 교사 및 활동을 담은 귀한 자료도 수록이 되었다. 아울러 한국 교육의 연대별 흐름, 교육 이념과 학제의 변천사, 그리고 교육 계획과 개혁의 발전사까지 일목요연하게 집대성된 교육총람이라는 평도 과하지 않다. 

편찬위원장인 김백훈 25회 졸업생의 편찬사에는 직필의 올곧은 의지가 엿보인다.“…. 혹자는 어둡고 암울한 시대의 잔재는 지우고 없애자는 주장도 있지만, 부끄러운 역사, 이를테면 ’동방요배(東邦遙拜)”,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에 따른 교육칙어 문제‘ 등도 치욕의 유산이라고 해서 눈앞에서 없애버린다고 해서 그 시간까지 도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0년의 대 역사를 거쳐오면서 하청초의 교육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을 지나 동족상잔의 분단시대와 근대화의 역사 산물과 문화도 함께 소개하였다. 특히, 제5대와 7대 교장을 역임한 청암 신용균 선생의 학교 사랑과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결실은 오늘날 하청초교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에 의해 육영의 사표로 추념 되고 있다. 참고로 하청면 출신의 전 거제시 신임생의원이 4남 4녀의 막내아들이다. 다가오는 11월 26일 13:30분에 하청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모교 강당에서 열린다고 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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